- 삼성전자는 최근 3년간 인도시장에서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2009년 3월 인도 뱅갈로어에서 열린 삼성전자 미니노트북 런칭 행사.
- 삼성전자는 최근 3년간 인도시장에서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2009년 3월 인도 뱅갈로어에서 열린 삼성전자 미니노트북 런칭 행사.

우리나라 양대 가전 메이커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인도에서 정상의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인도 가전시장은 LG전자가 석권하다시피 했다. LG전자는 삼성전자나 소니, 월풀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강자들을 모두 제치고 독주했다.



불과 3년 전인 지난 2007년 LG전자 인도법인의 연매출은 23억 달러였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 인도법인의 매출은 13억 달러에 그쳤다. 이때만 해도 인도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LG전자를 따라잡는 것은 가능성 없는 전망처럼 보였다.



그러나 3년 후인 지난해 두 회사의 매출은 약 36억 달러로 비슷해졌다. 삼성전자가 LG전자를 빠르게 따라잡은 것이다. 기세가 오른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LG전자를 제치고 더 내달릴 기세다. 추격을 허용한 LG전자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LG전자는 현지 법인장을 새로 바꾸는 등 본격적인 대결에 나섰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거대 재벌이 인도에서 벌이는 자존심 건 대결이 매우 흥미롭다.



인도 시장을 먼저 두드린 것은 삼성전자였다. 삼성전자는 지난 1995년 인도 최대 가전회사인 비데오콘(Videocon)과 합작해 인도에 진출했다. 외국 기업이 독자적인 생산법인을 만들 수 없었던 당시 상황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합작사와 갈등을 겪은 후 100% 단독 법인으로 전환했다. 삼성전자는 인도에 진출한 후 처음에 컬러TV 생산 능력을 연간 40만 대 규모로 시작했으나 점차 60만 대 수준으로 늘려나갔다. 1998년 12월에는 연간 3만 대 규모의 전자레인지 생산 공장도 세웠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뒤이어 들어온 LG전자에 주도권을 뺏긴 채 오랫동안 고전한다.



LG전자는 삼성보다 2년 늦은 1997년 인도에 진출했다. LG전자 인도법인의 사령탑을 맡은 이는 김광로 법인장(당시 전무)이었다. 그는 인도에 가기 전 독일, 두바이, 미국, 파나마 등지에서 다양한 시장개척 경험을 쌓은 베테랑 글로벌 경영인이었다. 그는 이후 인도에서도 대단한 성공을 일궈 ‘LG전자 인도 성공신화의 영웅’으로 까지 불렸다.



당시 LG전자가 취한 인도시장 공략 전략은 크게 3가지였다. 첫째, 적극적이고 과감한 투자다. 먼저 진출한 삼성전자를 비롯해 당시 대부분의 경쟁사들은 합작 형태로 인도에 진출했다. 그러나 LG전자는 대규모 투자계획과 부품 현지화 등으로 인도 정부를 설득해 단독진출 허가를 받아냈다. 또 LG전자는 경쟁사들과 달리 대부분의 제품을 인도 현지에서 만들어 팔았다. 인도에 맞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현지에 제품 연구개발(R&D)센터도 만들었다. 당시는 인도에 R&D센터를 세우는 외국기업이 매우 드물 때였다.



둘째, LG전자는 유통망 확보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유통망이 발달하지 않은 인도에서 제품을 팔기 위해선 직영판매망 설치가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김 법인장은 시골 구석구석까지 직접 발로 뛰며 전국적인 촘촘한 판매망을 구축했다.



셋째, 제품과 직원, 경영 현지화 등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구사했다. R&D센터를 통해 인도인들이 좋아하는 제품을 만들고, 대부분의 직원을 인도인으로 채용했으며, 현지인에게 믿고 맡기는 경영의 현지화를 실현했다. 이런 적극적이고 혁신적인 전략을 통해 LG전자 인도법인은 빠른 시간에 인도 시장을 장악했다. LG전자는 일반 컬러TV, 냉장고, 에어컨, 전자레인지, 세탁기 등에서 인도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이다.

1997년 불과 3000만 달러의 자본금을 투입해 설립한 LG전자 인도법인의 매출은 2005년 19억 달러, 2010년에는 36억 달러를 달성했다. 인도 현지에서 LG전자의 성공을 ‘신화’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12억의 시장 인도에서 LG전자에 밀리자 삼성전자에는 비상이 걸렸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소니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선 삼성전자였지만 인도에선 LG전자에 상당히 고전했다. 삼성전자는 2005년 중반부터 당시 윤종용 부회장이 중심이 돼 인도 현지에서 숱한 전략회의를 열었다. 어떻게 하면 LG전자를 제치고 인도 시장을 장악할 것인가 고민했으나 뾰족한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



그때까지 삼성전자가 채택한 인도시장 공략 방안은 프리미엄 제품을 통한 고가(高價)전략이었다. 이를 위해 과감하게 브라운관 TV나 단문형 냉장고 등 저부가가치 상품 라인을 없애거나 줄였다. 고가전략은 중국을 비롯한 삼성전자의 전 세계적 진출전략이었다. 그리고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당시 인도에서는 이 전략이 먹히지 않았다. 인도는 인구의 대부분이 가난해 가격에 매우 민감한 시장이었다. 따라서 고급 제품을 통한 고가시장 전략만으로 인도 시장을 공략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삼성전자는 결국 2000년대 중반부터 고가시장뿐 아니라 중저가 시장에도 적극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목표시장을 다양화하기로 한 것이다. 인도의 휴대전화 사용인구가 폭발적으로 느는 것을 보고 휴대폰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한편 LCD·LED 등 고급 텔레비전 시장 공략을 강화했다. 이와 함께 마케팅과 현지제품 연구개발 등에도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이런 전략은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휴대전화 시장 중시 전략은 주효했다. 인도 휴대폰 시장이 2000년대 중반 이후 놀랄 만한 속도로 빠르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매달 100만 대도 안 되었던 인도 휴대전화 시장은 요즘에는 1000만 대 이상으로 엄청나게 커졌다.



삼성전자는 인도 휴대폰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노키아의 점유율을 상당부분 빼앗아 와 20% 이상의 점유율로 2위를 기록 중이다. 삼성전자는 머지않아 노키아를 제치고 인도 시장 1위로 올라설 계획을 갖고 있다.



인도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LG전자를 매출에서 따라잡을 수 있었던 직접적 요인은 바로 휴대전화 판매의 급증 때문이다. 조만간 삼성전자가 LG전자를 앞서 간다면, 그 주된 이유도 바로 휴대전화 덕분일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휴대전화 부문을 빼면 인도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매출은 LG전자의 6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인도법인은 프리미엄 시장인 LCD 텔레비전 부문에서도 커다란 성과를 내고 있다. 삼성의 LCD 텔레비전은 2008년부터 3년 연속 인도 시장점유율 40%로 1위를 달성했다. 40인치 이상 대형 LCD TV 시장에서는 특히 위력적인데, 초고부가가치 시장으로 평가되는 46인치 이상 LCD TV에서는 삼성전자가 아예 50% 이상의 점유율로 시장을 확실히 장악했다.



삼성전자가 약진하자 그동안 인도 가전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LG전자에도 비상이 걸렸다. LG전자는 올 초 법인장을 새로 발령하는 등 삼성전자와의 새로운 일전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LG전자는 휴대전화와 프리미엄 텔레비전 시장을 삼성전자에 빼앗기자 이 부문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금까지 치중한 중저가 텔레비전 시장 위주에서 프리미엄 제품 시장 진출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과거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인도시장 진출 전략은 각각 고가시장과 중저가시장으로 서로 달랐다. 그러나 이제 두 회사는 상대방의 전략 시장을 적극 공략하며 전방위로 경쟁하고 있다. 상대 전략을 따라 하는 실행의지는 삼성전자가 더욱 적극적이다. 삼성은 과거 LG전자의 인도시장 진출 성공전략을 과감히 벤치마킹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인도 합작법인의 단독전환, 연구개발(R&D)센터의 설치와 확대, 중저가시장 진출, 전국적인 유통망 확대 정책 등이다.



과거 빠른 시간에 인도 가전시장을 장악했던 LG전자는 최근 마케팅 등 직접적인 매출 확대보다는 직원들의 근무환경 개선과 이에 따른 생산성 향상, 고객 서비스 향상 등에 심혈을 기울인 측면이 있다. 그 결과 LG전자 인도법인은 ‘인도에서 가장 근무하고 싶은 회사’, ‘최우수 경영 기업’, ‘가장 존경할 만한 기업’ 등에서 항상 높은 순위에 선정되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LG전자는 이제 삼성전자가 매출에서 따라잡자 마케팅 등 판매 확대에도 각별한 신경을 쓸 상황이 됐다. LG전자는 올해 25%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해 매출 45억 달러를 달성할 계획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성장 목표는 더욱 높다. 40%의 성장률로 매출 50억 달러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물론 매출이 기업의 성공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는 아니다. 기업의 성공을 판단하는 다양한 기준이 있고, 삼성과 LG가 추구하는 기업 목표도 서로 다르다.

어쨌든 ‘21세기 엘도라도’로 불리는 인도 시장을 잡으려는 삼성과 LG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가 본격 시작된 것만은 분명하다. 공정하고 건전한 경쟁으로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멋진 승부가 펼쳐지길 기대한다.

- LG전자 뉴델리 대리점.
- LG전자 뉴델리 대리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