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불세출의 ‘기업 사냥꾼’으로 금융계를 호령했던 무라카미 요시아키(村上世彰.46)가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지난 5월5일 구속됐다.

그는 일본 증시에서 이른바 ‘신(神)의 손’으로 불렸다. 손대는 기업마다 대박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신화는 ‘신의 손’이 아니라 ‘검은 손’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의 구속은 ‘벤처 신화’로 통했던 호리에 다키후미(堀江貴文.34) 전 라이브도어 사장에 뒤이은 것이었다. 벤처·금융 신화들의 잇단 몰락은  일본 자본주의의 ‘그늘’을 부각시켰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무라카미펀드의 무라카미 대표 등 4명을 증권거래법상 주식내부자거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 조사 결과 무라카미는 지난 2004년 9월 니혼방송 주식 12%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 때 라이브도어의 호리에 당시 사장을 만나 “니혼방송 주식이 괜찮다”며 매수를 권했다. 호리에는 그해 11월 니혼방송 주식 매집을 통해 후지TV 경영권 장악도 가능하다는 판단을 했으며 무라카미에게 “니혼방송 주식을 공개 매수할 경우 도와 달라”며 협조를 요청했다.

호리에의 얘기를 전해들은 무라카미는 니혼방송 주식을 추가로 매입, 보유량을 18.57%(609만 주)까지 늘렸다. 이어 지난해 1월 라이브도어의 주식 공개매수(TOB) 발표 뒤 496만 주를 되팔아 거액의 시세차익을 남겼다. 무라카미펀드가 라이브도어로부터 니혼방송 주식의 공개매수에 대한 정보를 미리 입수한 후 주식을 매집했고, 이를 라이브도어에 되파는 수법으로 차익을 남긴 것이다. 니혼방송 주식을 인수했던 호리에는 후지TV의 경영권 장악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후지 측으로부터 수백억엔의 투자액을 끌어들여 큰 이득을 남겼다.

일본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라이브도어의 니혼방송 적대적 인수·합병 사건을 둘러싸고 두 사람이 ‘짜고 치는 고스톱’을 벌였던 셈이다.

구속 직전에 무라카미는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 회견은 생방송됐다. 회견에서 그가 늘어놓은 해명은 ‘무라카미식 금융 수법’의 실체가 편법에 있음을 웅변해주는 듯했다.

그는 라이브도어가 니혼방송의 경영권을 장악하기 위해 대량으로 주식을 사들일 것이라는 것을 알고서 니혼방송 주식을 사 모은 것은 사실이지만 고의가 아닌 일종의 실수라고 주장했다. 호리에 사장이 찾아와 이야기하는 바람에 우연히 듣게  됐다는 것이다.

“내가 단기간에 거액을 벌지 않았으면 미움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돈을 버는 것이 뭐가 나쁜가. 열심히 일하면서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들을 칭찬하지 않는 일본은 이상한 나라다. 호리에 전 사장처럼 도전하는 사람을 응원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 증권 거래의 프로로서 죄를 인정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다.”

결국 그는 내부자거래 혐의를 시인했다. 하지만 자신의 수법이 ‘도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을 원망했다. 비신사적인 방법으로 다른 증시 참가자들보다 먼저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죄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비열한 범죄에 불과했다’는 냉소가 일반적인 여론이었다.

무라카미는 도쿄대 법대를 졸업한 뒤 통산성 관료를 지내다 1999년 펀드회사인 MAC를 설립해 M&A 업계에 뛰어들었다. 손대는 주식마다 대박을 터트리면서 수천억엔대의 자금을 굴렸다. 전화 한 통화로 미국의 연기금을 끌어들일 정도로 도쿄 금융가에서 그의 존재는 전설적이었다. ‘주주의 권리 강화’, ‘1엔이라도 비싸게 판다’는 슬로건과 함께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로부터 평생 용돈 대신 한꺼번에 100만엔을 받아 주식을 시작했다는 일화가 그를 따라다녔다.

‘무라카미 신화’는 ‘호리에 신화’와 함께 일본 사회의 변화가 낳은 산물이라는데 별다른 이견이 없다. 전통적으로 일본 사회는 제조업의 가치를 높게 매겼다.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을 진짜 산업으로 여긴 것이다. 금융은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호리에와 무라카미로 대표되는 미국식 자본가들은 이런 가치를 낡은 생각으로 전복시켰다. 정해진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임대맨션의 월세를 갚는데 급급했던 샐러리맨들에게 이들의 ‘연금술’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언론은 그들의 재테크 기법을 연일 소개하면서 영웅 만들기에  앞 다퉜다. 이들이 법의 맹점을 찾는 편법으로 시장을 노리개로 삼은 경제 이단아에 불과하다는 일각의 비판은 영웅 만들기 앞에서 무색할 수밖에 없었다.

고이즈미 개혁에 의문 제기

‘관에서 민으로’로 표방되는 시장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이른바 ‘고이즈미(小泉) 구조개혁’이 이단아들을 뿌리 내리도록 한 온상이 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잇단 편법 금융 사고를 계기로 고이즈미 개혁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무라카미가 전격 구속되자 일본 언론은 일본의 자본주의에 대한 총체적 점검을 시작했다. 무척  뒤늦은 감이 있지만 그 만큼 일본 사회가 받은 충격이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지 언론은 고이즈미 총리가 정부 행정에 기업경영의 바람을 불어넣는다는 목표로 각 부처 수장에 민간인을 기용, 구조개혁의 상징처럼 선전해왔던 점을 지적하며 정부 규제 개혁을 책임진 ‘세제개혁 민간개방추진회의’의 의장에 미야우치 요시히코(宮內義彦) 오릭스 회장을 발탁한 사례를 꼽았다.

미야우치 회장은 무라카미펀드가 설립될 당시 출자했으며 이후 운영자금까지 대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야우치 의장이 추진회의를 맡은 이래 규제 완화가 너무 앞서간 탓에 정부 부처의 반발이 맹렬했었다는 점도 크게 부각됐다.

미야우치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무라카미펀드에 대한 출자로 인해 추진회의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됐다는 지적에 함구했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미야우치 의장이 구심력을 잃는 사태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제1야당인 민주당도 고이즈미 총리를 상대로 임명 책임을 추궁키로 했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문제점은 고이즈미 정치에 있다. 윤리와 규칙을 지키기보다 돈 벌기를 우선시하니 이렇게 됐다”며 고이즈미 구조개혁 노선에 맹공을 퍼부었다. 간 나오토(菅直人) 전 대표도 고이즈미 내각을 ‘개혁 위장 내각’이라고 비판했다.

<니혼게이자이(日經)신문>은 5월6일자에서 일본 정부 안에서는 그간의 시장원리 지상주의와 지나친 경쟁정책이 이번 사태의 배경이 됐다는 판단이 나오고 있다면서 구조개혁 노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경계감이 고조되고 있다며 ‘무라카미 사태’의 심각성을 전했다.

다만 사태가 전적으로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일본 사회의 ‘자정 능력’ 또는 ‘위기관리 능력’이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5월7일 일본 국회를 통과한 ‘금융거래법’ 개정안. 이 법안은 주식 편법 매집 등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호리에와 무라카미 등 금융 이단아들이 뿌리내릴 수 있는 온상을 차단하는데 맞춰진 것이다.

내용을 보면 특정 투자가의 출자로 설립되는 펀드는 신고를, 일반 투자가에게서 자금을 공모하는 펀드는 등록을 의무화했다. 허위 정보 유포 등 규정 위반에 대한 벌칙도 현행 5년 이하의 징역에서 10년 이하로 강화했다. 장외 거래를 통한 주식보유비율이 3분의 1을 넘을 경우로 국한했던 주식공개매수 의무를 “장내·외 거래를 합해 급속한 매집으로 3분의 1 이상의 주식을 취득하는 경우”로 확대했다. 주식대량보유 신고기간도 “보유 비율이 5%를 넘을 경우 3개월 단위로 정리해 다음달 15일까지 보고”이던 것을 “2주 단위로 정리해 5영업일 이내 보고”로 강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