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아시아 여행길에는 저가(低價) 항공을 이용해 보면 어떨까. 2002년 말레이시아의 에어아시아(Air Asia)가 첫 선을 보인 이후 아시아 항공시장에 저가 항공사 돌풍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당시 2대의 비행기로 한 해 동안 100만 명의 승객을 실어 날랐던 에어아시아는 지난해 33대에 720만 명의 승객을 확보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이 항공사는 박지성 선수가 뛰고 있는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팀의 공식 항공사.

2003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와 태국 푸켓 구간에 이어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와 방콕 사이에 직항 노선을 띄우면서 현지인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가령 일반 항공사의 ‘방콕↔싱가포르’ 구간의 편도 운임이 250싱가포르달러(약 16만원) 수준이었는데, 에어아시아는 ‘방콕↔조호르바루’ 구간을 59링깃(약 1만6000원)에 팔았다. 조호르바루는 싱가포르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 따라서 시간 여유는 있지만 비용 절약에 관심 많은 싱가포르 출장자나 시민들은 에어아시아를 이용, 조호르바루에서 내린 다음 싱가포르에 들어가면 된다. 

‘누구나 날 수 있다(Everyone Can Fly)’는 표어를 내걸고 있는 이 회사는 현재 태국 현지 법인에 이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홍콩과 중국까지 노선을 확장한 거대 항공사로 발돋움하고 있다.

저가 항공사의 수익원은 여럿이다. 첫 번째는 서비스 최소화다. 기내식은 물론이고 냉수 한 모금도 공짜로 주지 않는다. 에어아시아의 경우 ‘스낵어택(Snack Attack)’이라는 별도의 기내식을 돈을 받고 판다. 한국인들은 특히 에어아시아의 컵라면을 즐겨 먹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1800원 정도다. 콜라도 한 캔에 1200원이다. 

두 번째는 인터넷과 콜센터에 기반을 둔 영업이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자동차보험이 보험설계사에게 줄 유통 마진을 없애 낮은 보험료를 책정하듯이, 저가 항공도 인터넷으로만 예약을 받고 결제함으로써 운임을 낮추는 것이다. 항공사 대리점도 공항에만 있다. 대형 항공사가 여행사에 마진을 줘 이곳에서 예약을 하고, 시내 곳곳에 사무실을 두는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또 새벽부터 밤까지 비행기를 최대한 빡빡하게 운항하는 스케줄도 특이하다. 한 대의 비행기로 최대의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아침 일찍 A지역을 떠나 B도시에서 20분 동안만 계류장에 선다. 단 20분 만에 승객을 내리게 한 뒤, 다시 새 승객을 태워 C도시로 돌아간다. 다시 20분 사이에 모든 승객이 타고 내리고, 비행기는 D지역으로 날아간다. 비행기는 하루 내내 이런 스케줄을 반복하며, 아침 7시에 시작한 비행은 밤 11시쯤에야 끝난다. 매달 ‘A체크’라는 기본 정비를 하고 매년 2~3주간 전체 정비를 하기 때문에 비행기 기체의 안전은 문제가 없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주장한다.

항공기도 비교적 신형이다. 타이거에어나 밸루에어는 에어버스의 최신 320모델을 사들여 사용하고 있다. 에어아시아는 앞으로 5년 안에 에어버스의 최신 320기종으로 모든 항공기를 바꾸고 보유 대수를 100대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물론 단점도 있다. 한 번 연착이 되면 계속 시간이 밀려서 나중에는 한 두 시간 이상 연착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한 대의 비행기가 아시아의 여기저기를 돌기 때문에 불가피한 현상이다. 또 일반 항공사의 운임은 성수기와 비수기로 나뉘어 1명이 타고 가든 100명이 타고 가든 간에 같은 값을 치르지만, 저가 항공은 처음 몇 사람은 1만원도 되지 않는 가격에서 시작하지만 좌석이 찰수록 운임은 올라가는 구조다.

이런 장단점에도 저가 항공은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영국의 항공업계 전문지인 <오피셜 에어라인 가이드(OAG)>를 보면, 올해 4월 전 세계 227만 항공편 가운데 30만 편이 저가 항공으로 나타났다. 저가 항공사들이 전 세계 모든 정기 항공편 8편 가운데 1편, 항공 좌석 7석 가운데 1석을 공급할 정도다.

유럽과 북미 지역은 이미 시장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이 두 지역에는 100여 개 저가 항공사가 영업 중인데, 저가 항공의 항공여객 시장점유율이 유럽 11%, 북미 25%에 이른다.

유가 급등 ·각종 규제가 변수

이런 물결은 아시아로 밀려들고 있다. 사회주의 색채가 아직 남아있는 중국에도 파급되고 있다. 홍콩 <아주주간(亞洲週刊)>에 따르면, 중국의 대표적 저가 항공사인 춘추(春秋)항공의 경우 상하이↔톈진 편도 요금이 둥팡(東方)항공(620위안)의 3분의 1수준인 199위안에 불과하다. 또 싱가포르항공으로 싱가포르↔타이베이를 가면 704싱가포르달러(42만원 정도)를 내야 하지만, 저가 항공인 젯스타 아시아를 이용하면 149싱가포르달러(8만9000원 정도)면 가능하다.

특히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저가 항공 허브(중심)를 겨냥, 지난 3월 저가 항공사를 위한 공항터미널을 3일 간격으로 잇따라 개항했다. 국가가 저가 항공사 유치에 발 벗고 나선 셈이다. 싱가포르의 타이거에어, 밸루에어와 태국의 원투고, 녹에어, 홍콩의 오아시스(甘泉) 에어 등이 저가 항공 가격 경쟁을 벌이며 시장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올 10월 홍콩↔런던 구간의 첫 저가 항공기를 띄울 예정인 홍콩 오아시스항공의 경우, 편도 요금을 1066홍콩달러(세금 포함)로 잡았다. 이는 같은 구간을 운행하는 캐세이퍼시픽(4070홍콩달러)과 버진 어틀랜틱(3790홍콩달러)에 비해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파격적인 값이다. 캐세이퍼시픽이 이 구간을 매일 4회 운항하는데 비해, 오아시스항공은 주 5회 운항으로 편수가 제한돼 있고 런던 빅토리아역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개트윅공항만을 사용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분명 매력적인 가격임은 분명하다.

오아시스항공의 설립자 레이몬드 리는 “하루 평균 운항 시간을 18시간(보통 13시간)까지 늘리고 기장과 승무원을 위한 라운지를 없애는 등의 노력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가 항공사를 위협하는 최대 변수는 국제 유가 동향이다. 특히 중동 정세 불안과 북한과 이란의 미사일, 핵 문제 등으로 국제 유가가 연일 사상 최고로 치솟으면서 적정한 채산성 확보가 가장 큰 고민거리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6월부터 제주항공이 첫 비행기를 띄우면서 저가 항공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국제적 네크워크를 갖춘 글로벌 저가 항공사는 진입 장벽과 지리적 장애 때문에 아직 한국에 진출하지 않고 있다. 아시아 저가 항공사의 허브공항 격인 방콕과 싱가포르에서 한국이 3000㎞ 이상 떨어져 중·소형 항공기가 뜨기 힘든데다 각종 규제의 덫이 널려 있는 탓이다.

그럼에도 일정과 숙박, 교통편을 스스로 결정하길 좋아하는 30대 직장인들이 7~10일 동안의 휴가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여행하려 한다면, 저가 항공은 더없이 매력적인 교통수단임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