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주 서쪽 끝에 가면 쇼토쿼(Chautauqua)라는 동네가 나온다. 호수를 끼고 있는 조그만 시골동네 쇼토쿼에는 비영리재단인 ‘쇼토쿼 인스티튜트’가 있는데, 132년째 여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오전엔 유명 인사들의 강의, 오후엔 골프, 테니스, 그림 그리기, 연극, 독서, 심포니 오케스트라등 여가 활동을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어린이 캠프도 있다. 원래는 1874년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을 가르치기 위해 시작된 프로그램이 이제는 해마다 17만 명이 다녀가는 거대한 여름 캠프로 변신했다.

9주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 주제는 제각각이다. 올 여름 첫째 주엔 러시아가 주제였다. 매일 러시아 전문가들이 연사로 나왔다. 국무부 차관보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강연은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 강당에서 펼쳐진다. 둘째 주는 자녀 교육이 주제였다. 대학총장 등 교육 전문가들이 1일 강사로 나왔다. 셋째 주는 윤리 문제가 이슈였다. 상원 법사위원장인 알렌 스펙터 의원, 아서 설츠버거 뉴욕타임스 발행인 등이 연사였다. 이밖에 알 고어 전 부통령, 루스 시몬스 브라운대 총장 등도 1일 강사로 강연했다. 과거엔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미국 대통령들이 이곳에 연사로 나오기도 했다.

미국의 사무용품 판매 회사인 오피스디포의 스티브 오드랜드 회장은 11년째 이곳에서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낸다. 그는 8월 초 이곳에서 강연도 듣고 골프도 치면서 1주일을 보냈다. 그는 “지적 호기심이 가득한 1000명과 함께 강연을 들으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게 된다”고 말했다.

마이클 아이스너 디즈니 전 회장도 쇼토쿼 단골 방문객이다. 세계 최대 테마파크를 운영했던 그도 여름에는 가족들과 함께 디즈니 대신 쇼토쿼를 방문해 지적 호기심과 놀이 문화를 즐겼다. 그는 쇼토쿼의 아이디어를 본 떠 ‘디즈니 인스티튜트’를 세울 정도였다.

홍보회사인 올라이트잉크의 데보라 브라운 사장은 자신의 블로그에 “다른 휴가에서 얻을 수 없는 지적(知的), 영적(靈的) 충만함을 얻어왔다”고 밝혔다. 해변에 놀러 가면 쉬기는 하지만 지적 공허함 때문에 무료했고, 명승지에 가면 일하는 것만큼이나 바빴다는 것이다.

JP모건, 엑손모빌, GE, 메릴린치, 타임워너 등 20여 개 기업은 해마다 직원들에게 이곳에서 휴가를 보내도록 권장하고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업무와 무관한 곳에서 다른 직종의 사람들을 만나 세상 보는 시각을 넓히라는 것이다.

최고경영자(CEO)들은 대개 휴가 기간 동안 가족과 함께 보낸다. 가정에 소홀했던 것을 보상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니면 골프를 치거나 여행을 떠난다. 일주일에 70~80시간씩 일하다보면 탈진상태에 이르기 때문에 머리를 식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휴가 기간 동안 지적 호기심을 보충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또 다른 부류의 CEO들이 있다. 인생이 마케팅과 금융과 비즈니스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람들이다. 새로운 걸 배운다고 해서 사업을 이전보다 잘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휴가 기간 동안 지적 호기심을 채워 세상 보는 눈을 넓혀보겠다는 것이다.

조지프 애커맨 도이체은행 회장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지난달 말 휴가 기간 동안 하루에 6시간씩 스페인어를 공부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미 모국어인 독일어에 이어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구사할 줄 안다. 그는 “몇 년 전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어를 공부해 어느 정도 구사할 줄 안다”면서 “이번엔 스페인어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을 핑계로 중단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휴가 기간을 택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과외 선생과 1대1일로 앉아 집중적으로 어학 공부를 했다고 전했다. 애커맨 회장은 “꽤 힘들었다”면서도 “이제 대화할 수준은 되기 때문에 앞으로 레슨을 받아 좀 더 보강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창의력 개발에도 투자

그가 스페인어를 배운 건 라틴계 정부 관리 등 글로벌 고객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다.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고객들을 만나보면 상대방의 언어를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이라도 구사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에 고객들이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도이체은행은 최근 스페인과 라틴 지역에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추세였다. 하지만 애커만 회장은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건 내 스스로의 능력을 시험해보는 가늠자”라면서 “뭔가 다른 걸 할 수 있다는 게 만족스럽다”고 덧붙였다.

컨설팅업체인 비헤이비오랄사이언스의 톰 크라우스 회장은 여름마다 회사 간부들을 대상으로 독서회를 개최한다. 도스토예프스키, 셰익스피어, 플라톤 등의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는 것이다. 크라우스 회장은 “사업 아이디어를 얻는 데에는 독서 후 토론이 최고”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아리스토텔레스가 제기한 윤리 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회사 조직이 단지 논란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룰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정의와 공정을 강조하는 원칙을 세울 것이냐가 토론 주제였다.

창의력을 계발하는데 시간을 할애하는 CEO도 있다. 미국의 중견 소비자은행인 와코비아의 리사 개리 부사장은 3개월 동안 금요일마다 노스캐롤라이나 맥콜센터의 창의력연구소에서 예술을 배웠다. 작품을 만들면서 너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전체적인 조화가 맞으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그는 “사업 결과에 대해 일일이 다 알아야 한다고 배웠는데 이게 사실은 덫이었다”고 말했다. 예술 공부를 하면서 개리 부사장은 자신의 직관을 믿게 됐고, 일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목해보고 직원들에게 창의적인 리스크에 도전하라고 권하게 됐다고 밝혔다.

캘리포니아의 소프트웨어업체인 오토데스크의 칼 바스 회장은 “평생 교육은 새로운 경험에 대해 마음이 열려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궁금한 게 있으면, 휴가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그 분야에 대해 공부한 다음, 직접 시도해보면서 일을 배운다고 밝혔다. 컴퓨터 엔지니어인 그는 콘크리트와 나무로 가구를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의 집엔 커피 테이블과 벤치, 실내 등받이 등이 놓여 있다. 모두 그의 작품이다. CEO들이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여가 시간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컴퓨터 제조업체인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조나산 슈워츠 회장은 여가 시간에 블로그를 직접 쓴다. 그는 최근 CEO 취임 90일에 대한 느낌을 블로그에 썼고,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실리콘밸리를 방문했을 때 점심을 같이 한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포춘> 선정 500대 기업의 CEO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 사람이다. 그는 블로그를 통해 고객과 대화를 나눈다. 그는 “CEO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대화하는 것”이라면서 “앞으로 블로그는 이메일과 다를 게 없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슈워츠 회장은 “블로그 덕분에 투자자, 소프트웨어 개발자, 미래 고객을 동시에 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블레어 총리와의 오찬 이야기를 쓴 부분에서 오탈자가 발견된 점으로 미뤄 홍보실이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다른 CEO들에게 홍보실이나 작가를 고용해서 블로그를 쓸 생각은 아예 말라고 손사래를 친다.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내놓을 수가 없고, 부모님에게 편지 쓰듯 쓸 수가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