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굴기’의 길 가나?…

  

중국 고유의 테크놀로지 개발 나서야

- 중국 동북지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의 한 거리에서 행인들이 달러화 표시가 된 대형 간판 아래를 지나가고 있다.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3월 말로 3조 달러를 넘어선 3조447억 달러를 기록했다고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4월 14일 발표했다. 15년 전인 1996년 1000억 달러를 처음으로 넘어선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2009년 6월에 2조 달러를 초과한 뒤에, 이번에는 2년도 채 안 돼서 3조 달러를 뛰어넘었다. 도호쿠 지방 강진으로 일본 경제가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가운데 중국 경제는 전진에 전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중국 사회과학원은 4월 4일 중국의 GDP가 2020년이면 미국의 GDP규모를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신흥경제체 블루페이퍼(blue paper)’라는 이름의 이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GDP는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한 1978년에는 미국 GDP의 6.5%에 불과했으나, 2001년에 11.5%로 늘어났고, 2007년에 23.7%, 2010년에는 약 40% 수준으로 확대됐다는 것이다. 중국이 앞으로도 연평균 7~8%의 경제성장을 할 경우 2015년이면 중국 GDP가 미국 GDP의 80% 수준이 될 것이며, 2020년이 되면 드디어 추월할 전망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중국의 GDP가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78년에 1.8%였다가 2007년에 6%, 2010년에는 9%로 몸집을 키워 왔다고 이 보고서는 밝혔다.

중국의 경제 몸집 키우기는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후진타오를 비롯한 중국 정치 지도자들이 만족할까. 중국 경제에 대한 권위자로 손꼽히는 미국 경제학자 배리 노턴(Barry Naughton)에 따르면, 중국은 청 왕조 시대이던 1820년에 인구 3억8100만으로, 당시 세계인구의 36%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GDP도 전 세계 GDP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마도 중국 정치지도자들의 목표는 다시 세계 GDP의 3분의 1 수준을 회복하는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중국은 경제의 몸집만 불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국산 항공모함의 개발에 착수했으며, 2015년이면 개발에 성공하고, 2020년이면 2척의 6만 톤급 핵추진 항모를 보유하게 될 전망이라고 한다. 최근 들어서는 러시아로부터 사들인 5만5000톤급 바랴그(Varyag) 항모를 개조하는 작업을 거의 마무리 짓고 있는 단계라는 말도 끊임없이 들린다. 개조에 성공할 경우 함재기 50대 정도를 탑재한 항모를 취항시키게 된다는 말이다.

- 중국 다롄조선소에서 최근 외부 수리를 마친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 바랴그호. 로버트 윌러드 미 해군 아태지역 사령관은 “2012년이면 중국이 바랴그호를 가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미 의회에 보고했다.

<중국이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은 전형적인 ‘대국굴기(大國起)’의 길이다. 19세기에 들어 가장 먼저 산업혁명에 성공해서 국제사회의 글로벌 헤제몬(Hegemon)으로 군림했던 영국에 도전장을 낸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1890년에서 1910년 사이에 대부분의 경제지수에서 영국을 따라잡았고, 해군력에서도 1907년 이후 영국을 능가했다. 그런 영국과 미국의 적대적 관계는 불가피한 것이었으나, 세계의 패권을 놓고 충돌을 향해 치닫던 두 나라 사이에 독일이 끼어듦으로써 미국과 영국 두 나라는 충돌 대신 독일이라는 희생양을 잡기 위해 협력을 하는 제3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영국을 누르고 글로벌 헤제몬이 된 미국에 도전한 것은 뜻밖에도 동아시아의 신흥강국 일본이었다.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산업화를 시작한 일본은 미국의 석유보급로 차단을 빌미로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에 미 하와이의 진주만에 대한 기습적인 공습을 가함으로써 미국에 도전장을 냈다. 당시 일본은 항공모함 6척, 전함과 순양함, 구축함 14척에 잠수함 5정, 함재기 441대를 동원해서 진주만을 공습했다. 미군에 3581명이라는 엄청난 사망자를 남기는 타격을 입혔으나, 유류 탱크를 제대로 공격하지 못했고, 3척의 미 항모가 때마침 진주만에 정박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곧 전열을 정비한 미국의 반격을 받아 패전의 길을 걸었다.

중국의 항모 건조는 누가 보더라도, 또 중국이 무슨 말로 둘러대더라도 태평양 서쪽 해역의 해상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도전 이외의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행동이다. 전통적으로 해안이라고 해야 동중국해 연안밖에 없는 중국의 항모 건조와 해군력의 강화는 필연적으로 미국, 일본과 충돌을 피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과거 마오쩌둥 시절 대약진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마을마다 용광로를 설치해서 강철생산량을 올리겠다고 하다가 무수한 산림만 훼손하고 대실패로 귀결된 1960년대의 중국의 구호는 ‘초영간미(超英美·영국을 넘어서고 미국과 일전을 불사한다)’였다.

결국 대약진 운동은 2000만명이 넘는 아사자를 남기고, 마오에게 참담한 정치적 패배를 안겨 주었다. 마오는 그 정치적 위기를 넘기기 위해 문화혁명이라는 해괴한 정치적 변란을 일으켰고, 1966년에서 1976년 사이 10년 동안 한국과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잇달아 산업화와 공업화에 성공할 때 중국만 서로 죽고 죽이는 정치투쟁을 벌여 가난의 공화국이 되는 비참한 경험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78년에 덩샤오핑이 시작한 개혁·개방과 경제발전의 국가전략의 기본은 바로 마오쩌둥이 세웠던 ‘영국을 넘어서고 미국과 일전을 불사한다’는 허황된 목표를 버리고 국제사회와 협력하고 주변 정세를 안정시키는 ‘화평발전(和平發展·Peaceful Development)’전략이었다. 마오가 택했던, 유사시를 대비해서 베이징시내에까지 지하갱도를 파는 황당한 전략을 버리고, 군 병력의 숫자를 대폭 줄이면서 국가역량을 경제발전에 전량 투입하자는 것이 덩샤오핑의 국력운용 전략이었다. 그 결과 오늘의 경제발전이 이루어진 것이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 정치지도자들은 현재 중국의 GDP가 전 세계 GDP의 9%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과거 청 왕조 시절의 30% 수준을 회복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더구나 작년 광둥성 경제특구 선전의 아이폰 생산업체 폭스콘(Foxcon) 근로자들 10여명의 잇단 투신자살 항의로 이제 중국에서는 저임금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항모 건조에 열을 올리고, 스텔스기 개발에 몰두할 때가 아직 아니라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일본에서 한국과 대만을 거쳐 중국에서 꽃피우고 있는 후발효과에 따른 산업발전 효과가 방글라데시나 인도 중동 국가들로 빠르게 전이될지 모른다. 경제발전의 기러기가 중국 하늘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조건과 기후가 변하면 금세 다른 나라로 날아가 버린다는 점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기러기가 다른 나라로 날아가기 전에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비율을 높여서 중국 특유의 테크놀로지를 만들어야 한다. 취항한 지 10년이 넘는 러시아 항공모함을 사들여 개조해서 짝퉁 항모를 만들려고 애쓸 때가 아니다. 러시아의 무기체제는 이미 1990년 걸프전에서 미국의 무기체제에 패배한 시스템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