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스 정부는 지난 6월8일부터 ‘사이버 예산’(www.cyber-budget.fr)이라는 이름의 온라인 게임 서비스를 시작했다. 게임 참가자들이 각각 예산 장관이 되어서 나라 살림의 규모를 짜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예산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 이색적인 게임이다. 온라인상에서 장관 역할을 맡은 게임 참가자들은 각자 3000억유로(약 340조원)의 예산을 집행하면서 재정 적자 규모를 유럽연합(EU) 기준인 연간 GDP의 3% 이내로 맞춰야 한다. 동시에 1만 명이 참가할 수 있는 이 인터넷 게임은 나라 살림을 꾸려가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를 프랑스 정부가 국민들한테 교육하고 홍보할 목적으로 만든 인터넷 게임이다.

장 프랑수와 코페 프랑스 예산장관은 ‘사이버 예산’ 온라인 게임을 만든 이유에 대해 “프랑스 사람들은 말로만 개혁을 원하지, 막상 재정 적자 축소를 위해 비용을 절감하려고 하면 이를 갈고 반발한다. 그래서 국민들이 예산을 더 잘 알게 만들려고 생각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재정 적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해법이 쉽지 않은 프랑스 정부의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각국도 해마다 부담스러운 재정 적자와 늘어나는 국가 부채 때문에 이를 줄여야 하는 중대 과제를 안고 있다.

EU 집행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05년에 EU 25개국의 재정 적자 규모는  GDP의 2.4% 규모. 이 가운데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12개국의 재정 적자는 GDP의 2.3%에 달한다. 2004년(EU 전체 2.8%, 유로존 2.6%)에 비하면 크게 줄어든 규모이지만 몇몇 국가들의 경우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재정 적자와 정부 부채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매년 재정 적자가 쌓이다 보니 EU 25개국의 나랏빚 규모도 GDP의 63.4%에 달한다. 유로존 12개국의 정부 부채는 더 많아 GDP의 70.8% 규모다.

우리나라도 나랏빚이 급격히 늘어나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나랏빚은  250조원에 육박하며 GDP의 30.7% 수준이다. 2002년(GDP의 19.5%)에 비하면 3년간 85.6%나 급증해 우려를 자아낸다. 그래도 유럽의 나랏빚 규모에 비하면 아직 걱정스러운 단계는 아니다.

유럽도 나라별로 살림살이에 편차가 크다. 25개 EU 회원국 가운데 지난해 재정 수지가 개선된 나라는 18개국, 나머지 7개국은 재정 수지가 더 악화됐다.

특히 EU 국가들 중에 가장 심각하게 적자투성이의 살림을 꾸려가는 정부는 헝가리(재정 적자가 GDP의 6.1%)다. 그 다음이 포르투갈(6.0%), 그리스(4.5%), 이탈리아(4.1%) 순이다. 영국(3.6%), 독일(3.3%), 몰타(3.3%) 등도 EU의 안정성장협약(SGP)상 적자 기준(GDP의 3%)을 넘어섰다.

EU의 안정성장협약에 따르면 나랏빚 규모가 GDP의 60%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리스(GDP의 107.5%), 이탈리아(106.4%)는 GDP 규모보다 더 많은 나랏빚을 떠안고 있다. 벨기에(93.3%), 몰타(74.7%), 키프로스(70.3%), 독일(67.7%), 프랑스(66.8%), 포르투갈(63.9%), 오스트리아(62.9%) 등 9개국도 EU 기준을 넘어 과중한 국가 부채를 안고 있다.

헝가리는 특히 상황이 심각하다. EU 최대의 적자국인 헝가리는 그동안 EU 집행위원회가 재정 적자를 줄이라고 수차례 권고했지만 성적이 별로 신통칠 않다.

EU 최대 적자국은 헝가리

헝가리의 재정 적자는 비대하고 비효율적인 관료 행정과 의료 행정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헝가리는 오는 2010년 유로화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오는 2008년까지 EU가 제시한 재정 적자 기준을 맞추어야 한다. 재정 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줄이고 나랏빚도  GDP의 60%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는 EU의 안정성장협약은 낮은 인플레이션, 환율 안정 등과 함께 유로화 도입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그런데 헝가리 정부가 2008년까지 이 기준을 맞추려면 올해만 3000억∼3500억포린트(한화 1조5000억∼1조7500억원) 상당의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 대대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공공 개혁이 필수다.

지난 4월23일 총선에서 재집권한 헝가리 좌파 정부의 쥬르차니 페렌츠 총리는 “정부 행정 및 의료 부문의 1단계 개혁을 오는 2008년까지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행정 전 부문에 걸쳐 개혁을 단행하고, 개혁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의료 부문도 오는 2008년까지 가시적인 변화를 이뤄내겠다고 개혁 청사진을 밝힌 것이다. 올해 재정 적자를 GDP의 4.7%로 줄이고, 내년에는 3.3%까지 줄이겠다는 각오다. 하지만 재정 적자 축소를 주로 경제 성장과 엄격한 조세 징수, 행정 비용 삭감 등에만 의존하고 있을 뿐 가시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개혁안은 결여된 상태다.

이 때문에 헝가리 정부의 공언에도 불구, 재정 적자 축소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오히려 앞으로 2년간 헝가리의 재정 적자가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날 것이라고 EU 집행위가 경고하기도 했다. EU 집행위는 ‘헝가리의 재정 적자 규모가 2005년 GDP의 6.1%에서 올해 6.7%로 확대된 뒤 2007년에 7% 수준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 이유에 대해 EU 집행위는 “비용 삭감을 목표로 하는 구체적인 개혁안이 결여된 데다 내년에는 공식적으로 추산된 규모보다 지출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헝가리 정부가 추가로 세금을 삭감하는 조치를 계획하고 있어 재정 적자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

재정 적자 및 나랏빚 규모가 심각하기로는 이탈리아도 빼놓을 수 없다. 이탈리아는 재정 적자와 나랏빚 모두 EU 기준치를 초과했다. 2004년에 비해 지난해 상황은 더 악화됐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승리한 로마노 프로디 신임 총리가 과거 EU 집행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EU 각국 회원국들에게 재정 적자 및 나랏빚 기준을 준수하라고 강하게 주장했던 점을 감안해 보면 이탈리아 정부가 어떤 예산 개혁 조치를 내놓을 지가 관심거리다.

하지만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지난해 EU 회원국들의 재정 상황이 전반적으로 개선됐다.  특히 2004년 EU에 가입한 10개 신규 회원국 중에 폴란드(2.5%)와 슬로바키아(2.9%)는 재정 적자가 처음으로 GDP의 3% 이하로 내려갔다. 헝가리, 몰타를 제외하면 8개 신규 회원국이 전부 GDP의 3% 적자 기준치를 충족했다.

전반적으로 건실한 재정을 꾸려가는 EU 국가들도 있다. 덴마크(4.9%), 스웨덴(2.9%), 핀란드(2.6%), 스페인(1.1%), 아일랜드(1.0%) 등은 재정 흑자국이다. 이들 국가는 ‘재정 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줄이라’는 EU 집행위원회의 잔소리가 그야말로 ‘먼 산 불구경’인 나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