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층 인민속으로 더 다가가자”…

     


  빈부·도농·동서 격차 해소 총력

 

중국은 땅이 넓어 지방에 따라 봄이 오는 날이 천차만별이다. 수도 베이징의 봄은 3월에 온다. 자연의 봄뿐만 아니라 정치의 봄도 온다. 해마다 3월5일이면 전국에서 3000명에 가까운 인민대표들이 모여들어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개최한다. 서양 사람들은 전인대가 중국공산당의 견해에 반대하는 결정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고무도장(Rubber Stamp)’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중국의 ‘국가계획서’라고 할 수 있는 1만8000자 분량의 정부공작보고서가 공개되고, 인민대표들이 수정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기간이라는 점에서 유일한 민의반영의 기회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갈수록 인민대표들의 발언권이 넓어지고 있는 흐름인 데다가, 중국 관영매체들도 최근 들어 차츰 중국공산당과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의 폭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는 분위기라서 중국의 속사정을 그나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더구나 위키리크스의 폭로가 촉발한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이 이집트에서 꽃이 활짝 피어 무바라크 정권을 무너뜨리는 성공을 거둔 마당이라 중국에서 유일한 민주주의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 전인대에서는 무슨 안건들이 다뤄지게 될까. 중국의 관영 매체들은 이번 전인대에서 다뤄질 주요 안건들의 성격을 7개의 단어로 정리해서 전하고 있다. 7개의 단어는 ‘선변(變)’, ‘온건(穩健)’, ‘냉정(冷靜)’, ‘공정(公正)’, ‘건강(健康)’, ‘행복(幸福)’, ‘성음(聲音)’이다.

‘선변’이란 우리는 잘 쓰지 않는 단어다. 중중(中中)사전에 보면 생녀(生女)가 숙녀(熟女)로 바뀌는 것, 다시 말해 갓난 여자 아기가 성숙한 여성으로 변화한다는 뜻이다. ‘자연스러우면서도 근본적인 변화’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선변’은 중국경제가 올해부터 성장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말이며, 올해 3월부터 시작되는 12차 5개년 경제계획부터 그동안 GDP 성장 위주의 양적인 성장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질적인 성장으로 전환하기 위한 각종 정책들이 추진될 것이라는 말이다. 중국공산당은 이를 위해 이미 지난해 9월 중순에 열린 제17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5중전회)를 통해 ‘포용적 성장(包容性 增長)’이라는 목표를 결의해 놓았다. 지난 30년간 추진돼온 두자리 숫자로 표현돼온 속도 위주의 빠른 성장의 발걸음을 연 8% 정도로 낮추고, 너무 심하게 벌어진 빈부의 격차, 도농 격차, 동서 격차, 민족간 격차를 줄이고, 경제발전 지상주의 아래서 희생돼온 환경문제도 본격적으로 고려해 지속 불가능한 성장을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각종 정책을 이번 전인대에서 채택한다는 것이다.

-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 방문에 앞서 지난 1월18일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의 대형 전광판 6개 화면에 중국이 제작한 홍보 영상물‘중국을 경험하라(Experience China)’가 상영됐다. 60초 분량의 이 영상물에는 피아니스트 랑랑과 미 프로농구(NBA) 선수 야오밍, 중국 첫 우주인 양리웨이 등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중국 스타들이 등장했다(사진 위). 지난해 3월 14일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이 국가를 부르고 있다.

각종 개혁조치 취하되 사회 안정 유지 도모

다음으로 ‘온건’이란 ‘선변’을 위한 각종 개혁조치를 취하되 사회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한다는 뜻이다. 중국 관영 미디어들이 보도하지 않는 가운데 물밑에서 활발하게 논의되어 오던 정치체제의 개혁 문제, 경제 체제와 사회, 문화 체제의 개혁을 올해부터 활발하게 추진하되, 안정 기조를 유지하기 위한 정책적 고려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의 퇴진을 가져온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의 민주화 시위가 전인대가 열리는 베이징 인민대회당 옆의 천안문 광장에서 재현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중국 지도부는 안정을 추구하기 위한 논의를 많이 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경제 체제의 개혁과 관련해서는 최근 중국 관영 매체들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중국 인민들 사이에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는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질 전망이다.

세번째 화두인 ‘냉정’은 이미 새해 들어 1월 한달 사이에 4.9%나 오른 물가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가운데 잡힐 줄을 모르는 부동산 가격을 쿨 다운(cool down) 시킨다는 뜻이다. 경제에 대한 총책임을 지고 있는 원자바오 총리가 이미 지난해부터 “물가 안정이 2011년 경제공작의 1등 대사(大事)”라고 강조해온 대로 이번 전인대를 통해 물가를 잡고, 부동산 가격의 고삐를 쥘 수 있는 묘수를 전국에서 모여든 인민대표들이 제출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의 고삐를 쥐기 위해 중국 정부는 새해 1월26일 이미 8가지의 방안을 ‘국8조(國八條)’라는 이름으로 정리해서 발표한 바 있다. ‘국8조’란 부동산 가격 안정의 책임을 중앙정부에서 각 지방정부로 이관한다, 장기 임대주택 건설 등 소형 주택 공급을 확대한다, 세금 징수를 통해 해결한다, 주택 건설과 구입을 위한 금융기관 대출 심사를 강화한다, 주택 용지 공급을 통제한다, 각 지방의 주택사정에 맞게 정책을 세분화한다, 정책 집행자들에 대한 문책을 강화한다, 여론의 기능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8가지 방안이었다. ‘국8조’는 한국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많이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으로 ‘공정’이란 그동안의 급격한 경제 성장의 결과가 낳은 각종 부패와 부정을 척결하기 위해 법적용을 엄격하게 하기 위한 정책을 입안한다는 뜻이고, ‘건강’은 빈부 격차가 확대되면서 계층별로 의료 서비스 수혜정도가 너무 차이가 나 이를 개혁하기 위한 조치를 마련한다는 뜻이다. ‘행복’은 급격한 성장이 낳은 환경오염, 교통체증 등으로 중국인민들이 느끼는 행복지수가 낮아진 점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를 한다는 뜻이며, 우리말로 ‘소리’라는 뜻의 ‘성음(聲音)’이란 화두는 기층 인민들의 목소리를 보다 더 많이 듣자는 뜻으로, 이번 전인대에서는 원자바오 총리를 비롯한 국무원 각부 장관들이 중국판 소셜미디어인 웨이보(微博)를 통해 인민들의 140자 목소리를 듣는 행사도 마련될 예정이다.

-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올라온 중국 농민공들이 2009년 쓰촨성 청두시 진장구의 한 인력시장 앞에서‘식당 종업원’, ‘중국요리 주방장’같은 문구가 적힌 종이를 길바닥에 펼쳐놓고 고용해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집트 민주화 운동 전염될까 노심초사…“인민속으로”

이집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의 민주화 시위가 계속되는 도중에 춘절을 맞은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는 음력 1월 그믐에서 설날까지 사흘을 각각 허베이성 바오딩과 안후이성 다비에산 산촌 마을에서 인민들과 함께 계란국도 끓이고, 만두도 빚으면서 보냈다. 관영 신문과 방송들은 그런 지도자들의 모습을 전하면서 일제히 ‘기층(基層)’으로 다가가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집트 사태가 1989년의 천안문 사태의 기억을 되살려준 때문이었을 것이다. 말그대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허베이, 허난, 산시, 산둥 성 일원의 화베이평원 일대는 지난 겨울 내내 100~140일 동안 하늘에서 강우도 강설도 없는 가뭄이 계속돼 겨울을 나고 봄에 싹이 트는 겨울밀 농사가 심하게 타격을 입어 중국내 식량 수급뿐 아니라 국제 밀가격의 급등도 예상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또 봄과 함께 서북 평원에서는 사나운 황사폭풍도 불 것이고 이래저래 중국 지도자들의 마음은 뒤숭숭할 것이 틀림없다. 그래선지 최근 일본을 제치고 GDP 세계 2위로 올라선 데 대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2월15일 논평도 겸손하기만 하다.

“중국이 거둔 현저한 경제발전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여전히 발전도상국가라는 속성은 변하지 않았다…. 중국은 여전히 사회주의 초급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그 점에 대해 우리는 뚜렷한 인식을 갖고 있다…. GDP 수치는 일국의 경제실력을 측정하는 핵심지표 중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유일한 지표는 아니다…. IMF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이 집계한 수치들을 보면 중국의 1인당 GDP는 세계 100위 정도이며, 세계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는 현재 하루에 1달러의 소득도 올리지 못하는 유엔 규정 절대 빈곤 인구가 1억5000만명이나 있다…. 또 그동안 발전과정에서 불균형과 지속가능하지 못한 문제점도 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