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最古 발효지서 생산되는 고급술 

프리미엄 전략으로 엘리트 계층 유혹

2000년 3월 중국 축구계가 크게 요동쳤다. 관록을 자랑하는 ‘사천전흥축구팀(四川全興蹴球隊)’이 갑자기 ‘사천수정방팀(四川水井坊隊)’으로 이름을 고쳤기 때문이다. 팬들과 관계 인사들이 영문을 몰라 하는 사이에도 ‘수정방’이라는 이름은 중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기존의 배갈과 다른 깔끔한 맛과 향을 풍길 뿐만 아니라 비싼 가격과 세련된 디자인으로 우리나라 애주가들 사이에도 짧은 기간에 빠르게 입소문을 탄 중국 배갈 ‘수정방(쉐이징팡)’은 이렇게 전격적으로 세상에 선을 보였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 술 또한 어느 날 갑자기 난데없이 나타난 것이 아니다. 수정방의 정체(?)를 알려면 먼저 ‘전흥대곡주(全興大曲酒, 취엔싱따취)’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해 수정방은 전흥대곡주의 돌발적이면서도 도전적인 변신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러한 변신에는 새 자본과 첨단의 양조 기법이 전제돼 있다고 해도 본체까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원료의 선별 가공은 말할 것 없고 대체적인 양조 방식도 전흥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 수정방이 나타났다고 해서 전흥주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수정방은 전흥주 술 회사가 만든 새 브랜드의 제품이며 회사는 일단 이 술에 투자와 경영을 올인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쓰촨 청두(成都)에서 생산되는 전흥대곡주는 술의 향이 짙고 환한 데다 맛이 유독 깨끗하여 예부터 애주가들이 ‘향기와 맛이 가장 두드러지는 술’이라고 칭송했다. 청두는 예부터 여름에 무더위가 없고 겨울에 큰 추위가 없는 데다 기름진 땅이 넓게 펼쳐진 탓에 농업이 흥성하였다. 오곡이 풍성하니 절로 술을 만들고 마시는 풍습이 성할 수밖에 없었다. 당대(唐代)의 시인 장적(張籍)은 당시 청두의 융성한 술 시장 풍경을 자신의 시 ‘성도곡(成都曲)’에 잘 그려 놓고 있다.

금강에 푸른 물안개 자옥한데(錦江近西烟水綠)

비 내린 산등성이엔 여지가 익어가네.(新雨山頭枝熟)

만리교 옆에는 술집도 많은데(萬里橋邊多酒家)

한량들은 오늘 밤 또 뉘 집에서 묵을까 한다네.(游人愛向誰家宿)

전흥대곡주가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청나라 건륭(乾隆. 18세기) 때부터다. 이 무렵 어떤 산서(山西) 사람이 행화촌(杏花村)에 본거를 둔 ‘분주(汾酒)’의 양조 기술을 청두에 전했다. 이후 기술은 끊임없이 개선·발전되어 마침내 독자적인 양조 방법을 만들어냈으며 여기에 물과 흙, 기후의 특성이 보태지면서 독특한 풍미와 특별한 격을 갖춘 전흥주가 나온 것이다.

전흥주의 양조 방법은 전통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원료의 발효를 위해 연수(年數)가 서로 다른 구덩이를 쓰며 발효기간도 60일 정도로 길다. 증류할 때 처음과 마지막으로 받은 술은 희석한 후 새 원료에 섞어 다시 발효시키고 중간에 얻은 술만 배합 과정을 거치게 한다.

전흥대곡주는 1963년 제2회 전국주류평가대회서 영예의 금장을 받아 국가 명주의 반열에 들었으며 이후 제4회, 제5회 대회에서도 금장을 받았다.

 

고고학적 대발견과 새 브랜드 전략

서기 1998년 8월, 전흥주 회사는 청두시 금강 가의 수정가(水井街)에 있는 양조장 시설을 개축하다가 뜻밖의 역사적인 발견을 했다. 그전에는 알지 못했던 고대의 양조장 시설들이 땅속에서 속속 드러났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수정가(水井街) 주방유지(酒坊遺趾)’의 발견이다.

수정방은 청두의 옛 동문대교(東門大橋) 밖에 있다. 1999년 고고학자들에 의한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서로 다른 지층에서 각기 시대가 다른 발효지와 양당(堂:쪄낸 원료를 식히고 새 원료를 섞는 곳), 아궁이 터, 시루를 놓았던 자리 등의 유적들이 발굴됐다. 조사 결과 이는 원, 명, 청 3대에 걸친 옛 양조장의 흔적들이었다. 이 발견은 국가에 의해 ‘1999년 전국 10대 고고학적 발견’의 하나가 되었으며 진시황 병마용(兵馬俑)에 버금가는 발견으로 일컬어지면서 중국의 애주가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유적지는 2001년 6월 중국 국무원의 공포를 거쳐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우리 식의 국보)로 지정됐다.

그동안 여러 배갈 회사들이 자기네 발효지가 500~600년 된 것이라고 자랑하고 선전해 왔지만 구체적인 실물로써 공인된 것은 명대(明代)인 서기 1573년에 설치된 루저우 라오쟈오(瀘州老)의 발효지가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그러나 수정방의 이 발견으로 430여 년의 발효지 역사는 단숨에 600년으로 훌쩍 뛰어오를 수 있게 되었다.  

전흥주는 그동안 같은 쓰촨에 근거를 둔 우량예나 루저우 그리고 이웃 뀌이저우(貴州)에서 생산되는 마오타이의 성가에 가려 시장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따라서 자기네 앞마당에서 펼쳐진 이 세기의 고고학적 사건을 호재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시장을 키우는 데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서기 2000년, 전흥주의 성도전흥주창은 새 자본의 투입과 함께 아예 회사 이름을 사천수정방주식회사(四川水井坊公司)로 고치고 대표 브랜드 ‘수정방’을 출시하였다.

수정방 유적지는 청두 시내 중심지에서 차편으로 20여 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선전과 홍보에도 서구적 방식을 도입한 수정방답게 먼 나라에서 온 방문객을 위해 호텔까지 차편을 보내주는 호의를 잊지 않는다. 출근 인파로 붐비는 수정방 거리에 위치한 유적지의 겉모습은 예전 우리네 정미소를 연상케 한다. 나무판자로 얽어놓은 지붕은 통풍창이 많아서 빗물이 그냥 새어들 듯하다. 현재도 사용되는 발효지들이 즐비한 가운데 발굴을 끝낸 옛 양조장 터가 조명을 받고 있다. 퇴적층에 따라 명대, 청대, 현대가 선명하게 구분된다. 술 만든 이들의 600년 역사가 고스란히 눈앞에 펼쳐지는 모습이 놀랍기만 하다. 

이름부터 술내를 풍기는 수정방(水井坊)이라는 배갈의 이름을 처음 대한 것은 2005년 봄이다. 당시 필자는 남경에 머물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바둑 잘 두는 유창혁 기사가 꽤나 감회 어린 투로 이 술의 맛을 토로하고 있는 기사를 인터넷을 통해 읽었다. 중국 기사들과의 대국을 위해 상하이에 갔을 때 어느 연회에서 이 술을 처음 마셔보았는데 술맛이 정말 특별했다는 얘기였다. 독한 배갈 마시면서 시합은 어떻게 했누…. 필자는 중국에 있으면서도 술을 만나기는커녕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기에 괜스레 심드렁해졌다. 그 후 기회 있을 때마다 술 가게의 진열장을 살펴보았지만 그것은 좀체 눈에 뜨이질 않았다. 시중에 나온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값이 대단히 비싸다는 소문만 들었다.

결국 직접 술을 맛본 것은 한국에 돌아온 뒤였다. 중화식당에서 열린 한 친구의 단출한 회갑연에서였는데 술 한 병 값이 50만원 가까이 됨을 알고 입이 딱 벌어졌다. 중국 현지 식당에서도 우리 돈 20만원을 크게 넘지 않는다는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도대체 술맛은 뭐라고 표현할까? 입에 넣자마자 탁 하니 쏘는 맛은 여느 배갈과 같지만 자극은 훨씬 덜한 편이다. 쓴맛이 있나 싶으면 단맛이 있고 단맛이 입안에 고이는가 싶으면 이내 정갈하게 걷힌다. 지금껏 내가 마셔본 것과는 또 다른 배갈임은 그렇게 알았다.

당신은 수정방을 마실 자격이 있는가?

술의 고급화와 함께 고가(高價) 책정으로 경쟁 술들을 이기겠다는 것이 수정방의 기본 전략이었다. 처음 수정방이 병당 600위안이라는 당시 시장 최고가로 출시되었을 때 먼저 당황한 것은 이를 팔아야 하는 영업소들이었다. 그들이 따져 물었다. “너희가 마오타이냐, 우량예냐? 이렇게 비싸서 누가 사겠어?”

이에 대해 수정방의 대답은 분명했다. “그들도 이제는 낡은 이름이다. 마오타이, 우량예와 비교하면 당연히 그들이 더 유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보다 더 오래된 술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객들에게 이렇게 말해 보라. 당신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발효지에서 만든 가장 아름다운 술을 마신다. 술에는 별난 미생물들이 조성한 특별한 성분이 있다. 이렇게 말해도 값이 비싸다고 불평을 하겠는가?”

한편, 수정방은 물건을 달라고 해도 웬만한 업소에는 아예 제품을 넣지 않았다. 업소의 수준이 떨어지면 상품 자체의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업소의 기준까지 엄격히 정했던 것이다. 대신 업소의 판매가는 출고가의 1.5~2배로 하여 그만큼 많은 이익이 업소에 돌아가게 하였다. 업소로서는 대단히 유혹적인 조치가 아닐 수 없었다. 

수정방의 또 하나 영업 특징은 ‘창구효과’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소비자의 의견을 중시하고 대외적인 서비스를 강조한다. 모든 고객에게 매월 회보를 보내는가 하면 명절과 생일을 찾아 꽃다발을 보내기도 한다. 광고에서도 수정방의 특색은 잘 드러난다. 시내버스에 광고판을 붙이는 것은 제품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한다. 여타의 배갈 회사들이 텔레비전 광고에 광고비의 90% 이상을 쓰지만 수정방은 50%만 투입한다. 여기서 생기는 여유로 신문·잡지를 장악하거나 도로변에 광고탑을 세우는 것이다. 차별화는 제품과 포장의 디자인에도 적용되었다. ‘상품(商品)은 디자인이다’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술병과 포장도 가장 고급스럽고 화려하게 하였다.

자못 무모해 보이는 수정방의 전략은 시장에서 제대로 통했다. 경제발전으로 더욱 주머니가 두둑해진 중국의 애주가들은 남들과의 차별성을 위해서도 새로운 술, 더 기품 있는 술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정방은 대대적인 광고와 판촉 활동에 힘입으면서 중국의 최고급 식당과 연회석을 점령해 나갔다.

자신감을 얻은 수정방은 해외에도 눈을 돌렸다. 뉴욕과 파리, 런던의 술자리에도 수정방을 올리겠다는 야심이었다. 이를 위해 2006년에는 윈저, 조니워커 등을 생산하는 영국의 대형 주류업체 디아지오(Diageo)와 손을 잡았다. 품질 검사와 관리, 마케팅의 선진적 기법을 디아지오에서 얻겠다는 계획이었다. 2008년 전흥주 보유의 수정방 지분을 49%까지 장악했던 디아지오는 올해 4%를 추가 매입해 최대 주주(53%)가 됐다. 이와 함께 수정방은 중국 고급 배갈 시장에서 마오타이, 우량예와의 다툼을 더욱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다.

수정방이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문물(文物)’ ‘문화(文化)’ ‘문명(文明)’이다. 다분히 고고학적 대발견을 상품 이미지로 돌리는 한편 너무 호사스럽고 값비싸다는 부정적 여론을 희석시킨다는 의도도 품고 있다. 수정방이 규정하고 있는 자신들의 고객 즉 ‘문화인’이란 우리 식으로 하면 엘리트 남성인데 중국어를 직역하면 ‘고급지식분자(高級知識分子)’가 된다. 이들은 35~55세 사이의 전통적 교양을 가진 남자들이며 비교적 사회적 지위가 높고 자기 현시욕이 있는 이들이다.

이 엘리트들은 속이 차 있으며 태도가 신중하고 말이 적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음악을 들으며 신문을 보고 아침을 먹은 후에는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사무실로 출근한다. 컴퓨터를 켜서 메일을 확인한 뒤 비서가 기사를 체크한 신문을 읽고 그날 처리해야 할 문건들을 살핀다. 오후가 되면 사무실을 떠나 만나볼 사람들을 만나고 저녁에는 뜻 맞는 친구나 업무 파트너를 만나 저녁을 같이 먹고 골프 약속을 한다. 이들이 곧 수정방의 고객이라고 규정하고 판촉의 모든 노력을 여기에 겨누는 것이다. 그래서 수정방이 배갈 애호가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수정방을 마실 자격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