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 철도 산업 나홀로 성장… 고속철도 건설 통해 경기 부양

최근 미국에 경기 침체 덕에 다시 각광받기 시작한 산업이 등장했다. 다른 분야는 모두 어둡고 우울한 전망 일색이지만 철도 산업은 오히려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자동차에 비해 월등한 경제적 효율이 불황기에 매력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달라진 철도 산업의 이미지는 투자의 달인이라 불리는 워렌 버핏이 철도 회사인 벌링턴 노던 산타페(BNSF)를 매입하면서 더욱 강화되는 분위기다.

워렌 버핏, 철도 회사 인수 ‘화제’

철도 산업은 1950년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지금과 같은 체계의 고속도로를 만들기 시작한 뒤부터 사양산업으로 밀려났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철도 산업이 처한 현실은 녹슨 철로와 잡초가 무성한 철둑길로 대변됐을 정도다. 하지만 경기 침체기에 휘발유로 대표되는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서 철도의 매력이 되살아나는 상황이 됐다. 자동차의 경우 가장 효율이 높은 차량이라고 해봐야 1갤런(3.8L)당 주행거리는 30마일(48㎞)을 넘지 못한다. 이에 비해 디젤엔진 기관차는 1갤런으로 175마일(281㎞)을 간다. 이렇게 먼 거리를 주행할 수 있는 것은 디젤기관차의 구조에서 기인한다. 디젤기관차는 디젤을 이용해 차량 전체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다. 디젤엔진은 차량의 충전기를 채우는 것에 사용되며, 차량 자체는 이 충전기가 지니고 있는 전기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높은 연비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워렌 버핏의 버크셔 헤서웨이가 철도 회사인 BNSF를 440억달러에 매입하면서 철도 산업의 이미지 변신은 더욱 확고해졌다. BNSF는 텍사스 주에 본부를 둔 화물운송 전용 철도 회사로 지난 1996년 애치슨, 토피카 그리고 산타페 등 3개의 회사가 합병돼 만들어진 회사이다. 오래된 누적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진행된 합병이어서 이미지도 좋지 않았다. 버핏은 이런 회사의 지분 77.4%를 주당 100달러, 모두 440억달러에 사들여 화제가 됐다.

철도의 인기는 버핏의 인수 후 BNSF의 성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BNSF의 이익은 180억달러로 14%가 증가했으며, 매출은 380억달러로 이전보다 12% 불어났다. 순이익은 23억달러를 기록했다.

고속철도 건설로 친환경 경기 부양

아직까지 BNSF가 주로 운송하는 화물은 석탄이다. 전체 화물의 45%를 석탄이 차지하는데 석탄은 철도에 의해 운반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BNSF가 운반하는 석탄의 대부분은 와이오밍 주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저유황 제품이다. 이 저유황 석탄은 새로운 대체연료의 하나인 무공해 석탄의 원료가 된다. 무공해 석탄은 미국 국방부조차 항공기의 연료로까지 연구되는 차세대 에너지다. 향후에도 저유황 석탄은 수요가 꾸준히 늘어갈 것이며, 이를 운반하는 주역은 철도일 수밖에 없다. BNSF의 성장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비단 버핏 군단의 탁월한 투자감각이 아니더라도 철도는 그 효율성으로 인해 앞으로 더 중요한 교통수단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1갤런의 디젤로 자동차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먼 거리를 주행하면서 그것도 한꺼번에 엄청난 사람과 화물을 실어 나르는 철도는 최근 들어 ‘전혀 새로운 차원의 대체 운송수단’으로까지 선전되고 있다.

미국 철도회사협회가 최근 주요 방송이나 매체에 내고 있는 광고는 향후 철도가 어떤 역할을 할지 잘 드러낸다. 주요 방송시간에 등장하는 이 철도 광고는 잘 생긴 대체연료 차량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초록색의 이 차량은 녹색의 초원 위에 등장하며 눈길을 끌어당긴다. 운전자는 이 차량을 천천히 이동시킨다. 도착지는 차량 운송을 위한 화물 운반용 철로다.

차량이 올라선 철로는 바로 곁에 뻗어있는 2차선의 고속도로가 수많은 차량으로 꽉 막혀 꼼짝하지 못하는 것과 극단적인 대비를 이룬다. 막힘없이 시속 80마일(129㎞) 이상의 속도로 달려가는 철도가 고속도로나 자동차보다 우월한 교통수단이라는 게 이 광고의 메시지다.

오바마 정부 들어 미국은 휘발유 1갤런당 35마일(56㎞)을 가는 차량 엔진을 2017년까지 의무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규제가 생겨났다. 겨우 35마일이지만 부시 대통령 시절에는 거론조차 되지 않는 종류의 규제다. 정부의 변화와 함께 철도에 대한 인식도 변화한 것이다. 디젤엔진 철도차량이 새로운 차세대 교통수단으로 이해되면서 오바마 정부는 철도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이미 공약해 놓은 상황이다.

2008년 10월 오바마 대통령은 새로운 대체에너지의 개발을 약속하는 동시에 연료효율을 높이면서도 경기 부양책이 될 수 있는 방안으로 고속철도의 건설을 약속했다. 공식적으로 불경기가 시작됐다는 2007년 11월 이후 1년 만의 일이다. 이 고속철도는 물동량이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 주와 네바다 주 사이를 연결하는 노선인데  로스앤젤레스와 라스베이거스를 오가는 구간부터 개통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구간의 고속철도 건설을 위해 무려 80억달러를 투입하기로 발표했으며, 매년 10억달러를 추가로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라스베이거스 구간은 여러 측면의 포석이 된다. 먼저 동서를 잇는 철도 가운데 캔자스 시에서부터 서부지역을 연결하는 주요 노선의 일부분이라는 의미가 있다. 또 라스베이거스라는 무한대의 이익을 낼 수 있는 관광 도박지로의 인구 이동을 대량으로 늘릴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고속철도는 철도 부문에서 다른 나라에 뒤쳐진 것으로 간주되는 미국이 고속철도를 건설해 구겨진 자존심을 되살린다는 속내가 깔려 있다. 이미 일본은 신칸센이 오래전부터 실전 운용되고 있으며, 유럽 각국에서도 프랑스의 떼제베, 독일의 이체에(ICE)가 달리고 있다. 그리고 영국 런던의 세인트 팬크러스 역(St Pancras), 프랑스 파리의 북역(Gare du Nord), 벨기에 브뤼셀의 미디 역(Bruxelles Midi)을 최고시속 300㎞로 잇는 국제철도가 있다. 이런 상황을 쳐다보기만 해야 했던 미국이 고속철도를 해봄직한 경기 부양 사업으로 결정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라 할 수 있다.

화물운송 패러다임 대변화 예고

사실 미국의 철도는 느리다. 인프라가 낙후돼 있다. 화물열차의 경우 기껏해야 시속 50마일(80㎞) 정도로 밖에 다닐 수 없다. 그동안 방치돼 노후되고 관리되지 않은 철로 때문이다. 미국 최대 도시인 뉴욕에서 수도인 워싱턴 DC를 잇는 열차는 시속 80마일(128㎞)밖에 낼 수 없다. 세계 최강국의 인프라라고 하기엔 빈약하기 짝이 없는 게 현실이다.

오바마 정부의 철도 산업 육성은 일종의 역발상으로 평가된다. 노후한 철도 산업의 개선이 경기 부양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날로 늘어나는 철도의 인기를 유지하면서 이에 대한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철로의 교체는 물론 보수와 유지공사가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거대한 자금과 인력은 바로 경기 부양 사업 정책으로 안성맞춤이라고 본 것이다.

미국이 철도를 외면하고 있는 동안 아시아와 유럽 국가들은 날로 늘어나는 물동량과 교통난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철도를 주목해왔다. 중국의 경우 철도는 아직도 주요한 교통수단이며, 철도를 이용해 화물을 운송하는 비용도 다른 국가에 비해 저렴하다.

그러나 미국의 철도 재개발 사업이 이뤄질 경우 거리당 소요되는 운송비는 중국보다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계산이다. 여기에 고속도로의 교통량이 날로 늘며 정체 현상을 이어갈 경우 철도의 운송 대상은 화물뿐만 아니라 여객으로 번질 전망이어서 철도의 인기는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흐름은 벌써부터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들어 J.B 헌트와 같은 트레일러차량 운송 회사들은 트레일러차량 전체를 벽면 없이 바닥만 있는 철도차량에 그대로 실어 일정 구간을 이동하는 운송 형태를 고려하고 있을 정도로 철도의 유용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향후 트레일러차량은 철도에 실리는 것을 염두에 둔 형태로 변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미국 연방 교통부도 철도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교통부는 오는 2035년까지 철도에 대한 수요가 지금보다 90%가 더 늘어날 것이며, 이에 대한 투자와 대처가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철도의 인기와 함께 안전 시스템 개선에 대한 요구도 증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생한 사고의 단 3%만이 인간의 실수 탓이며, 대부분은 시스템 문제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는 2008년 철도 안전 증진 계획을 통과시키고 2015년까지 PTC 시스템(안전성 증대를 위한 열차 운행 제어 및 모니터링 시스템)을 장착하도록 했다. 자동차 천국으로 불리던 미국이 철도의 나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