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담은 서비스 혁신 12년 ‘결실’

아날로그 정신으로 부활한 도쿄 명물

위기 기업의 최대 희망은 ‘V자 회복’이다. 지금처럼 불황 극복이 시급한 상황에선 특히 그렇다. V자 회복 기업의 명성이 낙양지가(洛陽紙價)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동시에 후발기업의 벤치마킹 움직임도 뜨겁다. 그들의 앞선 길이 자사의 결정적인 생명줄일 수 있어서다. 이런 점에서 2010년 여름 일본 재계의 관심 기업은 단연 ‘하토버스’다. 몇 차례에 걸친 일촉즉발의 경영위기를 놀라운 V자 회복력으로 극복해낸 덕분이다. 실제 경기 침체는 레저 산업에 직격탄을 날렸지만 하토버스의 흑자행진은 보란 듯이 현재진행형이다.

노란색의 하토버스는 투어버스의 대명사다. 도심 여행의 간판스타로 소문난 도쿄 명물 중 하나다. 하토버스 가이드는 TV드라마 주인공의 직업으로도 소개된 바 있다. 그만큼 친근한 브랜드다. 사업모델도 특이하다. 버스 회사이면서 동시에 여행사인 까닭에서다. 차별성은 또 있다. 대주주(37.9%)가 도쿄도(東京都)로 일종의 반관반민 기업이다. 그렇다고 여행사 백그라운드가 없지도 않다. 2대주주(25.5%)가 넘버원 여행사인 JTB다. 이밖에 메트로문화재단(12.5%), 도쿄지하철㈜(10%), 이스즈자동차(8.2%) 등이 주요주주다. 막강주주에서 알 수 있듯 이렇다 할 라이벌은 없다. 계열사(4사)도 있다. 본관(256실)과 신관(318실)을 갖춘 긴자캐피털호텔이 대표적이다. 

98년 본격 개혁 …‘성공 기업 DNA 주입’

1990년대 중반 이후 하토버스는 거듭되는 위기와 극복의 스토리를 썼다. 버블 붕괴 이후엔 상시적인 도산 압박에 시달렸다. 일례로 1993년부터 4년 연속 적자를 내기도 했다. 1993년 매출액 150억엔을 정점으로 1998년엔 120억엔대까지 무너졌다. 승객도 1991년(94만 명) 이후 급감했다. 위기 극복은 1998년 취임한 미야바타 기요쓰구(宮端淸次) 사장에서 비롯됐다. 취임 당시 상황은 최악이었다. 자회사 청산 등의 영향으로 세전손실만 9억6000만엔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차입금도 70억엔으로 불어나 갚기 위해 빌리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본격적인 개혁 단행이 불가피했다.

신임 CEO는 경비 절감부터 사업 정리까지 과감히 진행했다. 원래 하토버스는 위기와 거리가 멀었다. 사실상 도영회사였기에 지자체 후원이 버팀목으로 작용했다. 다만 사령탑 생각은 달랐다. 지하철건설 부사장 시절 고객만족 경영의 파워를 실감했기에 얼마든 위기 극복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예상은 적중했다. 조직원의 일치단결을 통해 참신한 발상과 적극적인 실천력을 이끌어낸 그는 순식간에 하토버스를 개조했다.

첫 번째 카드는 공무원 특유의 ‘복지부동’ 뿌리 뽑기였다. 임기 중 본인(30%)은 물론 임원(20%), 직원(10%)의 임금 삭감을 단행한 게 대표적이다. 흑자를 위한 선택이기도 했지만 안이한 자세를 없애려는 목적이 컸다. 하토버스에 성공기업 DNA가 주입되는 순간이었다.

CEO의 자신감은 대단했다. “취임 첫해에 흑자를 낸 뒤 3년 후 급여를 올려주겠다”며 “안 되면 그만 둘 것”이라고 배수진을 쳤다. 자신감은 곧 실천으로 이어졌다. 우선 품질 확보에 포커스를 맞췄다. 품질이란 곧 고객 서비스였다. ▷매력 있는 상품개발 ▷차별적인 차량 투입 ▷친절·우수한 직원 배양 등이 그렇다. 서비스는 고객만 안다. 이에 사장은 사비로 월 1회씩 자사 투어에 참가하도록 했다. 사원 전원이 참가하는 서비스 연수도 실시했다. 이때 강조된 개념이 지금은 유명해진 ‘100-1=0 및 100-0=200’ 개념이다. 100명 고객 중 1명이라도 불만을 느끼면 도루묵이되(100-1=0) 거꾸로 100명 모두 만족시키면 덤의 가치를 얻는다(100-0=200)는 얘기다.

명확해진 경영비전은 두 가지 추구가치(고객제일주의, 현장중심주의)와 한 가지 지양가치(판매지상주의)로 세분화됐다. 이를 위해 고객서비스추진부를 신설했다. 조직도 상부에 고객을 두고 사장은 제일 밑에 위치했다. 그전엔 없었던 현장직과의 커뮤니케이션(건의함) 통로도 만들어 적극 반영했다. 현장직과의 회의와 토론은 생생한 아이디어로 연결됐다. 가령 승하차 때 발 딛는 곳을 하나 더 만든 것이나 대당 200만엔을 더 들여 좌석높이를 높인 것 등이 현장 고민에서 비롯됐다.

“맛없는 녹차는 사장이 먹는다”

차내에서 제공되는 녹차 품질 향상안도 현장에서 제안됐다. 연 15만엔의 경비 절감을 위해 싼 녹차를 썼었는데 이게 되레 이미지를 버린다고 판단해 이전의 고급 품질로 되돌린 것이다. 대신 싼 녹차는 사장실에서 사용했다. ‘녹차 한 잔의 개혁’은 지금도 유명한 얘기로 회자된다. 불만 사항은 사장이 직접 챙겼다. 불만 고객에게 사장이 직접 만년필을 들어 사과문을 썼다. “사원 중 한 명이라도 서비스 부적격자가 있다면 제대로 된 고객 만족은 불가능하다”며 고강도의 서비스 개선을 요구했다. 그 결과 재임 중 6명의 운전사가 자발적으로 퇴직했다.

“오늘도 무사고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고객 앞에서의 안전운행 선언도 습관처럼 굳어졌다. 투어 때 방문하는 레스토랑·선물가게 등에 관한 불만이 확대되자 약 400개사의 거래처를 모아 ‘하토버스공동번영회’를 만들어 대응하기도 했다. 이때 우수 거래처 표창 등도 이뤄진다. 하토버스는 CS(Customer Satisfaction)를 넘어 CD(Customer Delight)를 목표로 절정의 고객 만족을 지향한다. “설마 그것까지 할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주간동양경제>는 “하토버스 서비스는 뛰어난 매뉴얼도, IT 도구도 활용되지 않은 아날로그 정신”이라며 “특히 전원 참가의 서비스 정신이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개혁은 물론 어려웠다. 이미 업계는 과당경쟁 한가운데 돌입한 상황이었다. 수익 악화가 업계의 입버릇이었을 정도다. 손해를 감수하고 저가 상품을 내놓는 곳이 부지기수였다. 그나마 손님도 차지 않을 때가 태반이었다. 하토버스는 그나마 사정이 월등히 나았다. 그럼에도 경기 침체, 유가 급등의 외풍을 완전히 피할 순 없었다. 개혁 단행 후 2~3년 매출이 늘더니 다시 멈춰선 것이다. 다행인 건 제자리걸음은 유지했다는 점이다. 저가 과당경쟁보단 다양한 상품 라인업을 구비하며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은 덕분이었다. 실제 1990년대 후반 개혁 단행 이후 식사, 숙박 엄선은 물론 가이드, 승무원의 서비스 품질 향상은 상시적으로 진행됐다.

2005년 하토버스는 두 번째 위기 극복에 성공했다. 멈췄던 성장엔진이 신임 사장 마츠오 히토시(松尾均)의 등장으로 다시 움직였다. 전임 사장이 다진 토대 위에 후임 사장의 새로운 에너지가 더해져 V자 회복의 본격가동이 개시된 셈이다. 마츠오 사장 역시 전임처럼 도쿄도 교통부서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그는 고객 만족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얹어 한층 구체화했는데 이게 매출 증진의 일등공신이 됐다. 법인수요 감소와 버스 사업 자유화 등의 역풍을 이겨낸 비결로 <니치테레(日TV)>는 우직한 고객 서비스를 꼽았다.

환락가 음주 접대 상품까지 등장

당장 고객과 매출이 늘기 시작했다. 2004년 54만 명까지 떨어진 고객은 매년 2만 명 가까이 늘며 작년엔 66만 명을 돌파했다. 매출액은 2005년 129억엔에서 2009년 156억엔으로 늘어났다. 사상 최고치 경신기록이다. 올해 전망은 훨씬 밝다. 이대로라면 40억엔의 장기차입금도 조만간 모두 갚을 계획이다. 넘버원 지명도는 이제 굳히기에 들어갔다. 가령 <여행신문>이 주최한 ‘프로가 선택한 관광코스 30선’에 하토버스의 상품이 올해를 포함해 8년 연속 1위에 랭크됐다. 마츠오 사장은 “하루 대부분을 차내에서 접대하는 업태는 우리 말고 없다”며 “그만큼 누적된 작은 서비스가 중요하다”고 했다. <니혼게이자이>는 “불황 속에 싸고(安) 가깝고(近) 짧은(短) 여행을 선호하는 흐름에도 불구하고 하토버스의 기발하고 다양한 기획력과 만족스런 고객 서비스가 인기기반이 됐다”고 평가했다.

하토버스의 고객 만족은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출발한다. 고객이 원하는 투어상품을 그때그때 구성한 게 무엇보다 주효했다. 실제 홈페이지엔 기발한 코스상품이 가득하다. 투어코스는 정기관광 200개에 기획관광 600개(수시운행은 50~60개)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마츠오 사장은 이를 위해 취임 직후부터 사활을 걸었다. 고급 레스토랑의 식사를 포함한 투어와 자위대, 군항 방문의 밀리터리 투어 등 독특하고 재미난 기획이 대거 쏟아졌다. 1만2000~1만5000엔대로 도쿄 환락가에서 음주접대를 받는 코스까지 생겨났다. 작년엔 퇴직 여성 가이드의 안내로 고도 성장기 추억을 되새기도록 한 코스가 히트를 쳤다. 이는 올해 초 그리운 옛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명소를 방문해 노래를 부르도록 한 상품 개발로 이어졌다.

투어기획은 브레인스토밍에서 결정된다. 전담부서는 물론 사내 전체와 고객제안까지 반영된다. “고객의 불만·꾸중·제안이 하토버스의 보배”라는 사장의 생각처럼 열린 사내문화가 풍부한 아이디어의 근원이 됐다. 아이디어는 부정적인 평가보단 가능한 한 실현하는 방향에서 검토된다. “해보고 아니면 그때 없애도 되기 때문”이다.

먹음직해도 먹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이런 점에서 하토버스는 여행 신청단계부터 고객 눈높이에 맞춰 부응했다. 당장 빡빡한 시간표처럼 보인 무미건조한 팸플릿을 신감각의 최신 비주얼로 대체했다. 팸플릿이 고객 증대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호평이 나오는 이유다. 즉 사진은 거의 없이 비슷한 사각박스 안에 글자만 가득하거나, 혹은 루트마다 변함없는 명소사진만 싣던 관행을 과감히 바꾸었다. 이미지 걸을 비롯해 미소를 머금은 사람을 배치해 실감을 높였다. 내용도 한편의 잡지를 연상하도록 만들었다. 재미있게 읽으면서 여행코스의 특징과 매력을 알 수 있게 배려했다. 두께도 한층 두꺼워졌다. 1991년 8쪽에서 올해는 46쪽으로 확대됐다.

차량과 가이드 수준도 대폭 업그레이드했다. 특히 가이드의 고객 만족도는 업계 최고 수준이란 정평이다. 정확하고 재미난 설명은 물론 필요하면 관광지 근처에서 관련 노래까지 불러주도록 사규로 정해놓았다. 도심관광 땐 한국·중국어 등 복수언어로 설명하는 자동가이드 시스템을 갖췄다.

차량 품질도 대단하다. 하토버스는 고객 만족을 위해 차량 자체를 타사와 차별화했다. ‘하토마루군’으로 불리는 버스가 대표적이다. 보통 관광버스 1대가 4200만엔 정도인데 하토마루군은 8000만엔에 달한다. 좌석수가 적어 채산성이 떨어질 우려와 예약 프로그램의 소프트웨어 변경에도 불구하고 차별화를 위해 좌석 27개에 폭과 논ㅍ이를 10cm씩 늘린 고급차량의 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