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디자이너 영입·명품존 매장 고집해 ‘뉴 럭셔리’ 브랜드로 대변신

럭셔리 브랜드 MCM(Mode Creation Munich)은 타임머신을 탄 것인가. 1980년대 럭셔리 브랜드의 대명사였던 MCM. 고급스런 독일의 명품엔 엄청난 가격표가 붙어 당시 MCM은 ‘모어 캐쉬 머니(more cash money)’로 불렸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구조조정을 거치며 머릿속의 명품 진열대에서 사라져가던 이 브랜드가 다시 솟구쳐 오르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부활’, ‘화려한 변모’, ‘동양적 변신’ 등의 수식어를 붙여 MCM의 재등장을 조명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경제지인 <월스트리트저널>은 3월13일자 주말 판에서 1개 면을 털어 “야망을 가진 한국 여성 기업가가 빛바랜 명품 브랜드의 부활을 시도한다”고 특집기사를 다뤘고, 미국 증시를 흔드는 경제방송 CNBC는 지난 4월6일 파워런치 프로그램에 MCM의 김성주 회장을 초대해 집중 인터뷰를 가졌다. MCM을 보면서 마치 전성기를 누리다가 사라진 스타가 갑자기 젊고 새로운 콘셉트로 변신해 다시 무대 위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모습을 미국인들은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MCM은 1976년 독일 브랜드로 태어나 1990년대 중반까지 독일과 뉴욕에서 명품 브랜드로 각광을 받았다. 세계 32개국에 150개 단독 매장을 갖췄고, 매출은 3억5000만달러에 달했다. 시장에는 MCM을 흉내 낸 모조품이 넘쳐났다. 월계수와 이니셜 M으로 독수리 모양을 만든 MCM의 로고처럼 MCM은 위용 있는 명문의 반열에 올랐다. 당시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은 MCM 브랜드를 수입, 한국과 미국 시장에서 판매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경영진의 개인 비리로 MCM 본사의 경영은 급격히 위축됐고, 1997년엔 아시아 외환위기로 아시아 시장 비중이 높았던 MCM은 타격을 받았다. MCM의 속사정을 잘 알고 있던 김 회장은 기회를 노리다가 전격적으로 MCM 인수에 돌입했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MCM이 한국인의 수중으로 떨어지는 것을 우려해 극도의 방해공작을 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구치·입생로랑 등을 한국에 들여와 프랜차이즈화하는데 성공한 김 회장의 경력과 비전 제시가 주효해 2005년 3월 MCM의 주인은 독일인에서 한국인으로 바뀐다.

김성주 회장 인수로 다시 각광

김 회장은 인수 후 독일 등에서 대대적인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실적이 떨어지는 매장은 과감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아디다스의 스타 디자이너 마이클 미셸스키, 마크 제이콥스의 액세서리 디자이너 조이 그리슨 등을 영입하는 등 4000만달러에 이르는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했다. 

MCM은 부활의 무대로 뉴욕을 택했다. 세계 패션의 중심지이면서 비즈니스 규모가 가장 큰 이 도시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MCM의 노출은 철저히 절제되고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MCM은 2007년 뉴욕에서 첫 번째 비즈니스 상대로 명품 백화점인 블루밍데일을 택했다. 그리고 1년 뒤 단독 부티크 매장을 뉴욕 센트럴파크 입구의 명소, 플라자호텔에 열었다. 당시 개장 기념 파티에는 여배우 브룩 쉴즈, 스타 모델인 유지너 워싱턴, 뉴욕패션위크를 주관하는 IMG의 수석 부사장 펀 맬리스, 삭스 피프스 애비뉴의 테런 섀퍼 마케팅담당 부사장 등 뉴욕의 명사들이 참석했다.

MCM은 단독 매장을 연 뒤, 여러 백화점의 입점 제의를 거부하고 1년을 다시 기다려 마침내 2009년 9월 세계 명품 시장을 리드하는 백화점 가운데 하나인 삭스 피프스 애비뉴의 15개 점포에 동시에 입점했다. 삭스 피프스 애비뉴 내 MCM 매장은 6개월 동안 다시 10개가 늘어 현재는 25개 매장에서 영업 중이다. 뉴욕 맨해튼 5번가에 있는 삭스 피프스 애비뉴 백화점 1층에 들어서면 정면의 입구 쪽에 MCM 매장이 있다. 별도 섹션이 있는 루이뷔통 등을 제외하곤 가장 좋은 위치다.

MCM은 세계 4대 패션위크인 뉴욕패션위크도 마케팅 포인트로 이용했다. 지난해와 올해 2회 연속 뉴욕패션위크 행사가 열린 뉴욕 브라이언트 공원 내 파운틴을 MCM 가방으로 꾸몄다.

MCM 측은 철저히 최고급 매장을 택하고, 세계 미디어가 주목하는 행사를 후원하는 것이 계산된 마케팅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명품 브랜드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한 것이다. 미국 언론은 뉴욕을 부활의 무대로 잡은 것은 일종의 ‘후광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뉴욕의 이미지를 이용해 주된 소비자층이 있는 아시아를 겨냥하고 있다는 얘기다.

MCM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샤넬·에르메스·루이뷔통 등이 자리 잡고 있는 명품 시장에 진입할 틈이 있느냐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명품 시장 분석가인 WGNS의 샌드라 핼리데이의 말을 인용, “다른 누군가의 잔디밭에서 막강한 브랜드들과 경쟁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성주 회장은 “새로운 시장이 있다”고 단언하며, ‘뉴 럭셔리’ 개념을 제시한다. “과거의 럭셔리는 돈 많은 부모 혹은 남편을 둔 부인들이 구입하는 비싼 브랜드였다면 MCM은 커리어 우먼을 겨냥한 새로운 브랜드이기 때문에 기능적인 면을 더 중시하죠.”

전 세계적으로 여성 프로페셔널의 위상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라이프사이클을 고려한 제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령 핸드백의 경우, 화장품과 빗, 핀과 열쇠 등을 담아야 할 뿐만 아니라 책과 서류, 넷북이 들어갈 만큼 충분히 커야한다. 김 회장은 지난해 말 미국 패션잡지 <스타일리스트>와 인터뷰에서 ‘럭셔리 백을 하나만 고른다면 어떤 스타일을 골라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투자 가치가 있는 것을 사야 한다”며 “품질이 열쇠이긴 하지만 디자인의 관점에서 볼 때 기능성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김 회장은 자신이 들고 있던 MCM 던디 패턴트 쇼퍼백을 예로 들며 “컴퓨터가 쏙 들어가면서도 안에는 지퍼가 많아 이것저것 잘 정리할 수 있다”며 “단지 장식만을 위한 백은 더 이상 안 된다”고 말했다.

‘뉴 럭셔리’는 프로페셔널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럭셔리하면서도 적절한 가격대를 표방한다. 예를 들면 버버리와 루이뷔통 사이 정도로 평균 700~1000달러의 가격표를 붙인다.

MCM의 ‘뉴 럭셔리’는 불가피하게 코치의 ‘어포더블 럭셔리(affordable luxury)’ 개념과 충돌한다. 코치 역시 여성 프로페셔널을 대상으로 하면서 엔트리 레벨의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낮은 럭셔리를 추구한다. MCM은 유럽 명품 브랜드인 자신들이 미국의 코치보다 이미지상 우위에 있다며 코치와 비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즈니스 개념에서 볼 때, MCM과 코치는 모두 어떻게 럭셔리가 주는 고고한 분위기를 잃지 않으면서 구매를 용이하게 하느냐 하는 어려운 줄타기의 과제를 안고 있다.

MCM의 가장 큰 장점이자 리스크는 김성주 회장 자신이다. MCM은 마케팅 제일선에 김 회장을 내세운다. 여성 프로페셔널의 상징이면서 성공 스토리를 지닌 김 회장은 어떤 모델도 대신할 수 없는 MCM의 가장 큰 자산이다. 완고한 대성그룹 회장의 막내딸로 태어나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학을 떠나고, 하버드 대학에 유학하던 외국 남자와 결혼해 결국 부모의 재정 지원이 끊긴 뒤, 뉴욕의 블루밍데일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일어서 명품 브랜드 프랜차이즈 사업과 마침내 세계 명품 브랜드의 주인이 된 김 회장의 스토리는 매력적이다. 미국 여성 프로페셔널이 당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유리 천장’이라면, 김 회장은 콘크리트로 쌓여진 남녀차별의 벽을 허문 여전사라고 볼 수 있다. 외국 언론에서 김 회장을 ‘징기스 김’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김 회장, 파워있는 여성 7인으로 선정

김 회장은 2001년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미래의 글로벌 리더에 뽑혔고, 2004년엔 <월스트리트저널>이 뽑은 ‘지켜봐야 할 톱 여성 50인’에 선정됐으며, <아시아위크>의 ‘아시아에서 가장 파워 있는 여성 7인’으로 분류됐다.

런던·뮌헨·뉴욕·상하이·서울을 돌아다니는 그의 라이프스타일은 ‘여성·프로페셔널·글로벌’로 표현되는 MCM의 타깃 이미지에 딱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아시아 시대로 세계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전환점에 한국 여성이라는 출신 또한 장점으로 부각될 수 있다. 회사 이익의 10%를 매년 사회에 환원하는 김 회장의 철학도 ‘책임감 있는 럭셔리(responsible luxury)’ 개념과 일치한다.

그러나 반대로 그만큼 뉴 MCM의 이미지가 김 회장 개인으로 상징되는 것은 리스크가 될 수도 있다. 마치 세계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이 회장으로 있는 버크셔 헤서웨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일각에는 버핏이 은퇴하면 버크셔 헤서웨이의 가치가 깎일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MCM은 명품 브랜드이기 때문에 김 회장의 이미지가 변할 경우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