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수출 동반 추락… 탈자동차화 고착화 되나?

일본은 자동차 왕국이다. 고도성장의 주역답게 자동차가 일본 경제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실제로 부품만 약 2만 개라니 산업적인 전후방 연관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효자산업이 요즘 악재로 뒤덮였다. 나라 밖에선 토요타의 좌절이 잊지 못할 생채기를 안겨준 데 이어 내수시장은 탈(脫)자동차화가 판매 급감으로 고착화하는 모습이다. 요컨대 일본의 자동차 산업은 내우외환의 복합악재에 죽을 맛이다. 특히 심각한 건 내수 부문 판매 하락이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장기·복합적인 추세로 굳어진 느낌인 까닭에서다. 일본의 탈자동차화가 갖는 의미와 해법은 과연 무엇일까. 

선진국 최초의 ‘탈자동차화’

탈자동차(Demotorization)란 자동차 구매·보유욕의 감소를 뜻한다. 자동차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다. 그것도 세계 최고·최대 수준의 생산·구매력을 자랑하는 자동차 왕국 일본에서의 현상이다. 주요 언론이 가십을 넘어 무게 있게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JD파워>는 “일본은 선진국 최초로 자동차 보유율이 낮아지는 중”이라며 “탈자동차화가 하나의 트렌드로 정착됨을 의미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여전히 자동차 보유 대수가 늘고 있는 한국으로선 ‘남의 나라’ 얘기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탈자동차화의 원인이 정확히 겹쳐서다. 탈자동차를 부추기는 주요 요인으로 거론되는 저출산(고령화), 저성장, 고유가, 환경 규제 등이 한·일 양국 모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도 이제 자동차 보유를 당연시 한 사업모델은 힘들어질 전망이다. 일본의 탈자동차화가 강 건너 불구경만은 아닌 이유다.

실제로 각종 통계를 보면 일본의 탈자동차는 확실한 추세로 판단된다. 먼저 내수시장의 소비 현황을 보자. 일본자동차공업협회는 2010년 자동차 내수판매를 전년 대비 4.9% 줄어든 약 461만 대로 전망했다(승용차는 5.5% 감소한 약 395만 대 추정). 이는 1977년 423만 대 이후 33년 만의 최저치다. 호황 시절이었던 1990년(780만 대)에 비하면 거의 절반 수준이다. 판매 대수 500만 대 이하는 2008년 이후 내리 3년째다.

그나마 올해는 사정이 좀 낫다. 작년 상반기에 연이어 시행된 친환경차 감세와 노후차 보조금 덕분에 판매 대수가 깜짝 증가해서다. 하지만 다가올 9월 시한이 종료되면 판매 하락은 보다 심화할 전망이다. 반짝 늘어난 건 일종의 단기적인 착시현상에 불과하단 얘기다. 판매가 주니 생산도 덩달아 감소세다. 메이커들도 판매 부진을 이유로 생산조절에 들어갔다. 2009년 자동차 국내 생산 대수는 약 794만 대까지 떨어졌다. 전년 대비 31.5% 급락한 수치다. 금융위기 탓에 수출 물량은 무려 46.2%나 줄어든 362만 대에 그쳤다. <요미우리신문>은 경기 불황과 수요 급감으로 생산, 수출 모두 최대 하락세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탈자동차를 뒷받침하는 통계와 풍경은 이밖에도 많다. 신차 등록 대수가 2003년 403만 대에서 2008년 321만 대까지 감소하면서 결과적으로 세대별 자동차 보유 비율도 2006년 가구당 1.112대에서 2008년 1.095대로 줄어들었다. 일본자동차공업협회의 4월 동향조사에 따르면 자가용 보유 세대는 1995년 이후 최저수준을 연이어 갱신 중이다. 보유 비율은 75.8%에 그쳐 4가구 중 1가구가 자동차를 갖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안 팔리면 값을 내리는 수밖에 없다. 가격 인하다. 실제 요즘 TV 광고를 보면 품질보단 가격 문구가 부쩍 늘어났다. 원래 자동차의 경우 가전제품, 음식료, 의류 등과는 달리 가격 인하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업종으로 이해됐다. 제조사가 판매망을 쥐고 있어 가격 결정권을 쉽게 포기하지 않아서다. 동종 차종, 유사 가격이라는 암묵적인 업계 동의도 가격 인하의 장애물이었다.

그랬던 게 판매 부진 파고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기존 구매자의 배신감과 추가 인하 기대감 등 자칫 부작용이 더 클 것이란 염려도 당면한 불황 압력과 생존 우선의 압박감을 넘어서진 못했다. 개량 모델의 경우 발매 때마다 가격이 올라가던 관행도 사라졌다. 연비 개선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더 낮추는 식으로 변한 것이다.

작년 2월 혼다가 하이브리드카인 ‘인사이트’를 발매하면서 가격을 판매 불가능의 영역으로 불리던 200만엔 이하에 내놓은 게 가격 경쟁의 계기가 됐다. 이쯤 되자 수입차 업계는 악전고투가 불가피해졌다. 현대차가 일본 시장 철수를 선언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그렇잖아도 복잡한 유통망과 보이지 않는 수입차 장벽 탓에 시장 진입과 확대에 고전하던 현대차로선 탈자동차 추세에 비례해 판매 부진이 심화되자 어쩔 수 없이 내린 고육지책이었다. 

탈자동차화의 이유는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그래서 더 심각하고 충격적인 흐름일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역시 돈이다. 자동차를 소유하는 데 돈이 많이 든다는 얘기다. 일본의 경우 차량가격과 주차비·보험료 등을 합하면 월평균 500달러 이상이 든다. 대당 신차세금도 1만7000달러로 미국의 4.1배에 달한다. 샐러리맨 평균월급이 약 27만엔(2009년)대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부담이다.

2030세대, ‘차 살 돈이 없다’

특히 주차비 압박이 크다. 마이카를 갖고도 출퇴근용으로 쓰지 않는 건 회사와 집을 포함해 대략 월 5만~6만엔대 이상의 살인적인 주차비 때문이다. 이럴 바에야 챙겨주는 교통비로 부담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합리적이다. 한국처럼 10부제 같은 차량 사용 규제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얌전한 운전문화를 강제하는 엄청난 위반 벌금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주정차 위반에 벌금이 1만5000엔 정도다. 연료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들 이 정도 부담이면 마이카 지옥이나 마찬가지다. 업계로선 일종의 틈새상품인 경차 판매가 숨통을 열어줄 뿐이다.

값이 비싸도 돈만 있으면 탈자동차 추세는 막을 수 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의 복합불황 여파로 소득 감소는 무차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자동차 시장의 든든한 소비 그룹인 청장년층의 지갑 사정이 말이 아니다. 실제로 자동차의 최대 잠재고객은 2030세대다. 취업·결혼·육아 등 라이프사이클의 시작과 함께 본격적인 마이카 대열에 합류해서다. 하지만 일본의 2030세대는 가난하다. 내수 침체로 가뜩이나 취업전선이 암울한데 취업해도 비정규직이 태반이니 불안감은 일상적이다. 2030세대의 줄어든 가처분소득이 자동차 구매 포기로 이어진 셈이다.

미래소득이 불안하니 신용(대출)구매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로 어렸을 적 버블 붕괴에 따른 불황 충격을 경험한 이들 2030세대는 풍족한 소비보단 오히려 아끼는 저축에 더 익숙하다. 목돈을 들여 자동차를 살 바에야 언제 잘릴지 모를 내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들에게 자동차는 비용 대비 효용이 낮은 사치재란 인식이 강하다. 소비 품목 관련조사에서도 자동차는 우선순위가 크게 떨어진다. 20대를 대상으로 한 맥크로밀 설문조사(2008년)에 따르면 돈의 용처 1~3위는 저축·여행·패션이 차지했다. 자동차는 16위였다.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도쿄 거주 20대의 자동차 보유율은 2000년 23.6%에서 최근 10%대 초반까지 하락했다. 페라리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2030세대의 축소지향적인 소비관행을 다룬 방송보도도 낯설지 않다. 젊음의 상징이었던 날렵하고 값비싼 스포츠카의 주인들은 대부분 50~60세 이상의 베이비부머로 압축된다. 1600조엔의 금융자산 중 70% 이상을 소유한 이들로선 더 늦기 전에 꿈을 실현하고 싶어서다. 베이비부머에 집중된 스포츠카 구매·보유현상이 2030세대의 상대적 박탈감과 격차 심화의 단적인 사례로 거론될 정도다.

탈자동차화의 영향은 무차별적이며 광범위하다. 요컨대 자동차 덕분에 먹고 살았던 모든 산업 분야에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할 게 확실하다. 직접적인 자동차 생산·판매·서비스 등의 유관 산업은 물론 관광·외식·쇼핑 등의 원거리 이동 산업에까지 불황의 그늘을 드리울 것으로 우려된다. 일례로 레스토랑·할인매장 등 교외 입지를 노린 관련 업종이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자동차를 통한 근접성을 무기로 대규모 집적공간을 실현해 원스톱 생활편의를 제공하는 사업모델이 일본에선 통하기 힘들어졌다는 분석이다. 과거 월마트의 철수를 재차 떠올리는 사례도 늘고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은 그나마 매출 유지가 가능하지만, 자동차가 필요한 교외지역 매장은 날이 갈수록 매출 침체에 고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탈자동차화가 새로운 수익구조로 연결되는 경우도 적잖다. 위기가 기회인 셈이다. 자동차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신규 업종과 함께 기존의 대중교통에 보다 의존한 사업모델의 부각이다. 대표적인 게 렌터카·오토리스 비즈니스다. 사는 것보단 빌리는 게 낫다는 건 탈자동차의 중요한 근거다. 이를 근거로 향후 일본의 빌려 쓰는 자동차 시장은 적잖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비용 절감, 편의 증대를 내세워 주유소, 주차장 등과 연계한 렌터카 매장도 증가세다. 이 결과 일본의 렌터카 시장은 2000년대 이후 30%나 커졌다.

자동차 업계 속병 ‘시름시름’

카 셰어링(Car Sharing)도 인기다. 도심 환승역 등엔 카 셰어링을 안내하는 팸플릿 배포가 일상적이다. 이는 다소 생소한 개념으로 1대의 자동차를 공동소유한 뒤 사전 예약, 비용 지불을 통해 나눠 쓰는 구조다. 콘도 회원권과 비슷한데 아직은 회사 영업 때 활용하려는 법인고객이 많다. 도심 곳곳에 포진해 있는 공용주차장을 기지로 쓴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특히 카 셰어링은 사용 시간, 주행 거리에 따라 요금을 내 렌터카보다 저렴한 게 장점이다. 아직은 드물지만 철도와 버스를 연계해 고령자 수송 효율을 높인 DMV(Dual Mode Vehicle)도 출현했다. 이밖에 자동차 없이도 접근 가능한 생활밀착형 역세권에 대한 관심도 높다.

탈자동차는 무엇보다 완성차 메이커의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십분 양보해 내수시장 목표를 확대 성장이 아닌 관리모드로 전환한다 해도 그 현상 유지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어서다. 실제로 잇따른 리콜사태와 세계적 경기 불황의 복합악재에서 벗어나기 위한 업계의 몸부림은 처절하다. 당면한 악재 극복과 함께 탈자동차의 충격 흡수를 위한 묘책 마련이 무엇보다 급하다. 일단은 중장기 과제로 2030세대의 눈높이에 맞춘 전략 모델 개발에 착수했다. 저비용으로 미래기술을 녹여낸 친환경 경차 모델이 대표적이다.

500만 대의 대규모 리콜로 체면을 구긴 토요타는 신뢰 회복부터 강조했다. 탈자동차 추세에 맞게 확대 전략보단 품질관리를 통해 △현지에의 권한 이양 △새로운 안전기술·시스템 도입 △경영·인재육성 시스템 재검토 등을 실현하겠다는 계획이다. 닛산은 자본제휴 중인 르노가 다임러와 업무제휴를 맺음에 따라 향후 3사 연합을 기대하고 있다. 부품 공유 등을 통해 비용 절감, 기술 향상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다. 차세대 자동차 개발 경쟁이 규모에서 승부가 난다는 점도 닛산으로선 고무적이다. 이와 함께 업계는 인도와 중국 등 새롭게 부상 중인 중산층 시장을 찾아 해외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Tip | 일본의 자동차 산업

도요타가 써내려간 (주)일본의 자존심


▷▶ 일본의 자동차 산업은 1950년대 한국전쟁에 따른 특수(特需)를 계기로 급속히 발전했다. 비약적인 성장기반은 1960년대 수출 시장에 뛰어들면서부터다. 호송선단 방식의 민관협조체제에 근거한 특유의 생산 방식과 장기·안정적인 신뢰 기반의 노사관계가 본격적인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현장 중시의 제조철학도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다져지기 시작했다.

1970년대엔 마이카 열풍으로 자동차 대중화가 확산되면서 내수시장도 한층 탄탄해져갔다. 특히 오일쇼크를 지나며 에너지 고효율 자동차 생산에 성공함으로써 경쟁력은 세계적인 수준으로까지 업그레이드됐다. 미국이 오일쇼크 이후 주춤하던 차에 연비에 경제성을 맞춘 일본 차의 시장 장악이 주효했던 것이다. 덕분에 1980년 일본은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국이 됐다. 도요타 생산 방식이 세계 제조업의 표준적인 경영 모델로 규범화한 것도 1980년대부터다. 이른바 도요타이즘의 탄생이다. 이후 2009년엔 중국에 뒤졌지만, 2008년까진 단연 세계 1위 생산국의 자리를 지켰다. 연간 1100만 대 이상의 생산량으로 전체의 15~20%를 차지했다. 2007년 기준 등록 대수(승용차)는 미국(1억3500만 대)에 이어 2위(5800만 대) 규모다.

일본의 자동차 산업은 도요타자동차와 그 맥을 같이 한다. 도요타야말로 일본 경제의 상징이자 대표적인 수출 기업으로 명성을 쌓아왔다. 일본 기업의 정석이자 맏형답게 수출전선을 굳건히 지키며 열도 일본의 자존심을 세웠다. 1990년대 복합불황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2000년대 이후 공격적인 신차 개발, 해외 진출로 세계 최강의 제조업체로 성장했다. 현재 약 170개국에서 판매될 정도로 광범위한 글로벌 유통망을 가졌으며, 2008년엔 매출액 26조엔으로 GM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섰다. 이는 일본 정부예산의 약 1/3 정도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사상 최대 흑자 기록답게 도요타 혼자 법인세의 5%를 납부했다. 말 그대로 신화적인 기업이었다. 하지만 도요타는 2008회계연도에 59년 만의 적자 전환이라는 수모를 겪었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결함 사고에 대한 초기 대응 미흡으로 500만 대의 대규모 리콜이 쏟아지면서 순식간에 오명을 뒤집어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