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노동자 임금 인상 요구 거세…

저임금 수출 정책 기로에 섰다

이제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가 1984년에 발표한 ‘동북아시아 정치·경제 발전의 기원(The Origins of the Northest Asian political economy)’이라는 논문을 다시 들춰볼 때가 된 모양이다. ‘한국전쟁의 기원(The Origins of Korean War)’을 써서 남침설과 북침설을 나란히 다루는 바람에 많은 한국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 브루스 커밍스이지만, 그는 한국과 일본, 대만의 산업 발전 사이의 연관관계를 다룬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 논문들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학자이기도 하다. 미국 시카고 대학 현역교수인 그의 논문을 읽으면 중국 경제의 앞날이 어느 정도는 보이는 듯하기 때문에 이제 다시 들춰볼 때가 됐다고 한 것이다. 그 이유는 중국 경제의 앞날을 예고해주는 듯한 사건이 최근에 벌어졌기 때문이며, 그 사건은 바로 중국 남부 선전에서 미국 애플의 아이폰을 생산하는 공장인 폭스콘(Foxconn∙현지망 푸스캉 富士康)에서 벌어진 공원 자살 사건과 획기적인 임금 인상이다.

브루스 커밍스의 주장에 따르면, 동아시아의 경제 발전은 일본에서 시작됐다. 물론 일본의 산업 발전은 유럽의 산업혁명에서 지각생이었던 독일의 산업 발전을 학습한 결과였다. 일본은 독일을 학습한 결과 1880년에 섬유공업을 시작으로 산업 발전을 이룩하기 시작해서, 1930년대에 철강, 화학 등 중공업 부문의 기초를 닦았고, 1960년대에 고도성장에 성공했다. 브루스 커밍스는 그런 일본을 동아시아의 기러기(Flyng Geese)라고 표현했다. 동아시아에서 일본이라는 기러기가 날아오르자 그 뒤를 이어 다른 기러기들이 뒤따라 날아올랐는데, 그것이 1970년대 한국과 대만이다. 한국과 대만은 1970년대에 일본에서 쇠퇴해가던 섬유와 소비형 전자 산업을 물려받아 날아오르기 시작했고, 1980년대에는 다시 일본으로부터 철강과 자동차 산업을 넘겨받아 더 높이 날기 시작했다.

 브루스 커밍스의 산업 발전 이전(移轉) 이론을 다시 중국에 적용하면 이런 논리구조를 갖게 된다. 동아시아에서 처음 날아오른 일본의 뒤를 따라 한국과 대만이라는 기러기가 날아올랐고, 다시 대만과 한국으로부터 산업 이전을 받은 중국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현재 섬유와 소비형 전자 산업이 과거 한국과 대만에서처럼 번성하고 있는 현실은 브루스 커밍스의 가설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과거 한국과 대만에서 구로공단과 신주공단이 조성돼서 이미 섬유 산업과 소비형 전자 산업이 쇠퇴한 미국 시장을 겨냥해 수출품을 만드는 저임금 공장들이 번성했고, 한국과 대만의 그런 저임금 수출 산업 구조는 현재 고스란히 중국으로 이전돼 번성하고 있다.

 그런 중국에서 이제 저임금 수출 상품 제조 산업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경종이 힘차게 울려댄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남부 광둥성 선전에 있는 폭스콘 공장에서 올해 들어 지난 5월26일까지 모두 12명의 20대 노동자들이 건물에서 떨어져 자살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이들 노동자들은 중국에서 이른바 ‘바링허우(80後; 1980년 이후 출생자)’, ‘주링허우(90後; 1990년 이후 출생자)’라고 불리는 신세대들이다. 이들은 중국이 1978년 개혁개방을 시작하면서 강력하게 추진한 ‘한 자녀 갖기’ 산아제한 정책의 결과로 외동아들, 외동딸로 자라난 세대들이다. 이들 바링허우, 주링허우들은 어린 시절 호전되기 시작한 중국의 경제 사정 덕분에, 잘 먹고 잘 놀면서 자라난 ‘소황제’들로, 가난과 힘든 일도 잘 견디던 부모세대들과는 달리 한편으로는 다정다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신적으로 허약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세대다. 이들이 자라나 최근에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 남부의 폭스콘이나, 혼다자동차 공장에서 저임금 공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자살하는 사건이 빚어지고, 파업을 벌이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한마디로 중국 경제가 1978년 개혁개방 정책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이래 30년 만에 구조적으로 저임금 정책을 탈피하지 않을 수 없는 커다란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결국 중국 내 여러 도시에 폭스콘 공장을 가동 중인 대만의 훙하이그룹 궈타이밍(郭台銘) 회장은 6월8일 66%의 임금 인상을 발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애플의 아이폰을 중국 곳곳에서 OEM생산을 하던 폭스콘 공장은 선전 폭스콘의 공원 자살 사건을 방치할 경우 말 그대로 요원의 불길처럼 확산될 것을 우려해서, 사상 최대 폭의 임금 인상을 발표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자살 사건도 사건이지만, 바링허우와 주링허우로 이뤄진 신세대 중국 노동자들은 이제 기존의 중국 노조 조직인 공회(工會)에 대해서도 불만을 터뜨리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새로운 공회조직을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중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보다 획기적인 임금 인상폭을 발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중국 남부 샤먼 대학 에너지경제연구센터 린보창(林伯强) 교수는 이에 대해 중국 관영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폭스콘과 혼다의 임금 인상 발표는 그동안 무너뜨리기 어려웠던 임금 수준의 벽을 깨뜨리는 사건이었다”면서 “앞으로 다른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줄 것이며 이에 따라 중국에는 새로운 수준의 임금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 신세대 노동자들이 ‘세계의 공장’ 지대에 진출해있는 외국 기업에 대한 항의에서 시작된 임금 인상뿐만 아니라 국내적 요인으로 이뤄지는 임금 인상 바람도 만만찮은 강도로 불고 있다. 확대판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시장이라 할 만한 중국 중남부의 이우(義烏) 시의 상품 도매시장에서는 중국 광둥성 일원의 노동자 공급과잉과는 대조적으로 노동자공급부족으로 인한 임금 인상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저장 대학의 스진촨(史晋川) 교수가 “지역적으로는 중국 남부의 선전 부근 주강삼각주 지역에서 동중부의 상하이 부근 장강삼각주 일대로 옮겨갈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1978년 덩샤오핑의 결단에 따른 개혁개방 정책의 시행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중국 경제는 30년 만에 경제 발전의 열매를 수혜한 세대인 바링허우, 주링허우들이 근로자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커다란 전환의 계절을 맞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어린 시절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먹고 입고 소비하면서 자라난 중국의 신세대들에게 저임금 구조라는 옷이 이제 더 이상 맞지 않게 된 것이다. 1960년대, 1970년대에 태어나 가난하고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낸 부모들이 아무리 저임금이고 아무리 혹사당하더라도 참고 견디며 일해서 키워낸 중국의 신세대들이 이제 중국에서 저임금 시대를 종식시킬 세력으로 자라난 것이다.

 이들 중국 신세대들은 현재 자신들이 근로자로 일하면서 사용하는 숙소인 쪽방들을 ‘달팽이집(蝸居)’으로 묘사하는가 하면, 정규직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저임금 임시직을 얻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자신들의 신세를 개미에 빗대어 ‘개미족(蟻族)’이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그런 자조적인 표현은, 현실의 저임금 구조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는 말과 다른 말이 아니다. “개인의 운명은 10년이면 바꿀 수 있고, 나라의 운명은 30년이면 바뀐다”는 중국 사람들 말은 중국 경제에도 들어맞는 듯하다. 중국은 1980년 경제 발전을 시작한 지 30년 만에 운명이 바뀌는 폭풍의 언덕에 섰다. 이제 중국에서 저임금 수출 상품 생산 구조는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며, 이제 중국이라는 기러기들의 뒤를 쫓아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인도와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라는 기러기의 비상을 가까운 장래에 보게 될 전망이다. 중국이 자신들의 기술 축적을 그동안 게을리 했다면, 후발 인도나 중동, 아프리카의 경제가 경쟁력을 갖게 될 때 중국 경제는 저임금이라는 중요한 동력을 잃고 방황하게 될 것이다. 어느새 중국 경제에 운명적인 고리를 걸고 있는 한국 경제도 그런 중국 경제의 전환기에 대비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폭스콘 중국 신세대 노동자의 자살과 폭스콘의 66% 임금 인상이라는 대책 발표를 우리 경제 당국도 결코 소홀히 넘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