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판 모럴해저드’로 추락 대대적 개혁 착수 …회생 미지수

 ‘일본의 날개’ JAL 추락의 후폭풍이 거세다. 신년벽두의 위기감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일본이 자랑하던 간판기업의 난파소식에 충격과 허탈감은 위험수위에 달했다. 일부 언론은 자극적인 표현을 동원, 열도 침몰을 경고하는 보도로까지 연결하고 있다. 사상최대 부도 소식이란 점에서 JAL의 법정관리가 JAL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그만큼 JAL은 덩치가 큰 데다 직·간접적인 산업연관효과도 상당한 기업이다. 직접적인 사업 파트너만 2900개사가 넘고, 하청회사는 무려 1만 개를 웃돈다.

정부의 지나친 경영 간섭 ‘자승자박’

사정이 이러니 JAL의 침몰은 일본 경제로선 부담스런 악재일 수밖에 없다. 요컨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으로 악재 확대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문예춘추>는 근간호에서 ‘JAL의 다음 순서가 어디가 될지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라며 ‘차라리 JAL은 매를 먼저 맞았단 점에서 맘이 되레 편할 수 있다는 부러움까지 사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JAL의 몰락 스토리에서 그동안 감춰진 일본 경제·기업의 본질적인 문제를 적잖이 확인할 수 있다. JAL의 붕괴 원인을 국가 경제와 개별 기업에 끼워 맞춰보면 정확히 폐해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경영자의 모럴 해저드, 사원의 연령구조와 기득권, 무리한 빚더미 경영 등이 대표적이다. <닛케이신문>도 ‘20년 전부터 대담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단 걸 알면서도 근본적인 개혁을 시도하지 않는 JAL과 일본 정부는 질병의 원인과 증상이 비슷하다’며 ‘JAL의 오늘이 일본의 내일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력한 존재감을 부각시키며 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했던 중년층 이상의 조직적인 집단대응과 국가 의존적인 성향 역시 고령화 차원에서 보면 국가 문제와 정확히 일치한다. 연금 지급액 절감이 불가피한데도 중년층의 반발이 두려워 개혁을 미루고 있어서다. 노조의 모럴 해저드도 심각했다. JAL노조를 비롯해 8개 노조가 앞 다퉈 이권경쟁에 뒤엉키다보니 결국엔 임금·복지만 늘어나고 생산성은 나날이 떨어졌다. 가령 기업연금 지급액은 최대 월 48만엔에 육박한다. 경쟁사 ANA(31만엔)보다 훨씬 많다. 경영 효율성이 먹혀들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정부도 비난의 뭇매를 피할 순 없다. 낙하산 인사와 경영 간섭 때문이다. 3%도 안 되는 정부 지분이지만, 사실상 주인 없는 회사였던 탓에 정부 입김은 결정적이었다. 일례로 선거철마다 반복된 채산성 없는 지방공항 난립 유치와 이렇게 세운 공항에 운항편수 절반을 JAL에 떠넘기는 등 무리수가 상당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상황이 이러니 자금난에 빠지면 정부가 거의 자동으로 융자를 해주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뿌리 깊은 국영기업의 방만한 경영의 상징이었다.

이런 점에서 지난 1월19일의 법정관리 돌입은 오히려 구문(舊聞)이었다. 다들 알고 있었단 점에서 오히려 시장의 반응은 담담했다. 파산 소문은 이보다 앞서 작년 상반기부터 구체화됐다. 장부만 봐도 부채가 자산보다 8700억엔이나 많아 사실상 자본 완전잠식 상태에 빠졌다. 이전에도 3차례에 걸쳐 정부의 자금지원을 받은 JAL이었다. 1987년 민영화 이후 줄곧 내리막길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나모리 카즈오, 구원투수로 영입

JAL은 일본 최대 항공사다. JAL의 기업사 자체가 전후 일본 경제의 성장 역사와 궤를 같이 했다. 많은 일본인들에게 JAL은 신혼여행의 추억이자 해외 진출의 상징이었다. 한때 일본 하늘을 나는 비행기 10대 중 7대가 JAL이란 말이 있을 정도였다. 1951년 민간출자로 설립된 후 정부출자에 따라 반관반민의 특수법인으로 재도약하며, 1983년엔 노선 확대 덕분에 국제선 운송실적 세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물론 상처도 적잖았다. 1985년 점보기 추락사고로 520명의 사망자가 나는 등 브랜드 가치를 갉아먹는 사건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 파워는 여전하다. 회사는 무너졌지만, 국제선(66%)과 국내선(46%) 등 ‘No.1’의 시장 점유율은 건재하다. 정부가 두 팔을 걷고 JAL 회생 프로젝트에 적극 뛰어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9000억엔의 천문학적인 세금(공적자금) 투입이 결정된 데 이어 일본 최고의 경영 전문가로 손꼽히는 이나모리 카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이 정상화를 위한 구원투수로 나섰다. 그의 영입은 일본 정부의 JAL 조기 정상화에 대한 기대를 단적으로 반영한다.

재생 계획은 구체적이다. 전체인원의 30%(5만1862명→3만6201명)를 줄이는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함께 7300억엔의 채무탕감 등이 발표됐다. 110개의 자회사는 57개로 줄어든다. 37기를 보유 중인 점보기도 2015년까지 처분될 계획이다. 특히 그간 지대한 경영압박 요인이었던 국제선 노선이 93개에서 79개로 감소한다. 계획대로라면 내년 241억엔의 영업흑자가 가능해진다. 3월 하순 구조조정 방안 확정 뒤 8월 법원의 정상화 계획 인정과 함께 100%의 완전감자 후 새로운 출자금(3000억엔)으로 환골탈태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JAL 회생 프로젝트는 당장 재무체질 개선이 중요한 과제다. 다만 이건 필요조건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경쟁력을 갖춘 항공사로 거듭나는 문제다. 스카이팀(델타항공 중심), 원월드(아메리칸항공 중심) 등 어떤 항공연합에 속할지도 그 다음 문제일 뿐이다. 중요한 포인트는 저비용의 실현 여부에 달렸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운항비용은 일본항공사 운항비용의 절반에 불과하다. 이 회사가 금융위기 이후에도 플러스 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인건비, 기내 자재비, 기내 서비스비, 공조공과(公租公課), 공공성 유지비용 등 운항 비용도 절감해야 한다. 이중 회사자력으로 줄일 수 있는 항목은 인건비, 기내 자재비, 기내 서비스비 등이다. 특히 인건비에 손을 댈 여지가 많다. 대표적인 게 조종사에 대한 65시간 보장제도다. 승무시간과 무관하게 65시간의 승무수당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이는 JAL 특유의 복잡한 노사관계가 원죄라면 원죄다. 파업을 막고자 1970년에 기장을 관리직으로 인정하는 걸 도입했기 때문이다. 반관반민 시절 파업은 곧 경영자의 해고를 의미하기에 이를 막고자 선제적으로 양보한 결과다. 고비용 구조의 출발인 셈이다. 기내 자재비도 마찬가지다. 10개 기종 이상을 운항하자면 양성비용은 물론 부품비용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3년 내 정상화 여부 ‘시계 제로’

회생의 모델로 삼을 수 있는 기업도 있다. 절망적인 경영 상황에서 되살아난 자회사인 JTA 사례가 그것이다. JAL이 7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이 회사는 오키나와 거점의 항공사로 난세이제도를 맡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경쟁사의 출현으로 점유율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1994년엔 적자액이 72억엔에 달했었다. 당시 회생계획에 따르면 누적손실 해소시점은 2024년으로 사실상 구제불능 상태였다. 조종사노조의 분쟁을 비롯해 노사관계도 악화됐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변화가 시작됐다. 노사관계 개선이 첫 번째 타깃이었다. 수당 개선과 근무조건 완화가 이뤄졌고, 연 3회의 노사협상을 1회로 줄이는 등 불필요한 대립구조를 줄였다. 기내 자재비 절감을 위해 2종류의 비행기를 1종류로 통일한 데 이어 노선별 활용 유연성은 높였다. 이 결과 2001년 적자가 전액 해소됐다. 금융위기 이후 대부분의 항공사가 적자로 전락한 2009년 2분기에도 흑자를 기록했다.

<닛케이비즈니스>는 “JTA 최고경영진의 강력한 대(對)노조 협상력 이면에 세심한 임직원 배려 등 현장에서의 개혁이 크게 주효했다”고 평했다. 경영진이 노조를 포함한 내부조직을 잘 알고 대처하는 과정에서 그에 걸맞은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의미다.

JAL의 재도약을 위한 활주로엔 요철도 적잖다. 불황 지속에 따라 당장 항공수요 자체가 감소 중인데 이번 사태로 인해 고객 이탈은 불을 보듯 뻔하다. 난상토론이 계속되는 가운데 확정된 재건전략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도 해결과제다. 특히 대량감원에 따른 안전성 우려가 ‘뜨거운 감자’다. 안전성이 최고 잣대인 항공사에게 ‘파산’ 이미지는 그 자체가 독이다. 반면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ANA를 비롯한 저가 항공사의 공격을 어떻게 막아낼지 고민이 깊다.

승부수는 이제 던져졌다. 3년이란 시간 안에 JAL이 되살아날지 여부는 시계 제로다. 그렇다고 이빨 빠진 호랑이의 영원한 쇠퇴로 단정 짓는 것도 무리다. 일본 사회에 공유되는 1990년대 이후의 장기 복합불황을 견디며 축적한 위기 매뉴얼 실천 경험이 파워풀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잘만 극복하면 먼저 매 맞은 게 속 시원하듯 이번 위기가 새로운 기회를 낳는 도약대로 작용할 수 있단 점에서 JAL의 귀추가 주목된다.

선망의 대상 JAL 스튜어디스의 ‘몰락’

제복 경매에 유흥가 알바까지…‘아 옛날이여’

“예전엔 디올 스타킹이 지급됐는데, 이제 구두와 스타킹은 자기부담이다. 제복과 블라우스도 찢어지지 않는 한 지급하지 않는다. 앞치마도 2장으로 줄어 세탁하기 바쁘다. ANA는 독일제 수트케이스인데, 우리는 낡아빠진 중국제다. 예전엔 샘소나이트였는데….”

JAL 스튜어디스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다. 자존심만이면 다행이다. 호구지책 자체가 힘들어졌다는 푸념이 급증했다. 보너스는 2년 연속 줄었고 급여는 제자리걸음이다. 물론 연 1000만엔 이상의 고연봉자도 300명을 넘는다. 하지만 독신생활조차 힘든 연봉 300만엔 미만 직원이 아직은 더 많다. 1994년 도입한 3년 계약제 탓이다. 때문에 부모 지원을 받거나 카페나 바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경우도 많다.

경비 절감은 광범위하다. 전차 통근이 원칙이며, 택시 출퇴근은 사실상 봉쇄됐다. 해외 비행 때 묵던 힐튼에서의 숙박은 역사로 남게 됐다. 국내 비행의 경우 1박당 5000엔 이하의 비즈니스호텔만 허용된다. 여름엔 냉방도 안 되는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고쳐야했다. 그런데 승무시간은 오히려 예전보다 월 20시간 늘었다. 와중에 회사는 ‘어려워진 경영 상태’를 이유로 최근 ‘기업연금 절반 삭감 동의서’에 서명을 요구했다. 한 스튜어디스는 “연간 400만엔에 달하던 연금이 절반으로 깎였지만, 불평은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라고 했다. 더불어 “연금만 매월 25만엔을 받는 OB가 고작 3할 삭감을 불평한다는 건 인정할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1300명의 스튜어디스 대량 해고가 임박하면서 엉뚱한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기업이미지 유지를 위해 예전엔 사활을 걸고 제복 유출을 막던 JAL이지만, 봉급 삭감에 해고 위험까지 중첩되자 인터넷 경매에 제복을 내놓아 한 푼이라도 건지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고급 유흥가에선 전직 스튜어디스를 접대부로 모셔가려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신문>은 ‘사원 모두가 도마 위의 잉어 신세’라고 비유했다. 모든 걸 포기하고 기다리는 심정이란 의미다.

기업연금으로 본 제2의 JAL 후보 기업

업력 길고 퇴직자 많은

전기전자 메이커 ‘아슬아슬’

경영 부진에 빠진 건 JAL만이 아니다. 되레 금융위기 이후의 시계 제로 상황이 1990년대 불황 당시보다 더 심각하단 점에서 지금이 더 불안하다는 게 정설이다. 일례를 보자. JAL 문제의 하나는 적립자금은 부족하면서 퇴직자에게 거액의 연금 지급을 약속했다는 데 있다. 2009년 3월 말 기준 부족액만 3900억엔에 달한다.

일본의 심각한 고령화 상황을 봤을 때 연금문제는 JAL만의 골칫거리가 아니다. 연금문제가 해결 난망인 것은 기업이 존속하는 한 지불의무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회사갱생법을 신청해도 의무는 남고, 약속이율도 낮추기 힘들다. 그러니 소송도 많다. 특히 업력이 길고 퇴직자가 많은 전기·전자 업계의 연금 부담이 크다.

노무라증권 분석에 따르면 3350개사의 연금적립 부족액 합계는 32조엔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JAL은 이중 1위에 올랐다. 산요(三洋)전기, 도시바(東芝), 후지(富士)전기홀딩스, 히타치(日立)제작소 등이 그 뒤를 잇는다. 물론 일부 대형 메이커는 거액의 증자를 통해 연금문제 개선에 나서기도 했지만, 고율 지급을 약속한 대부분 회사는 언제든 또 다시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