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에서 교원평가제를 둘러싸고 교원단체와 정부가 대립하고 있는 걸 보면서 우리 교육은 언제까지 이런 후진적 논쟁을 벌이는 데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지 답답한 생각이 든다. 교사뿐만 아니라 그 어떤 사람도 활동과 능력에 대한 평가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는 게 자유경쟁사회의 원리다. 평가 없이는 객관적 상황을 알 수 없고, 평가 자체가 능력 함양을 북돋우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시험을 쳐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미국에서는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늘 평가의 대상이다. 우리나라 교육부는 이미 오래전 전교조 등의 영향으로 학생들의 ‘서열화’를 막는다면서 학생들의 성적에 대한 상호비교를 막아 놓았다. ‘모두가 100점’이고 ‘모두가 1등급’이라는 식의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지고, 자기가 전체 학생 중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는지도 알지 못하게 해놓았다.

 하지만 교육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학생들에게 모든 과제와 시험에서 성적을 매겨 보내고, 학교 자체의 성적까지 모두 공개한다. 어느 학교가 수학과 언어 등 주요 분야에서 얼마나 높은 점수를 받았는지 각 교육구별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모두 나와 있다. 각 학교들은 이 점수를 높이려고 안간힘을 쓴다. 미국 학교에 가 보면 ‘우리는 작년에 이런 시험에서 이런 성적을 거뒀다’는 광고들이 즐비하게 복도에 걸려 있고, 학교 홈페이지에는 학생들이 거둔 학업성적의 성취와 발전을 가장 앞세워 보여준다.

 미국은 부시 대통령이 들어선 이후 교육을 국가적 과제로 삼고 있다. 특히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초·중·고 학생들이 아시아 지역 학생들에 비해 성적이 떨어진다는 걸 사회적 위기로까지 인식하는 상황이다. 부시 대통령이 이른바 ‘낙제학생방지법(No Child Left Behind Act)’이란 걸 만들어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낙제학생방지법’의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매년 주기적으로 전체 학교가 시험을 실시해 학생들의 학업능력을 평가하고, 일정한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고교 졸업을 시키지 않으며, 자기개발을 열심히 하는 교사들은 인센티브를 준다는 게 골자다.

 이 법에 따라 각 주, 각 교육구들은 학생들의 학력측정을 위한 시험을 벌써 몇 차례 실시했다. 그 결과 어떤 학교가 뛰어나고 어떤 학교가 뒤처지는지 드러났으며, 결과는 모두 공개했다. 뒤지는 학교에는 여러 가지 지원정책을 제공하는 동시에 책임도 따르게 했다. 교사의 경우 석사학위를 취득할 경우나 전공 분야를 계속 공부하여 일정한 성취를 이루면 봉급을 올려준다. 반면, 교사들도 주기적으로 평가를 해 게으르고 제대로 학생들을 가르치지 못하는 교사는 퇴출하도록 제도를 마련해놓았다. 이런 법을 지키지 않는 교육구나 주에는 연방정부가 재정 지원하는 걸 제한하기 때문에 강력한 강제력을 띤다.

 미국의 초·중·고교에 가 보면 ‘과연 교육 선진국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시설이 화려하고 현대식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몇십 년 넘은 낡은 블록건물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학업향상과 체력단련, 자유로운 과외활동에 초점을 맞춰 짜여진 시설과 커리큘럼은 말 그대로 전인적 교육의 모습을 실감하게 만든다.



 주기적으로 학생·교사·학교 모두 평가

 학생들은 우리나라처럼 수험공부에 찌들지 않으면서도 정교한 프로그램에 따라 엄청난 양의 독서와 과외활동으로 심신을 성장시켜 나간다.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미국의 중·고생들이 아시아, 특히 한국과 일본 학생들에게 뒤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미국은 우리처럼 ‘문제풀기식’ 수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미국 교육의 핵심은 ‘창의적 사고능력 함양’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의 수업내용과 과제물, 시험도 ‘정답 외우기’는 없다. 주어진 과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그 ‘과정과 방법’을 생각해 내게 하고, 깊이 쌓인 지식과 생각으로 만들어진 가장 창의적인 답안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준다. 노벨상을 미국이 늘 휩쓰는 것은 이런 교육의 결과다.

 우리나라도 이젠 교육 선진국으로 가야 한다. 언제까지 일제식 교육 잔재에 찌들려 시험답안 외우기식 교육을 할 것인지, 미국 교육을 보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자원도 없고 국토도 좁은 우리나라가 말 그대로 의지할 것이라고는 교육을 통한 인력개발밖에 없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단편적 지식 외우기와 문제풀기식 수험공부에 찌들려 청소년기를 보내고, 교사들은 그런 교육현장을 개혁하겠다면서도 자신에 대한 평가조차 거부하는 이기적이고 전혀 세상물정 모르는 청맹과니 행태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고교생들이 총기난사를 한다, 마약을 한다 어쩐다 하지만, 실제 그런 일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의 초·중·고 교육현장은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이 건강하고, 교육은 체계적이고 수준 높게 이뤄지고 있다. ‘기러기’가 돼 미국으로 자녀를 데리고 온 수많은 한국의 학부모들이 앉으면 통탄하는 것이 “이젠 한국으로 되돌아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저 한두 해 영어나 배운 뒤 돌아가겠다고 생각하고 아이를 데리고 온 기러기 학부모들은, 미국의 교육을 체험하면서 대부분 한국으로 되돌아가는 걸 끔찍한 일로 여긴다. 미국의 교육을 보고서야 비로소 한국의 교육이 얼마나 기괴하고 후진적인지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선진교육은 말로만 되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교육정책가들 자신이 세계적 교육수준에 눈을 떠야 한다. 세계의 선진국들이 지금 어떤 수준의 교육을 시키는지, 그런 것에 대한 경험도 지식도 없는 사람들이 교육정책을 꿰차고 앉아 서울대를 없애야 한다느니, 전국을 평준화시켜야 한다느니, 서열화를 시켜선 안 된다느니 촌스러운 말만 계속해서는 결코 교육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그것도 모자라 전교조 같은 교육단체가 앞장서서 학생들을 반미 이념화시키는 교육현실은 바꿔야 한다.

 “커 가는 아이들을 보면 그 나라의 미래가 보인다”고 하는데, 우리의 교육현실을 보면 우리 나라의 미래가 결코 밝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가여운 건 우리의 학생들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이 얼마나 세계적 수준에서 뒤떨어진 것인지도 모른 채, 자신의 삶과 미래를 결정하게 된다고 믿으면서 쏟아지는 잠을 뿌리치며 수험공부에 매달리는 우리 학생들에게 기성세대는 분명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