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은행은 지난 11월1일, 러시아 경제상황에 대한 종합평가를 기반으로 한 보고서에서 경제현황과 전망이 대체로 밝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 러시아정부의 인플레이션 억제책이 별반 효험을 보지 못하고 있고, 자국 화폐인 루블 강화억제책이 실패하면서 경제성장률이 매년 하락하고 있다.

 고유가 시대를 맞아 산유국 러시아에 막대한 오일달러가 유입되면서 루블화 강세를 초래, 제조업의 경쟁력 기반이 약화되고 경제성장에도 제동이 걸린 상태다. 이런 성장세 둔화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두드러졌으며, 올해 성장둔화는 루블화의 급격한 강세에 따른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지면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세계은행은 올 들어 3분기까지 루블화 가치가 7.3%나 상승했다면서, 지난 1998년 정부의 디폴트선언으로 루블화의 가치하락에 따른 산업경쟁력상의 이점이 사실상 사라졌음을 경고했다. 러시아 경제는 디폴트선언 이후 유가급등에 힘입어 대부분의 분야에서 현격한 회복세를 보이긴 했으나, 경제성장률이 2003년 7.3%에서 작년 7.1%로 둔화됐으며, 올해는 6%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경제성장률 추세 변화는 2012년까지 러시아의 경제 규모를 두 배로 확대하겠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목표치를 흔들어 놓고 있다. 러시아 경제관료들은 푸틴 대통령 의지가 관철되려면 연간 7% 이상의 GDP 성장률을 기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편, 러시아의 수입은 급증세로, 달러가격을 기준으로 러시아의 올해 9개월간 수입은 28% 증가했으며, 기계류 수입은 40%까지 치솟았다.

 세계은행은 올 러시아의 인플레이션이 12% 이상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소비자 물가지수에 기초해 계산한 2005년 1~9월까지 인플레이션은 8.6%였지만, 러시아정부가 계획했던 연간 성장률을 이미 넘어선 수치다. 2004년 동기보다 높은 인플레이션 현상을 나타낸 것은 무엇보다 연초 주택관리비 인상 때문으로 해석된다. 또 제조업체들의 생산단가가 15.7% 인상된 것도 한몫 거들었다. 인플레이션 배경에는 1.5배 성장한 에너지요금이 악영향을 미쳤다.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러시아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대규모 흑자무역이다. 유가가 인상되면 될수록 인플레이션은 증가하게 되고, 또한 루블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효율적인 정부정책의 부재가 러시아의 경제성장에 불안을 가져오는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러시아 경제의 성장속도는 2004년 후반기부터 서서히 하향 곡선을 보여 왔다. 성장속도가 둔화된 것은 무엇보다 루블의 가치상승으로 인해 제조업체들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루블 가치는 경제위기가 발생했던 1997년 수준까지 치솟아, 경제위기 이후 루블 약세 때문에 발생했던 가파른 성장 속도를 이제는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말한다.

 또 국민총생산도 이전에는 석유가스 가격인상, 그리고 내수성장 덕분에 올라갔지만, 최근 채굴과 가공 산업의 성장률이 크게 저하되면서 GDP 성장률에 저해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공산업의 성장둔화의 요인은 생산의 지속 저하, 임금 상승, 또 지난해 비교적 저조한 투자가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나마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분야는 소매업과 식품업이다. 특히 식품업의 경우 효과적인 경영과 계속적인 투자, 또 이로 인한 생산력 증가로 수입제품들과의 경쟁력을 높여 가고 있다.

 세계은행이 러시아 경제를 긍정적으로 보는 분야는 투자부문. 전문가들은 올 하반기 해외투자가의 대(對)러 투자가 상승곡선을 타고 있고, 조만간 투자붐까지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석유 분야는 아직 투자가 많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에너지산업 분야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지만, 여전히 투자가들 사이에 유코스사건이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해 그다지 전망이 좋은 편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높은 세율과 정부와 민간기업의 불투명한 상호관계 역시 투자의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투자자들을 상대로 한 러시아정부의 투자유치 노력으로 이전보다는 상황이 호전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 2003년과 2004년보다 현재 러시아시장에 대한 해외와 러시아 국내 투자자들의 전반적인 생각이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것은 한 가지 위안거리다.  올 상반기 해외투자를 보면 약 30%가 증가해 45억달러에 이르렀다. 그러나 직접투자 비율은 그다지 높지 않으며, 투자 경향은 주로 에너지 분야가 아닌 다른 경제 분야를 향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또 국가와 기업의 상호관계가 2003년과 2004년에 비해 긍정적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러나 러시아정부가 기업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또 간섭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분명한 데가 있어 투자자들을 불안케 한다. 특히 정부가 ‘전략산업’으로 지정한 경제 분야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크렘린궁과 러시아정부는 최근 러시아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노력에 나섰다. 투자가들의 입장을 최대한 보호하고 자금안전을 보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푸틴 대통령은 얼마 전 투자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일부 특별조치까지 취했다. 예를 들어 불법 민영화 공소시효 만기를 감소시켰으며, 국세청 활동을 조정하고, 또 해외 도피자금을 되돌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그럼에도 세계은행은 “대통령과 정부가 취한 조치들 중 어느 하나도 기업계의 신뢰를 얻은 것은 없지만, 당국이 전반적으로 투자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 주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세계은행은 러시아 경제상황이 긍정적이진 않지만, 러시아정부가 계속해서 현재의 외국인 투자정책을 고수해 나갈 경우, 대러 투자는 확실하게 늘어날 것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러시아정부는 세계은행의 러시아 경제전망 ‘흐림’이라는 지적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