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상류층이 겨울 휴가를 보낸 후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 콜로라도 베일에 있는 스키 리조트(왼쪽). 데이비드 게펜이 올린 격리 관련 게시 글은 비난을 받았다. 사진 블룸버그
멕시코 상류층이 겨울 휴가를 보낸 후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 콜로라도 베일에 있는 스키 리조트(왼쪽). 데이비드 게펜이 올린 격리 관련 게시 글은 비난을 받았다. 사진 블룸버그

“난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같았다. 오늘 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다. 침실 창문을 통해 언덕 너머 여명을 바라봤다. 얼어붙은 풀잎과 라임 나무 새싹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프랑스 유명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가 유력 일간지 르 몽드에 연재한 ‘격리일기’의 일부다. 3월 13일(이하 현지시각)부터 가족과 함께 교외의 별장에서 지내는 감상을 올린 연재 글이 프랑스 문인과 언론, 일반 시민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프랑스 전역에 이동 금지령이 내려져 대부분의 국민이 자택에 격리 중인 가운데, 별장으로 이동해 보낸 격리 소감이 사람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 각국의 불평등과 빈부 격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프랑스 내부에서는 슬리마니를 대혁명 당시 분노한 민중을 외면하고 사치를 일삼았던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에 빗대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프랑스의 또 다른 유명 작가인 마리 다리외세크도 정부의 이동제한령 직전 지방 별장으로 향하며 차고의 낡은 차를 꺼낸 이야기를 주간지 ‘르 포앙’에 게재하면서, “파리 번호판을 단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밝혀 비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미국의 억만장자이자 음반 제작자인 데이비드 게펜도 ‘속없는’ 게시 글을 올렸다가 대중의 질타를 받고 계정을 삭제했다. 그는 3월 3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석양이 지는 바다 위를 항해 중인 호화 요트 사진과 함께 “어젯밤 석양…바이러스를 피해 그레나딘 제도에서 자가 격리 중입니다. 모두 안전하길 바랍니다”라는 글을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세계에서 열 번째로 큰 5억9000만달러(약 7200억원)짜리 호화 요트다.

일부 부자의 극단적인 사례일 수도 있지만, 코로나19로 세계 불평등과 빈부 격차 사례가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다. 미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소득 상위 25%의 재택근무 비중은 61.5%에 달하지만, 소득 하위 25%의 재택근무 비중은 9.2%에 불과하다. 벨기에의 싱크탱크 브뤼겔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산업 노동자를 비롯해 소매업, 운송 노동자 등은 바이러스 쇼크 기간에 선택권을 갖기 힘들다”면서 “이들은 임금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더 큰 위험에 노출되는 것과 소득 충격을 받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불평등은 빈부 격차가 큰 나라의 내부 갈등으로 번지기도 한다. 해외를 자주 오가는 상류층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국내로 옮겨와 퍼뜨렸다는 불만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멕시코 금융기관·기업 임원 등 500명 이상이 미 콜로라도 베일에 있는 스키 리조트에서 겨울 휴가를 보내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된 상태로 귀국해 바이러스를 퍼뜨린 것으로 추정돼, 비난에 직면했다. 해당 감염자 중에는 멕시코 증권거래소 이사장과 호세 쿠에르보 데킬라로 유명한 주류 업체 최고경영자(CEO) 등이 있다.


NGO가 제공하는 코로나19 구호 식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선 브라질 사람들. 사진 AFP연합
NGO가 제공하는 코로나19 구호 식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선 브라질 사람들. 사진 AFP연합

연결 포인트 1
심상찮은 중남미·아프리카

중남미와 아프리카 대륙의 코로나19 확산세도 심상치 않다. 이 지역은 최초 감염 사례가 2월 말로, 상대적으로 늦었다. 144만 명이 넘는 전 세계 확진자의 80% 가까이가 미국과 유럽에 몰려 있고 이 지역 비중은 3%에 불과할 정도로 ‘청정 구역’이었다.

그러나 4월 8일 아프리카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아프리카 55개국 중 52개국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 확진자는 1만 명, 사망자는 535명을 넘어섰다. 그중에서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이집트, 알제리, 모로코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어서며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중남미 대륙에서도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상황이 가장 나쁜 곳은 브라질이다. 확진자 수가 1만2000명을 넘어섰다. 칠레와 에콰도르도 각각 확진자가 5500명, 3700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두 대륙 모두 감염 건수를 왜곡·축소할 가능성이 크고 진단 키트 사용 건수도 명확지 않아 실제 코로나19 감염자 수는 통계를 뛰어넘는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어린이들. 남아공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가장 많다. 사진 AP연합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어린이들. 남아공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가장 많다. 사진 AP연합

연결 포인트 2
의료 시스템, 사회 안전망 취약

중남미와 아프리카 대륙의 확진자 증가세가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이 지역 의료 체계와 사회 안전망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많은 국가에는 아직 상하수도 시설이 없고, 전력 공급도 원활하지 못하다. 에이즈·말라리아·결핵 등 질병도 만연해 있다. 의료 시스템 역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못 미친다. 두 대륙에서 인구 1000명당 병상 수가 가장 많은 칠레조차 2.1개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매우 적다. 콜롬비아와 멕시코의 병상 수는 각각 1.7, 1.4개다.

사회 안전망 정비에 힘써야 할 정치권은 표심과 인기에만 급급하거나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지난 2월 멕시코 보건부가 포옹과 볼 키스를 하지 말자는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을 낸 후에도 대규모 집회를 열어 지지자들을 안고 입을 맞추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도 경제 회생을 위해 격리를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사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 프랑스 의사가 TV에서 아프리카에서 백신 실험을 하자고 주장하며 논란이 불거졌다. 사진 유튜브
한 프랑스 의사가 TV에서 아프리카에서 백신 실험을 하자고 주장하며 논란이 불거졌다. 사진 유튜브

연결 포인트 3
“아프리카서 실험하자” 갈등 비화

세계 곳곳이 코로나19와의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아프리카에서 백신을 시험해야 한다는 프랑스 의료·보건 전문가들의 발언에 아프리카인들이 크게 분노하고 있다.

논란의 시작은 최근 프랑스 LCI방송 토론회에서 벌어졌다. 파리 코친병원의 의사 장 폴 미라는 “도발적인 질문일 수는 있다”고 운을 떼면서 “백신 연구를 마스크나 치료 시설, 집중 케어센터가 없는 아프리카에서 하면 안 될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의 발언에 카미유 로슈 국가보건의료연구 소장이 “그렇다.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아프리카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다는 언급이었다.

분노한 아프리카계 유명인들이 먼저 나섰다.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선수 디디에 드로그바는 자신의 트위터에 “아프리카는 실험실이 아니다” 라고 비난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테워드로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도 “인종 차별주의자”라며 “21세기에 수치스러우면서도 섬뜩하다”고 비난했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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