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9일 오전 11시(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일대가 미국 서부 해안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의 여파로 주황색 연무에 휩싸여 있다. 사진 AP연합
9월 9일 오전 11시(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일대가 미국 서부 해안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의 여파로 주황색 연무에 휩싸여 있다. 사진 AP연합

미국 서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대형 산불이 11월 13일(이하 현지시각) 예정된 미 대선의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미 서부에 큰 경제적 피해를 가져오고 있는 이번 산불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의 기후변화에 대한 뚜렷한 시각차를 드러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양측은 서로 날 선 비판을 이어 가며 대선 구도의 터닝포인트를 만들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9월 15일 캘리포니아 등 미국 서부 해안의 주들에서 동시에 발생한 대형 산불이 계속 확산하면서 피해 면적이 약 2만234㎢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이는 남한 영토의 5분의 1이 넘는 것이다.

올여름 캘리포니아·오리건·워싱턴 등 3개 주에서 100건 이상의 산불이 발생했다.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의 관광 명소인 금문교까지 산불 연기로 어둑해졌고 유독가스로 하늘이 덮이면서 수십만 명이 대피했고 수천 가구에 전력 공급이 끊어졌다. 산불로 인한 사망자는 35명에 달한다. 여기에 태풍까지 예고되면서 산불이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드웰 기후연구센터의 과학자 필립 더피는 “덥고 건조한 상황에 더 건조한 연료가 만들어지면서 예전에는 쉽게 제압됐던 불이 이제는 금세 확산해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서부 해안을 강타한 산불은 선거 운동 이슈가 됐다”며 양 진영이 산불을 대선 성공의 기회로 활용하고자 한다고 9월 14일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산불이 자신의 실수로 인해 현직의 이점을 활용하기 어려웠던 대선 형국에서 연방 권한을 결집해 주민에게 원조를 제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설명했다. 또한 “바이든 후보에겐 트럼프 대통령이 산불과 싸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 있는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산불 문제에 침묵을 지키던 트럼프 대통령은 9월 14일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지역을 방문해 이번 산불과 기후변화와 연관성을 일축하고, 산림 관리 문제로 책임 소재를 돌렸다. 트럼프는 기자들에게 “외국에 캘리포니아보다 더 많은 나무가 있는 곳도 있지만 산림을 잘 관리하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며 쓰러진 나무와 떨어진 나뭇잎 등을 주 정부가 잘 청소하지 않아 산불이 발생했음을 암시했다. 트럼프는 ‘기후변화는 거짓말’이라며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자는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고, 화석연료 산업을 장려하며 자동차 연비 기준 등 환경 규제를 완화해 왔다.

반면 조 바이든 후보는 9월 15일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의 유세 연설에서 산불과 태풍이 지구 온난화의 결과라며 기후변화가 과장됐다고 주장하는 트럼프를 비난했다. 바이든 후보는 트럼프 대통령을 “기후 방화범”이라며 화재 대응에 실패한 그가 “백악관에 있게 된다면 불타는 미국을 더 보게 된다 해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월 15일 백악관 앞에서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EPA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월 15일 백악관 앞에서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EPA연합

연결 포인트 1
트럼프 “산림 관리 부실”

트럼프 대통령은 산림 관리의 부실을 주 정부 탓으로 돌리며 바이든 측이 대선에서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기후변화 문제를 공론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산불이 집중된 캘리포니아·오리건·워싱턴 등 3개 주는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손을 들어준 민주당 텃밭이다. 주지사도 모두 민주당 인사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에는 곳곳에서 당선 반대 시위가 일어났을 정도로 진보 색채가 짙은 지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 14일 현지 당국자들과 대화에서 “날씨가 시원해지기 시작할 테니 지켜보라”고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

기후 문제에 회의적인 입장을 유지해온 트럼프의 환경 관련 경제 정책 역시 이번 산불에도 불구하고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는 기후 위기라는 단어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자는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고, 화석연료 산업을 장려하며 자동차 연비 기준 등 환경 규제를 완화해 왔다.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가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체이스 센터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가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체이스 센터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연결 포인트 2
바이든, 기후변화 정책 내세워

산불을 계기로 기후변화의 위기에 대해 더 크게 목소리를 내고 있는 바이든 후보는 자신의 친환경 경제 정책과 연결해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바이든은 “기후변화는 당파적 현상이 아니라 과학이다”라며 친환경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바이든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기후변화 위협을 적극적으로 다루겠다며 차량 연료 효율 기준 강화와 전기차 사용 촉진 등을 약속한 바 있다. 바이든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친환경 인프라와 일자리에 10년간 1조7000억달러(약 2조8000억원)의 예산을 쓰겠다는 애초 계획을 확대해 4년간 2조달러(약 2300조2000억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트럼프가 탈퇴한 파리기후협약에도 복귀하겠다는 공약을 이미 발표했다.

바이든이 대형 산불을 계기로 환경 정책을 한층 강화한 가운데 그가 당선되면 신재생에너지 사업 역시 더욱 탄력받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청정에너지 연구·개발(R&D)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 카운티의 주택과 차량이 불에 타 잿더미로 변했다. 사진 AP연합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 카운티의 주택과 차량이 불에 타 잿더미로 변했다. 사진 AP연합

연결 포인트 3
산불로 인한 경제 나비효과 우려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실리콘밸리 등을 포함한 미국 서부 주요 도시가 산불에 휩싸이며 기업과 가계가 마비되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이미 위기에 처한 미국 경제가 더욱 궁지에 몰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서부 지역 주택이 화재로 파괴되면서 가계 피해가 심해지면, 자칫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문가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산하 기후변화자문위원회는 9월 10일 “기후변화의 광범위한 타격이 금융 시스템에 혼란을 일으켜 결국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로이터통신은 주택 파괴와 관광 수입 타격 등이 지방 정부의 채무 불이행과 시장 붕괴를 가져와 이미 흔들리는 미국 경제를 더 악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더불어 보험사들이 주택 보유자의 보험 갱신을 거부하면서 고가의 보험이 늘어 집값이 떨어져 부동산 시장 역시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