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한 시사아카데미 일본경제사회연구소장 현 경희사이버대 일본학과 강사,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도쿄특파원·온라인총괄 부국장
최인한
시사아카데미 일본경제사회연구소장 현 경희사이버대 일본학과 강사,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도쿄특파원·온라인총괄 부국장

일본인이 가장 존경하는 경영자는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교세라 명예 회장이다. 지난해 말 인재육성 기업 러닝에이전시가 경영자 100인을 조사한 결과에서 이나모리는 정상 자리를 지켰다. 전설적인 경영자로 꼽히는 마쓰시타전기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6위였다.

이나모리는 일반인 대상 ‘존경하는 사람’에서도 압도적 1위다. 그의 인생 철학이 보통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새 책을 낼 때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경영 비법과 어록을 담은 책들은 1989년 첫 발행 이후 누적 2000만 부를 돌파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6년 ‘아메바 경영’을 시작으로 ‘왜 일하는가’ ‘생각의 힘’ ‘사장의 그릇’ 등이 꾸준히 인기다.

인터뷰와 강연 취재로 이나모리를 몇 차례 만났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확산에 맞춰 사회 구성원들의 공생(共生)을 중시하는 그의 이타적(利他的) 자본주의 철학이 다시 빛을 보고 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1932년 1월생으로 올해 우리 나이로 90세다. 규슈 남쪽 끝자락에 있는 가고시마대학 공학부를 졸업했다. TV브라운관 부품을 만드는 교세라(교토세라믹)를 1959년 설립했다. 자본금 300만엔(약 3000만원), 종업원 18명 규모로, 임대 건물에서 출발한 영세업체였다. 1984년 다이니덴덴(현 KDDI)을 설립한 후 사세가 급팽창했다.

이나모리는 파산 직전에 몰린 일본항공(JAL) 회장으로 2010년에 취임, 2년 8개월 만에 재상장시켰다. 무보수 경영자로 일하며 일본 대표 항공사를 회생시켜 ‘경영의 신’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그는 평생 사원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강조했다. 흔히 ‘교세라 철학’으로 불린다. 80대 후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교토 시내 공익재단 빌딩인 ‘이나모리재단’에 주로 출근한다고 한다. 인류 평화 연구를 지원하는 재단 사업과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 회장. 사진 블룸버그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 회장. 사진 블룸버그

이나모리의 3대 경영 목표

이나모리는 사업가의 길을 걸으며 ‘3대 경영 목표’를 늘 강조했다. 첫째, 사원의 물질적, 정신적 행복의 실현과 인류 사회 발전 공헌이다. 둘째는 경영자 의식을 가진 인재 양성 그리고 셋째, 전원 참가형 경영 실행이다. 일본 경영학자들은 그의 경영 방식을 ‘실력 종신 고용제도’라고 부른다. 전통적인 일본식 종신 고용을 유지해 기업의 안정을 다지는 대신 실력 중심으로 인재를 발탁해 경영 효율을 높이자는 취지다. 일본식 경영과 서구식 경영의 장점을 함께 적용한 형태다. 이나모리의 경영 철학을 알려면, 일본식 경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일본식 경영은 사원들의 고용 안정을 매우 중시한다. 주주 자본주의로 불리는 서구식 자본주의의 경우 경영자들의 우선 목표는 주주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주가를 올리기 위해 이익을 늘리고 비용을 최대한 줄인다. 경영 우선 순위는 주주, 소비자, 종업원순이다. 이에 비해 일본식 경영은 종업원, 소비자, 주주순으로 보면 된다.

9년 전 이나모리는 서울 강연에서 서구식 신자유주의적 경제 성장 방식의 대안을 제시했다. 당시 현장에서 그를 지켜봤던 기억이 새롭다. 이나모리는 “경영자의 목적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종업원과 가족의 생활을 지켜주고 믿음을 주는 데 있음을 깨닫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편적인 경영 원칙이 기업을 성장으로 이끈다’를 주제로 경영 원칙을 소개했다. 그날 강연의 골자는 “기업의 목표는 회사 전체의 막연한 숫자가 아니라 조직별로 세분화돼야 한다”였다. 1년을 아우르는 연간 목표뿐 아니라 월간 목표를 정해야 하고, 매일의 목표도 설정해야 한다는 것. 교세라는 매년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 꾸준히 달성했고, 또 다음 해에는 반드시 전년 실적을 상회하는 목표를 세워 이를 확실히 달성하는 것을 일관되게 관철시켰다고 소개했다. ‘매출 최대, 경비 최소’ 경영 원칙도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경영 상식으론 매출이 증대하면 경비도 함께 늘어난다”면서도 “그런 선입견을 버리고 매출을 최대한 늘리고 경비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창의적 노력을 계속하는 자세가 고수익을 낳는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시대…빛 보는 ‘아메바 경영’

이나모리 회장은 교세라 창업 초기부터 ‘아메바 경영’으로 불리는 경영 시스템을 도입했다. 큰 조직을 독립 채산제로 운영하는 소집단(아메바)으로 쪼개고, 그 작은 조직의 리더를 임명해 회사를 공동 운영하는 게 핵심이다.

그는 아메바 경영을 통해 경제 상황, 기술 및 경쟁 업체 동향 등 환경 변화에 신속 대응, 회사 조직을 유연하게 재구축하라고 강조한다. 기업 환경에 맞게 조직을 재구축하고, 회사 조직을 끊임없이 새롭게 하는 아메바 경영은 요즘 같은 저성장기에 효과적이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기업의 외형 성장보다 생존과 영속, 이익 확대보다 고용 유지 가치가 더 중요해졌다. 이나모리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중시하는 이타적(利他的) 자본주의를 주창해왔다. 그는 “경영자와 사원이 신뢰로 만난 집단인 운명 공동체가 기업”이라며 노사 화합을 중시한다. 또한 “세상에 실패는 없다. 도전을 포기했을 때, 그것이 실패”라며 위기 극복을 위한 기업인들의 책임과 분발을 촉구한다.


이나모리 인생 잠언록, 행복하게 사는 비법

경제가 어려워지자 이나모리의 인생 철학도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 어떤 환경에서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둘째, 인간은 항상 자신이 더 잘돼야 한다는 본능을 갖고 있지만, 모두를 행복하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10여년 전 한국을 찾은 교세라 지인으로부터 받은 달력에도 이나모리의 인생 잠언이 실려 있었다. 필자는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열어보고 도움을 받는다. 매달 1일부터 31일까지 일자별로 명구가 적혀 있다.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1일 차> 새로운 계획을 실현한다. 새로 세운 계획의 실현을 원한다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고 강하게 지속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어떤 어려운 목표도 반드시 달성할 수 있다. <2일 차> 오늘 하루를 성심성의껏 노력한다. 오늘을 현명하게 일하면 반드시 내일이 보인다. 이달을 성심성의껏 노력하면 다음 달이 보일 것이다. 올해를 충실히 하면 내년이 보인다. 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선 오늘 하루가 가장 중요하다. <13일 차> 곤경은 사람을 단련시킨다. 자신이 놓인 어려운 환경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여 원망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곤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성장의 기회로 삼을 것인가. 어떤 길을 가느냐에 따라 종착역이 크게 달라진다. <21일 차> 매일 꾸준히 일한다. 고난이 계속되는 경우는 없다. 행운도 이어지지 않는다. 좋을 때 자만하지 말고 좋지 않을 때 무너지지 말자. 시련 속에도 현명하게 계속 노력하는 것이 성공의 씨를 키우는 일이다. <31일 차> 꿈을 상상한다. 나이가 얼마를 먹었든 꿈을 말하고, 밝은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는 인간으로 살고 싶다. 꿈을 품지 않은 사람에게 ‘성공’이 주어지지 않는다. 꿈을 통해 인생은 도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