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스미 유키 파나소닉 CEO. 사진 블룸버그
쿠스미 유키 파나소닉 CEO. 사진 블룸버그
최인한 시사아카데미 일본경제사회연구소장현 경희사이버대 일본학과 강사, 전 한국경제신문 온라인총괄 부국장
최인한 시사아카데미 일본경제사회연구소장
현 경희사이버대 일본학과 강사, 전 한국경제신문 온라인총괄 부국장

일본인이 가장 존경하는 현대 기업인은 누구일까.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꼽는 사람이 많다. 20세기에 ‘전자 왕국 일본’을 일군 파나소닉(구 마쓰시타전기)의 창업자이며, 마쓰시타정경숙을 세워 정치 지도자를 키워낸 선구자이기 때문이다.

1918년 창업해 올해 104년째를 맞은 파나소닉은 일본 경제의 성장과 궤적을 같이한다. 회사 경영 이념은 ‘더 나은 생활, 더 좋은 세상(A Better Life, A Better World)’이다. 20세기에 전성기를 보냈던 파나소닉은 2000년대 들어 침체기를 겪고 있다. 글로벌 전기전자 업계 선두 자리를 삼성전자 등 외국 기업에 내줬다. 올 7월 최고경영자(CEO)를 맡은 쿠스미 유키(56) 사장은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의 융합’을 선언했다. 200년 기업을 향한 대혁신 장정에 나선 파나소닉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본다.

7월 23일 도쿄올림픽의 개회식 하이라이트는 성화 점화였다. 일본을 대표하는 테니스 간판스타 오사카 나오미(24) 선수가 최종 주자였다. 세계 랭킹 2위인 오사카는 일본인 어머니와 아이티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보수적이고 배타성이 강한 일본인이 도쿄올림픽의 주인공으로 오사카 선수를 내세운 것은 다양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올림픽 축제의 주인공이 되면서 덕을 본 기업이 지난 4월 오사카와 브랜드 홍보대사 계약을 맺은 파나소닉이다.

회사 측은 오사카 선수를 모델로 발탁한 이유를 세 가지로 꼽았다. 첫째, 오사카 선수가 보다 나은 사회의 존재 방식을 스스로의 말로 발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신적인 안정과 물질적인 풍요가 갖춰져야 비로소 사람들이 행복해진다”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경영 철학에 따라 파나소닉도 물질과 마음이 풍부한 ‘이상 사회’ 실현을 지향한다는 설명이다. 둘째, 오사카 선수가 강인한 플레이를 통해 세계인에게 건강한 기운과 용기를 전해주고 있다는 것. 파나소닉은 사회에 필요한 상품 제공뿐 아니라 고객을 기쁘게 하고, 기운을 북돋아 준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셋째, 끊임없이 진화를 추구하고, 노력하는 오사카 선수의 프로페셔널한 자세다. 파나소닉도 사회를 위한 전문성을 갈고닦아 끊임없는 진화를 지향한다.


파나소닉, 200년 기업 향해 사업 구조 재편

파나소닉은 국내외 24만 명의 임직원을 가진 거대 기업이다. 하지만 21세기 디지털 시대 대응이 늦어져 국내외 경쟁사에 비해 실적이 부진한 편이다. 올해 3월 말 기준 회사 시가총액은 소니의 4분의 1 수준. 2020 회계연도(2020년 4월~2021년 3월) 매출은 25년 만에 7조엔(약 70조원) 아래로 떨어졌다. 파나소닉은 실적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9년 만에 CEO를 바꿨다. 새로 사령탑을 맡은 쿠스미 유키 사장은 ‘HW와 SW의 융합’을 회사 비전으로 내걸었다. 쿠스미 사장이 200년 기업을 향해 닻을 올린 것이다.

파나소닉의 구조 재편 작업은 쓰가 카즈히로 전임 사장부터 시작됐다. 쓰가는 재임 9년 동안 파나소닉을 위기에서 구하고 일정 수준의 정상 궤도로 올려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사장으로 취임한 2012년 당시가 최악의 상태였다. 2012 회계연도 결산에서 창업 이후 사상 최대인 7700억엔(약 7조7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쓰가의 최대 임무는 적자 축소였다. 그는 취임 이후 적자의 근본 원인이던 플라즈마 TV 사업에서 과감히 철수했다. 역대 사장들이 슬림형 TV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거액 투자를 지속했던 적자 사업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어 액정패널, 반도체, 자판기, 태양전지 사업을 접었다. 올 3월에는 TV의 일본 내 생산도 중단했다.

쓰가는 재임 기간 중 주력 사업을 기업 대상 비즈니스인 ‘B to B’ 분야로 바꿨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와의 제휴가 대표적인 신규 사업이다. 그는 자동차용 배터리 사업에 눈을 돌려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다. 2017년부터 미국 네바다주에 배터리 공장을 공동 경영하고 있다. 이 공장은 출범 초기 적자에서 벗어나 지난해부터 흑자를 내고 있다.

쓰가는 퇴임 직전 미국 소프트웨어 대기업 블루욘더(Blue Yonder)도 매수했다. 애리조나주에 본거지를 둔 서플라이체인(공급망) 시스템 개발 업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기업들에 서플라이체인 개선을 제안, 높은 수익을 올린다. 인수 금액은 약 7600억엔(약 7조6000억원)으로 파나소닉 창사 이후 최대 규모다. 앞으로 파나소닉의 ‘HW와 SW 융합’을 구현할 대표적인 사업군으로 꼽힌다.


R&D 출신 쿠스미에게 주어진 부활 특명

연구개발 부문 출신인 쿠스미 유키 사장은 주로 TV 사업을 담당해 왔다. CEO 발탁 직전에는 배터리 등 자동차 관련 사업의 책임을 맡았다. 쿠스미 사장의 첫 번째 작품은 올 7월 선보인 가전 시리즈 ‘마이스펙’이다. 스마트폰과 가전을 연동시킨 신제품이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기능을 조절하고, 기능을 계속 업데이트할 수 있다. 이런 발상은 정통 제조 기업 파나소닉에선 지금까지 찾아볼 수 없던 방식이다. 파나소닉이 추구하는 ‘HW와 SW의 융합’을 보여준다.

쿠스미 사장은 취임 이후 회사의 주력 사업군을 가전, 주택, 자동차 3개 부문으로 확정했다. 가전은 ‘삶에 동경을 더하다(Aspire to more)’를 사업 비전으로 삼고 신제품을 개발 중이다. 주방용 제품, 사진 기술 관련 제품, 여성용 미용 가전제품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주택 사업의 비전은 ‘삶의 감동은 사는 곳에서부터’다. 주택 설비, 건자재, 고령자용 주택 등에 주력하고 있다.

자동차 부문은 가전과 ICT, 에너지 분야에서 파나소닉그룹이 보유한 기술과 노하우를 결집한다. ‘쾌적·안전하고 환경친화적’인 다양한 자동차 소재를 공급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제품으로는 첨단 카 일렉트로닉스, 안전 주행을 지원하는 드라이빙 솔루션, 클린 에너지를 실현하는 전자부품과 자동차 전지 등이 꼽힌다.

쿠스미 사장은 후진 양성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취임 이후 “우수한 경영자를 발굴하고 육성해야 한다”며 “파나소닉은 상품을 만드는 것보다 사람을 키우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최근 사내 메시지를 통해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정한 강령처럼 ‘사회생활의 개선과 향상’ ‘세계 문화의 진전’에 계속 기여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Plus Point

파나소닉의 원점, 마쓰시타의 경영 철학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1894년 와카야마현의 시골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어려워 9세에 단신으로 대도시인 오사카로 나와 자전거 점포 등에서 일한 뒤 23세 때인 1918년 마쓰시타전기를 창업했다. 그는 독특한 경영 이념과 탁월한 통찰력, 국제 감각으로 마쓰시타전기를 거대 기업으로 키웠다. 이 회사의 대표 브랜드인 ‘내셔널’과 ‘파나소닉’을 모르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21세기를 짊어진 지도자 육성을 목적으로 1979년 마쓰시타정경숙을 세워 초대 학장을 맡기도 했다. 1989년 94세로 세상을 떠났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경영 철학은 일본 기업인 사이에 교과서로 통용된다. 그는 기업을 경영하면서 조직이 원활히 기능하도록 하기 위해 사람의 능력과 가능성을 어떻게 살려야 할지에 평생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79세로 기업 현장에서 은퇴할 때까지 “경영이란 끊임없는 창의적 연구를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실천했다. 특히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로 인재 육성을 꼽았다. “만일 고객이 마쓰시타전기가 무엇을 만드는 회사냐고 물으면, 제품이 아닌 사람을 만드는 곳이라고 답하라”고 임직원들에게 늘 강조했다. “미래를 준비하는 리더라면 반드시 사람에게 집중하라.”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인재제일주의는 디지털 전환기와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혼란한 시대에 되새겨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