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옥수수 농장 바닥이 가뭄으로 갈라져 있다(왼쪽). 20년 만에 최악의 서리가 내려 농산물 생산에 차질을 입은 브라질 바르지냐. 사진 AFP연합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옥수수 농장 바닥이 가뭄으로 갈라져 있다(왼쪽). 20년 만에 최악의 서리가 내려 농산물 생산에 차질을 입은 브라질 바르지냐. 사진 AFP연합

전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 현상에 따른 가뭄과 홍수로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영향으로 주요 농작물 가격이 오르는 가운데 이상기후까지 겹치자 ‘식량 인플레이션(Agflation)’ 공포가 고개를 들고 있다.

글로벌 농산물 도매 가격을 집계하는 무역 플랫폼 트릿지에 따르면, 한국이 많이 사들이는 캐나다산 유채씨(카놀라유 원재료)의 도매가는 브리티시컬럼비아 지역 기준 1년 전보다 두 배 올랐다. 2020년 7월 27일 ㎏당 0.39달러이던 유채씨 가격은 올해 7월 12일 기준 0.78달러를 기록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레몬의 도매가는 올해 2월 8일 ㎏당 2.2달러에서 7월 19일 기준 7.72달러로 3배 이상 치솟았다.

독일에선 과일·야채 등 신선식품의 도매 가격이 급등했다. 딸기의 경우 올해 6월까지 ㎏당 2~3달러대를 유지하다가 7월부터 4달러를 뚫고 5달러 가까이 올라갔다. 1달러대이던 가지 가격도 20~30% 치솟았다. 벨기에와 스페인의 딸기 도매가 역시 두 배 급등했다.

남미에서는 브라질산 옥수수 도매가가 7월 26일 기준 ㎏당 0.4달러까지 올랐다. 0.2달러 수준이던 작년 7월과 비교하면 1년 만에 두 배가량 급등한 것이다. 브라질의 마늘 도매가도 올해 2월 8일 기준 2.27달러에서 7월 26일 3.47달러로 크게 올랐다. 같은 기간 커피 가격(론드리나산 기준)도 1.77달러에서 2.8달러로 솟구쳤다.

윤주희 트릿지 책임연구원은 “국내 식탁에 자주 오르는 페루산 아보카도, 칠레산 포도의 현지 도매가가 올해 7월 중순 기준 1년 전보다 30~40% 높아졌다”라며 “사료 원료인 대두(아르헨티나산·브라질산·미국산 기준)와 식용유 원재료인 해바라기씨(우크라이나산·러시아산 기준) 등도 원산지에서 기록적인 가격 상승 추이를 보인다”고 했다.

글로벌 농산물 가격에 불을 붙인 범인은 이상기후다. 현재 미국과 캐나다 서부 지역은 ‘100년 만의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이 지역 많은 주민의 목숨을 앗아갔다. 불볕더위가 만든 건조한 환경은 산불로 이어졌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지역의 경우 불과 한 달 전까지 100여 건 수준이던 산불 발생 횟수가 약 2주 만에 3배가량 늘어났다.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의 피해도 심각하다. 미국 국가통합가뭄관리시스템(NIDIS)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면적의 94.3%가 심한 가뭄 상태다. 잡초가 말라붙어 소와 말의 방목이 어렵고, 지하수도 바닥을 드러냈다. 주(州) 인구의 30%가 가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게 주 정부 설명이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최근 가뭄 비상사태 선포 지역을 40여 개 카운티로 확대했다.

독일과 벨기에는 반대로 기록적인 폭우에 따른 물난리가 신선식품 가격 폭등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유럽뿐 아니라 이웃 중국 허난성도 폭우와 홍수가 강타해 약 9000㎢의 농경지가 침수 피해를 당했다. 허난성은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돼지고기 생산지다. 브라질 농산물 생산에 차질을 입힌 건 20년 만에 내린 최악의 서리다. 브라질은 오렌지 수확량이 전년보다 31% 줄어 33년 만에 가장 큰 감소세를 나타냈다.

윤주희 연구원은 “이상기후로 작황이 나빠진 농산물은 세계적으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고 보면 된다”라며 “주요 식품 제조사와 소비자로서는 당분간 비용 부담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 고객들이 신선식품·채소 판매대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 고객들이 신선식품·채소 판매대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연결 포인트
추석 다가오는데…국내 장바구니 물가도 꿈틀

이상기후가 야기한 농산물 가격 급등은 외국에만 해당하는 이슈가 아니다. 한국 역시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따른 원재룟값 인상, 노동력 감소, 팬데믹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서민의 장바구니 물가 부담이 커지고 있다.

8월 3일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7월 달걀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57% 상승했다. 이는 전년 동월 대비 64.8%의 상승률을 기록한 2017년 7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세다. 국내 달걀 가격은 올해 6월에도 54.9% 치솟았는데, 7월 들어 그 기세가 더 세진 것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산물 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8월 2일 기준 특란(30구) 가격은 7268원으로, 평년 수준(5216원)보다 2052원 비싸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의 여파로 달걀 낳는 닭이 부족한 상황에서 폭염으로 닭이 집단 폐사했다”라고 달걀값 급등 배경을 설명했다.

쌀·콩·팥·녹두 등 식량 작물과 시금치·고추·마늘·미나리 등 채소류, 배·포도 등 과일 가격도 내려올 줄 모른다. KAMIS에 따르면 8월 3일 기준 시금치 도매가는 4㎏당 4만6080원이다. 2만9044원이던 1년 전보다 크게 오른 가격이다. 깐마늘도 20㎏에 16만45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만5000원)보다 3만원가량 비싸다. 배 도매 가격도 5만8836원에서 10만8200원으로 급등했다.

농산물 등의 원재료 가격 상승은 생산자물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행이 7월 21일 발표한 ‘2021년 6월 생산자물가지수’에 따르면 6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09.06으로 전월 대비 0.4% 상승했다. 지난해 11월부터 8개월 연속 상승세다.

국내외 원재료 급등은 이미 가공식품 가격 상승으로도 옮겨가는 분위기다. 오뚜기와 농심은 8월부터 라면 평균 가격을 각각 11.9%, 6.8% 인상했다. 앞서 7월에는 CJ제일제당이 햄·소시지류 가격을 9.5% 올렸다. 동원F&B도 참치캔 가격을 10% 인상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생산자물가가 소비자물가에 반영되기까지 6~12개월 소요된다”라며 “내년까지 식료품 소비자물가가 치솟을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물가 급등은 금리 인상 등 통화 정책의 변화를 예고한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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