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반(反)정부 무장세력 탈레반은 8월 15일(현지시각) 수도 카불로 진격해 대통령궁을 장악했다. 탈레반 지도자들이 해외로 도피한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집무실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AP연합
아프가니스탄의 반(反)정부 무장세력 탈레반은 8월 15일(현지시각) 수도 카불로 진격해 대통령궁을 장악했다. 탈레반 지도자들이 해외로 도피한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집무실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AP연합

20년간 이어졌던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이 패퇴했다. 중동에서 발 빼려는 미국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지만 미·중 충돌 상황에서 중국에 이익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프간의 반(反)정부 무장세력 탈레반이 8월 15일(이하 현지시각) 수도 카불로 진격해 대통령궁을 장악했다. 카불 점령은 예정된 것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가 2020년 탈레반과 평화합의 후 철군을 결정했고, 조 바이든 현 정부도 이를 계승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벌인 전쟁 중 가장 길었던 아프간전의 발단은 2001년의 미국 9·11 테러였다. 테러 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이자 9·11 테러 주모자인 오사마 빈 라덴은 테러 이후 아프간에 은거했다. 당시 부시 정권이 빈 라덴 인도를 요구했으나 탈레반이 거부했다. 그해 12월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으로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켰다. 미국은 흩어진 탈레반을 소탕하고 아프간 민주화를 시도하는 데 20년을 허비했다. 브라운대에 따르면, 미국의 아프간 전비는 2조2610억달러(약 2686조원)에 달한다. 2300명 이상의 미군, 아프간 민간인 4만 명이 넘게 목숨을 잃었다.

미국이 중동을 보는 시선은 그사이 크게 바뀌었다. 미국이 셰일오일 증산으로 석유 순(純) 수출국이 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낮아지면서 중동의 지정학 가치도 함께 떨어졌다. 외교 안보 정책의 축은 중동 정세 안정에서 중국 견제 쪽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미국의 중국 견제 집중이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힘의 공백이 생긴 중동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의 아프간 철수가 장기적으로 중국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세 가지로 분석했다.


1 | 미국의 리더십 손상, 중국이 활용한다

민주주의와 인권 수호를 외교 정책의 기둥으로 삼는 바이든 정부로서는 정권의 명분·리더십에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가니 정권의 붕괴를 사실상 방관한 꼴이 됐기 때문이다. 아프간에서 여성·인권 문제가 심각해지면 미국에 대한 비난과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에 의구심이 커질 수도 있다. 미국 개입 이전인 1996~2001년 탈레반 정권에선 여성 취업 금지 같은 엄격한 이슬람 원리주의 통치가 행해졌다.

시진핑 정권에는 미국의 위상을 떨어뜨릴 호기다. 중국 환구시보는 8월 16일 사설에서 “미국의 아프간 철수는 미국이 동맹국과 맺은 약속을 신뢰할 수 없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썼다. 이미 중국은 중동의 여성·인권 문제를 지적하는 미국에 대항해 중국에 유리한 전선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 4월 사우디아라비아·터키·오만 등 중동 6개국을 순방하면서 ‘미국은 인권을 구실로 각국의 고유한 권리를 빼앗으려고 한다. 미국의 내정 간섭에 반대한다’는 원칙을 각국과 함께했다. 이 순방은 중국의 소수민족인 위구르인에 대한 탄압과 관련해 미국이 대중국 제재를 발표한 직후 이뤄졌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동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징후는 이슬람교도가 과반인 거의 모든 나라가 중국 서부 재교육 시설에 200만 이슬람교도가 수용돼 있는 상황을 지지한 점일 것”이라고 썼다.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쿠웨이트·이라크·아랍에미리트(UAE) 등은 성명과 유엔에 보낸 공동 서한에서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수용 시설과 이슬람교 탄압에 대해 ‘반(反)테러 탈급진화 대책’이라며 이를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왕이(오른쪽)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7월 28일(현지시각) 중국 톈진에서 탈레반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회담을 했다. 사진 중국 외교부
왕이(오른쪽)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7월 28일(현지시각) 중국 톈진에서 탈레반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회담을 했다. 사진 중국 외교부

2 | 침체됐던 일대일로에 날개 달아줄 것

아프간은 지정학적으로 중국에 중요하다. 중동 등 서쪽으로 뻗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의 중계점이 될 수 있는 데다, 인접한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안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의 화춘잉 대변인은 8월 16일 기자회견에서 “탈레반이 각 당파·민족과 단결해 국정에 부합하는 정치적 틀을 만들기를 바란다”면서 탈레반과 중국이 소통해온 점을 강조했다. 지난 7월엔 왕이 외교부장이 탈레반 간부와 회담에서 “아프간 평화·화해·부흥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탈레반을 한껏 추켜세웠고, 탈레반 측은 “중국이 아프간 재건과 경제 발전에 더 큰 역할을 해 주길 바란다”라고 응수했다.

아프간을 비롯해 중동·이슬람권에서 중국의 입지가 강화된다면 중국의 해상로 확보도 유리해진다. 중국은 4년 전 아프리카 지부티에 첫 해외 군사기지를 건설했다. 이후 오만만을 끼고 있는 파키스탄 과달항과 오만 두쿰항을 비롯한 다른 요충지도 확보했다. 아프간은 중국 서부에서 파키스탄을 지나 아라비아해로 이어지는 일대일로의 지선(支線)이 될 수도 있다.

중국 외교부는 2016년 백서에서 ‘중·아랍 간 군사 교류·협력을 강화한다’고 천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월 22일 “중국은 중동을 거쳐 유럽·동아시아를 잇는 해상로를 확보해 미국을 경제·군사적으로 더 위협하게 될 것”이라며 “이것이야말로 일대일로의 진수다. 바이든 정부는 이를 막아야 한다”고 썼다.


3 | 한·일 석유 수급 불안…美의 ‘아시아 회귀’에도 차질

FT는 작년 9월 “미국의 목표가 아시아에서 중국의 야망을 막고 일본·한국·대만 등의 동맹국들을 지원하는 것이라면 중동 철수는 절대 해선 안 되는 일”이라고 썼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가 중동에서 해상 수송을 통해 석유를 공급받기 때문이다. 아라비아반도 주요 해역의 지배권을 중국에 넘기면 아시아 모든 나라가 미국과 전략적 동맹 관계를 재고해야 하고, 중국의 위압 외교에 영향받기도 더 쉬워진다는 것이다.

오바마 전 행정부는 외교·군사력의 초점을 아·태 지역으로 옮겨 중국의 패권 도전을 막는 ‘아시아 회귀’ 전략을 수립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전략을 가속화했고, 바이든 현 정부 역시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설득력 있어 보였던 미군의 중동 철수와 아시아 회귀 전략이 중국의 급격한 중동 진출로 인해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특히 중동은 민주화가 진행되지 않고 군과 왕족의 권위주의적 지배가 계속되고 있다. 탈(脫)석유화에 따른 유가 침체로 경제구조 전환도 시급하다. 중동을 경원시하고 있는 미국 대신 중국과 친밀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미 중국은 지역 강국 이란과 25년간의 포괄적 협정을 맺었다. 중국의 거액 투자와 이란의 원유·천연가스 공급이 골자다. 중국과 이란은 미국과 적대적이라는 점에서 입장을 공유한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은 이미 이라크의 최대 교역국이다. 이라크 석유의 대중 수출은 이라크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미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모두의 최대 교역국이다. 이집트에도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 중국은 중동 최대 외국인 투자자로, 바레인을 제외한 모든 걸프만 국가와 전략적 동반자 협정을 맺고 있다. 중국은 탈레반에도 미군 철수 이후 막대한 에너지 인프라 투자를 약속했다.

최원석 조선일보 국제경제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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