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들어서면서 전 세계 국가들은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앞다퉈 법인세율 인하에 나섰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전 세계 국가들은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앞다퉈 법인세율 인하에 나섰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지부장·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지부장·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지난 7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30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2023년부터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을 15%에 맞추기로 합의했다. 외자 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기술력 제고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조세 룰을 바꿔 경쟁적으로 세율을 낮추는 ‘바닥으로의 경쟁(race to the bottom)’을 종식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이를 실제로 시행하는 데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된다는 지적과 함께 우호적인 경영 환경을 두고 벌어지는 국가 간 진짜 경쟁은 지금부터라는 말이 전문가들 사이에 회자된다. 앞으로 기업이 투자할 곳을 결정하는 데 명목적인 법인세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실효세율이고, 세율을 제외한 규제 완화 등 경영 여건이 더 중요한 이슈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OECD, 최저 법인세 15%로

특정 국가가 다른 나라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강조하는 유인책은 낮은 인건비와 높은 기술이다. 더불어 여타 국가에서 확보할 수 없는 자원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런데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인건비 격차가 줄어들고 인력 이동이 보다 자유로워지면서 인건비의 메리트는 점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특히 디지털화의 진전으로 거의 모든 공정에 자동화가 이뤄지면서 더욱 그러하다. 다국적 기업의 출현으로 기술 수준도 평준화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더 이상 기업을 빨아들이는 요건이 되지 못한다. 자유무역협정(FTA) 확산에 따른 관세 인하와 초대형 선박 및 비행기의 등장으로 물류비 문턱도 크게 낮아졌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기업의 질적 경쟁력을 결정하는 데 매출 규모보다 이익률이 더 중요시되면서 법인세율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부상했다. 여러 나라에서 법인세율 인하가 앞다퉈 진행됐고 세금이 거의 없는 조세피난처가 글로벌 기업들의 거점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법인세율 인하에 기름을 부은 주인공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여 전 세계 자본을 빨아들이고 있는 중국이다. 중국은 2008년 이전에는 법인세율이 33%에 달했다. 중앙정부 22%에 지방세 11%가 합쳐진 것이다. 그러나 각종 우대 혜택을 받는 외자기업에 비해 내자기업들이 홀대를 받고 있다는 여론이 일면서 2008년에 25%로 내외자기업을 동일시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였다.

미국에서는 조세 혜택이 많은 곳으로 투자가 빠져나가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불만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얼굴을 내밀면서 본격화됐다. 이에 36%인 법인세율을 21%로 낮추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엄청난 인하 폭에 전 세계가 떨고 있다는 언론 헤드라인이 상징하듯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영국과 일본도 다양한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체감 법인세율을 낮춰 외국 기업에 당근을 제공했다. 이에 따라 마이크로소프트(MS)가 부담하는 ‘실질 법인세율’은 최근 15%까지 떨어져 10년 전에 비해 16%포인트나 부담이 적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아마존과 도요타자동차도 세(稅) 테크를 적용하면서 글로벌 차원에서 법인세 절감 혜택을 누렸다고 한다.

실제로는 기업 입장에서 명목상 법인세율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부담하는 세율이 더 중요하다. 중국에서 개혁·개방 이후 33%라는 높은 세율에도 불구하고 외자기업은 일정 기간 법인세가 완전히 없거나 50%만 부담하는 특혜가 적지 않았다. 심지어 ‘5면5감반(5免5減半)’으로 투자 후 최초 5년간 면제하고 그 후에 5년은 절반만 내도록 하는 특혜도 시행 중이다. 이런 우대 정책이 외자기업에 몰리면서 25%로 통일된 이후에도 내자기업이 차별받고 있다는 불만이 있었다. 또한 중서부 진출 기업과 첨단 기업에는 15%라는 보다 낮은 세율이 적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번에 글로벌 차원에서 15%를 하한으로 정했지만 각종 인센티브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또한 법인세율이 비슷한 수준으로 수렴한다면 시장 크기가 외자 흡인력을 결정하는 중요 잣대로 작용할 전망이다. 실제로 중국이 법인세율이 상대적으로 낮은데 이번 조치로 메리트가 반감되면서 외자가 유출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절대 시장이 커서 오히려 외자는 더 몰려들 것이라는 반대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시장이 크면 자원을 효과적으로 재분배해 기업 활동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고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여 원가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도 비슷한 효과를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원해 기술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공장용지에 대한 파격적인 조치도 이미 기정 사실화되고 있다.

최근 반도체와 전기차 등 미래 산업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공급망 재구축도 일정 수준 법인세율 균등화를 무력화하는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안정적인 비즈니스 구도를 위해 생산 조달 및 판매망을 시장별로 구분해 ‘효율’보다 ‘안정’을 택하는 것이 새로운 공급망 구축 전략이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부품에 대해 두 개 이상의 복수 채널이 당연시되면서 반도체의 경우 중국과 미국의 조달선 거리 두기가 불가피하다. 또한 이차전지 등에 들어가는 핵심 원부자재를 조달하는 데 법인세율 자체보다는 다원화(대체선 발굴)가 더 중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규제 완화 등 유연한 정부 정책 중요

최근 물류비가 엄청나게 급증하면서 법인세를 고려한 생산지 중심에서 소비지 위주의 투자 패턴을 촉진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규모의 경제라는 기존 틀보다 생산지 인근에 보다 작은 규모의 공장을 여러 개 만들어 소비자의 패턴 변화에 즉각 반응토록 한다는 복안이다. 이 과정에서 원가가 높아지는 것은 디지털로 커버하면서 소비자에 대한 반응 속도를 높이고 있다. 모든 소비자에게 맞춤형 서비스(제품)를 거의 실시간으로 제공하기 위해 빅데이터와 AI(인공지능) 기술을 채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솔루션이다.

그러나 법인세율 인하가 촉발할 새로운 투자지도는 특정한 전략이나 자원이 아닌 다른 것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주장도 힘을 얻는다. 기업이 보다 자유롭게 경영 전략을 펼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느냐가 투자 결정에 핵심이라는 것이다.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기업의 경쟁력 제고는 기술 간 융·복합화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유연한 정책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보다 자유롭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운동장이 단기적인 비용 유인책보다 더 강력하게 외자에 대한 흡인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근로자의 일자리를 어떻게 지킬 것이냐는 답을 국가에 요구하고 있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법인세율 증세 논의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모양새도 같은 맥락이다. 글로벌하게 최저 법인세율을 맞춘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법인세 이외 분야에서 국가 간 경쟁을 촉발할 것이다. 그것이 코로나19 이후 경제 회복의 속도를 넘어서 디지털 혁명의 국가별 성공 여부도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