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일본 총리를 저격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영화 ‘팬케이크를 도쿠미(毒見)하다’ 포스터. 사진 스타샌즈
스가 일본 총리를 저격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영화 ‘팬케이크를 도쿠미(毒見)하다’ 포스터. 사진 스타샌즈
최원석 조선일보 국제경제 전문기자 온라인 칼럼 ‘최원석의 디코드’ 필자, ‘테슬라 쇼크’ ‘왜 다시 도요타인가’ 저자, 전 ‘이코노미조선’ 편집장
최원석 조선일보 국제경제 전문기자
온라인 칼럼 ‘최원석의 디코드’ 필자, ‘테슬라 쇼크’ ‘왜 다시 도요타인가’ 저자, 전 ‘이코노미조선’ 편집장

일본의 여당 자민당(自民黨)이 차기 총리 자리를 놓고 혼전에 빠졌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가 갑자기 연임을 포기하면서부터다. 임기 만료를 한 달도 안 남긴 9월 3일이었다. 최근까지 연임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던 그였지만, 도쿄올림픽 강행 이후 코로나19 대확산과 의료시설 부족 사태, 국민 불만 폭발 등의 난국을 극복하지 못했다. 작년 이맘때였던 집권 초기, 70%대까지 올라갔던 지지율은 최근 20%대까지 떨어졌다.

총리 퇴진이 확정되면서 일본에서 크게 화제인 영화가 있다. 스가 총리를 저격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영화 ‘팬케이크를 도쿠미(毒見)하다’이다. 현직 총리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일본 최초의 영화라는 타이틀을 달고 7월 30일 일본에서 개봉됐다.

개봉 시기 자체가 9월 말 자민당 총리 재선출, 10월 중순 중의원(양원제인 일본에서 하원 의원에 해당) 선거를 염두에 둔 것이긴 하지만, 비판 대상이 된 스가 총리가 공교롭게도 개봉 한 달여 만에 퇴진을 발표해 버리면서 더 주목받고 있다. 9월 7일 현재 도쿄에서만 9개 관에서 상영 중인데, TV 등에선 개봉 사실을 일절 알리지 않았는데도 스가 퇴진 이후 관객이 전주 같은 기간보다 150%가량 늘었다.

제목에 쓰인 팬케이크는 스가 총리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다. 지역구 요코하마에 있는 한 팬케이크 전문점에서 부인과 함께 줄을 서서 먹은 일화가 소개되면서, ‘서민 정치인’ ‘젊은이들에게 친숙한 정치인’ 이미지가 부각되기도 했다.


‘팬케이크를 도쿠미하다’ 예고편 중 한 장면. 사진 오리콘 뉴스 유튜브
‘팬케이크를 도쿠미하다’ 예고편 중 한 장면. 사진 오리콘 뉴스 유튜브

일본 최초의 현직 총리 비판 영화로 화제

도쿠미(毒見)는 음식을 남에게 권하기 전에 본인이 맛을 봐 독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을 뜻하는 일본어. 이 영화를 제작한 가와무라 미쓰노부(河村光庸·72) 프로듀서는 영화 제목에 대해 “작년 9월 총리가 취임 직후 담당 기자들을 불러 팬케이크를 대접했다는 것에서 착안했다”고 했다. ‘당신도 맛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팬케이크 정권의 달콤한 덫’이라는 포스터 홍보 문구가 영화 의도를 그대로 전한다. 팬케이크로 상징되는 권력의 달콤함에 가려진 진실을 외면하는 정치인·유권자·언론 등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것이다.

영화는 스가라는 인물에 대해 현역 정치가나 전 관료, 저널리스트, 각계 전문가 입을 빌려 설명한다. 스가 총리와 가까운 의원·관계자들은 전부 취재를 거부했으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 무라카미 세이이치로(村上誠一郎) 자민당 중의원, 1996년 스가의 중의원 첫 선거를 도왔던 에다 겐지(江田憲司) 입헌민주당 중의원 등이 출연한다. 스가 총리의 과거 답변을 철저히 검증하지만, 애니메이션 등을 사용해 블랙코미디 요소도 넣었다.

영화에서는 스가 총리의 말, 즉 소통의 문제점 그리고 장기적 비전 부재에 주목한다. 스가 총리는 취임 한 달 만인 작년 10월 정부가 지원하는 ‘일본학술회의’ 회원 임명에서 학회 측이 추천한 후보를 그대로 통과시키는 관례를 깨고 임명을 거부했다가 학문의 자유와 독립성을 침해했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지난 2월엔 일본 총무성 직원들이 스가 총리의 장남이 일하는 방송 업체로부터 접대받은 것이 드러나 11명의 직원이 무더기 징계받기도 했다. 사안 자체도 문제지만, 스가 총리의 이후 모호한 답변도 크게 문제 삼았다.


개봉 한 달 만의 총리 깜짝 퇴진으로 영화 관객 더 몰려

스가 총리의 소통 부족 문제도 부각됐다. 코로나19가 조금 진정되자마자 국가가 여행비를 지원해주는 ‘고투(Go To)’ 캠페인을 벌였다가 다시 코로나 긴급사태 선언을 반복했고, 도쿄올림픽을 강행해 코로나 감염 급확대를 야기했음에도, 스가 총리는 “코로나19 터널 끝의 빛이 보인다”라고 말해 빈축을 샀다. 영화에서는 “스가 총리가 국민에게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이끌어갈 정치 철학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도 비판한다.


가와무라 미쓰노부(河村光庸) 프로듀서. 사진 마이니치신문
가와무라 미쓰노부(河村光庸) 프로듀서. 사진 마이니치신문

스가라는 인물에 빗대어, 자민당과 일본 정치, 유권자 의식까지 비판

스가가 아베 내각에서 관방장관에 취임한 이후 언론·관료를 압박해 ‘손타쿠(忖度·알아서 기는 것)’시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는 점도 지적했다. 특히 총리에게 팬케이크를 대접받은 언론을 얘기한다. 총리관저 회견에선 기자들이 질문을 관저 측에 사전 통고하기 때문에 답변이 미리 준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방식을 만든 게 기자클럽이라는 것. 기자들이 더 파고드는 질문을 하지 못하는 것의 책임이 언론에도 있다는 것이다. 팬케이크, 즉 눈앞의 달콤함에 취해, 권력에 자발적으로 순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국민과 미래를 위한 대의(大義)와 권력 감시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있다.

선거 때 투표하러 가지 않은 젊은이들에게도 의문을 던진다. 소통 부재의 정권을 만들어낸 책임은 언론뿐 아니라 정치에 무관심한 유권자에게도 있다는 것. 영화에는 ‘그래도 선거에 이기니까’라는 인터뷰 내용도 등장한다.

스가 총리가 중심이긴 하지만, 그만 비판한 것은 아니다. 스가 총리 전임인 아베 신조 총리를 배출한 자민당 정권 그 자체, 그리고 권력을 감시하는 쪽의 책임을 끊임없이 묻는다. 가와무라 프로듀서는 8월 1일 자 동양경제 인터뷰에서 ‘왜 굳이 이런 소재를 택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인디 영화사(그는 이 영화의 제작·배급사인 스타샌즈 대표다)로서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상태를 그대로 긍정하는 한 우리 사회의 발전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9월 1일 자 마이니치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도 얘기했다. “스가 총리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지만(공교롭게도 스가 총리는 이 인터뷰가 나가고 이틀 뒤인 3일, 연임을 포기했다), 다른 사람이 대신해도 지금의 정치 상황을 바꾸기는 꽤 어렵다. 그럴수록 가을(10월 중순)의 중의원 선거에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정권을 심판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와무라 프로듀서는 이번 영화를 만들기 전에도 아베 전 총리의 사학비리를 다룬 ‘신문기자(2019)’를 제작해 이름을 알렸다. 이 영화는 일본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주연남우상, 최우수 주연여우상(한국 배우 심은경) 등 6개 부문을 수상하는 등 그해 일본 내 각종 영화상을 휩쓸었다.

‘팬케이크를 도쿠미하다’를 기획한 것은 2020년 9월 스가 정권 탄생 직전. 그가 스가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신문기자’ 제작 때부터다. 아베 정권 이후 정치에서 언로와 논의가 사라지고 의회제 민주주의의 근본이 무너지고 있다고 느꼈고, 이를 풍자·비판하는 블랙코미디 성격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작품 완성까지 여러 차례 어려움이 닥쳤다. 감독 인선부터 난항이었다. 우치야마 유토(内山雄人·55) 감독이 맡기 전까지, 섭외를 의뢰했던 10여 명이 줄줄이 연출을 거절했다. 촬영에도 고생이 많았다. 본격 촬영에 들어간 올해 초부터 총리 주변의 국회의원과 출생지인 아키타, 지역구인 요코하마 관계자들을 인터뷰하려 했지만, 모조리 거절당했다. 우여곡절 끝에 촬영 5개월 만에 겨우 완성했다.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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