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연합뉴스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 전 한국산업은행 산은경제연구소장, 전 한국산업은행 중국본부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 전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 전 한국산업은행 산은경제연구소장, 전 한국산업은행 중국본부장

중국이 중진국 함정과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두 개의 함정에 빠졌다. 개발도상국이 경제발전 초기에는 순조롭게 성장하다 중진국 수준에 와서는 성장이 장기간 정체하는 현상을 뜻하는 중진국 함정은 어느 국가나 발전단계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지만, 투키디데스 함정은 중국이 회피하거나 훨씬 늦게 마주할 수도 있는 상황을 중국의 조급증이 불러온 것이다. 투키디데스 함정은 기존 패권국가와 빠르게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이 결국 부닥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이 공급망 분리나 기술 전쟁을 먼저 시작한 측면이 있지만 그 발단은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의 재능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를 이어가야 할 중국의 조급한 외교 정책과 과시적인 경제산업 정책이라고 하겠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 경제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회의감과 함께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 반면, 중국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안정 성장 단계로 이행하면서 중국식 정부주도하의 시장경제 발전모델인 베이징 컨센서스가 부상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의 흐름 속에 2012년 10월 18대 공산당 당대회에서 총서기로 선출된 시진핑(習近平)은 2013년 6월 미국과 첫 대면에서 ‘신흥 대국관계’를 요청했다. 신흥 대국관계는 중국 경제 규모가 G2(주요 2개국)로 올라선 것을 배경으로 미국과 버금가는 지위 또는 적어도 아시아 지역에서 리더 국가로서의 위치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으나, 이로 인해 중국은 경제적으로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기도 전에 미국과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중국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G2로 올라선 것은 맞지만 1인당 GDP는 7000달러 정도로, 중진국 함정을 거론하기에도 부족한 수준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리더국가가 되기 위한 관대함이 부족해 신형 대국관계를 요구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봐야 할 것이다. 리더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특히 영토문제에서 관대해야 하는데 중국은 오히려 아시아 각국과 영토분쟁을 일으켰으며, 남중국해의 난사군도 문제, 동중국해의 댜오위다오 문제, 대만 해협 문제, 인도와 국경분쟁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의 외교 정책은 전랑(戰狼)외교라고 불리는 공격적인 늑대외교로 리더국가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외교적 측면이나 경제적 측면에서 모두 리더국가를 요구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이른 감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한편 중국은 미국과 공급망 분리라는 경제적 어려움도 겪고 있는데, 이 또한 성급하고 대외과시적인 경제·산업 정책인 ‘중국제조 2025’가 발단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중국제조 2025는 중국이 2015년 5월 발표한 차세대 ICT(정보통신), 신소재, 신에너지자동차, 바이오, 로봇, 고속철도 등 10개 제조업을 발전시켜 일류 제조강국으로 나아가겠다는 웅대한 계획이며, 그 실행계획인 기술 로드맵에는 국산화율 70~80%, 세계 시장점유율 40%를 달성하겠다는 포부가 담겨있다. 이러한 경제산업발전 계획의 발표는 계획경제 체제인 중국에서 일견 당연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그동안 경제발전 과정에서 보여준 각종 불법행위 등이 부각되면서 중국에 실망한 서방세계의 견제를 불러오게 된 것이다. 사실 중국의 방대한 시장을 무기로 한 기술습득 전략은 각종 잡음을 불러일으켜 왔다. 중국이 행해온 강제적인 기술탈취, 정부주도의 지식재산권 도용, 시장을 왜곡하는 산업 보조금 문제, 국유기업의 반경쟁적·비시장적 행위, 국가자본주의 시스템 강화 등에 반발해온 미국 등 서방세계는 결국 미·중 간 무역 전쟁과 공급망 분리를 추진하게 됐고, 이는 다시 기술 패권 전쟁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에 직면한 중국이 당면한 문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 선진국으로 도약한다는 국가 목표의 실현이다. 대체적으로 세계은행 기준에 따르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2696달러 이상이면 고소득국가로 분류하고 있어 중국은 아직 중진국에 속한다. 미국 소득(PPP⋅구매력평가기준)의 20~40%를 중진국으로 정의할 경우 중국은 미국의 30% 수준에 불과하다. 중국 학자들 사이에서는 1인당 GDP가 1만5000~2만달러는 상회해야 중진국 함정을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다. 따라서 중국은 앞으로 수년간이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는데 매우 중요한 시기다.

중국은 경제발전 과정에서 외국의 경험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특히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의 경기침체 경험, 아시아 금융위기 시 한국의 외환위기 경험 등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중진국 함정도 타국의 경험을 벤치마킹하고 있는데, 중국이 가장 경계하는 부분은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실패한 국가들의 사례에서 제조업 비중이 급격히 하락한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수년 전부터 ‘탈허향실(脫虛向實) 정책’을 중시하고 있다. 탈허향실이란 가상경제를 지양하고 실물경제를 중시한다는 전략이다. 가상경제의 전형이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인데 최근에는 플랫폼 경제까지 가상경제로 보는 시각이 만연하고 있다. 최근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등 플랫폼 기업보다 전기차 등 첨단 제조업을 중점 지원하는 배경이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는 모든 산업을 제조업과 연관 지으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알리바바의 마윈(馬雲)은 대중연설에서 ‘하이디라오’라는 훠궈 업체나 알리바바 모두 이 업체들을 뒷받침하는 산업은 제조업이며 이에 따라 자기들도 일종의 제조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중국이 원하는 제조업 비중은 GDP 대비 30%를 유지하는 것이다. 2020년에는 이 비중이 26.2%로 떨어져 중국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거친 제조업 육성 정책이 나타나고 있는 배경이다. 플랫폼 경제를 죽이면 중국 정부가 지향하는 디지털 경제가 타격을 입을 것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경제보다는 제조 강국 전략이 우선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빈부격차도 해소해야 한다. 빈부격차가 커지면 사회불만으로 번져 성장이 한계에 부닥치기 때문이다. 빈부격차를 나타내는 중국의 지니계수는 공식 수치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0.5를 이미 훌쩍 넘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성장 초기 노동소득 격차에 의한 지니계수 상승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노동소득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자산에 의한 빈부격차가 이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중국의 공동부유 정책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과도 일정 부분 관계가 있겠지만 중진국 함정 측면에서 볼 때 공동부유 정책은 일견 매우 당연한 정책이 아닌가 한다. 문제는 급격하고 돌변하는 정책 변화로 국내외에서 신뢰와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어 오히려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웃 국가인 중국의 정책 변화는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전통 제조업 강국인 우리는 중국의 산업구조 변화가 미칠 영향, 중국 제조업과 경쟁 심화, 미·중 간의 갈등 과정에서 나타날 킨들버거 함정(새롭게 부상한 패권국이 기존 패권국이 가졌던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위기) 등 우리를 둘러싼 경제·정치·외교 환경 변화에 주목하고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박기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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