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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라 칼리시딜로이트 투쉬 토마츠리미티드 수석 글로벌이코노미스트 배서칼리지 경제학, 존스홉킨스대 국제경제학 박사
아이라 칼리시딜로이트 투쉬 토마츠리미티드 수석 글로벌이코노미스트 배서칼리지 경제학, 존스홉킨스대 국제경제학 박사

1│미국, 이미 경기 침체 진입했나

상당수 기업 리더들과 경제 전문가들이 미국 경기 침체가 임박했다거나 이미 경기 침체에 진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주장이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미국 경제의 현 상황에 대한 단서를 주는 지표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기 침체의 가장 큰 함정은 그것이 시작된 지 한참 후에야 알아차릴 수 있다는 점이다. 때로는 상황이 끝난 후에야 경기 침체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경우도 있다. 

먼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경제학자 클라우디아 삼(Claudia Sahm)이 고안한 ‘삼의 법칙(Sahm Rule)’을 살펴보자. 삼은 2019년 재정적 경기 부양 시작 시기를 결정하기 위해 경기 침체 시작을 알리는 신뢰할 수 있는 지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삼의 법칙은 1960년 이후 미국에서 발생한 9번의 경기 침체 모두에 들어맞았는데, 그 핵심은 실업률의 최근 3개월 이동 평균이 지난 12개월 동안 최저치보다 0.5%포인트 높으면 경기 침체가 시작된 것으로 간주한다. 현재 상황에 적용하면, 5월에 3.6%를 기록했던 미국 실업률이 6월에 5.1%까지 올라야 한다. 이럴 가능성이 작기 때문에 적어도 삼의 법칙에 의하면 미국은 아직 경기 침체가 아니다.

또 다른 단서는 국채 수익률 곡선(yield curve)이다. 미 국채 10년물과 2년물 간 수익률 격차(스프레드)를 보는 것이다. 지난 45년간 미국에 경기 침체가 발생할 때마다 경기 침체 초기에 2년물 수익률이 10년물 수익률을 넘어섰다. 이를 수익률 곡선이 역전됐다고 한다. 현재까지는 미 국채 수익률 곡선이 역전되지 않았지만, 지난 4월 중 며칠 정도 역전된 적이 있다. 10년물-2년물보다 10년물-3개월물 수익률 곡선이 더 확실한 신호가 될 수도 있다. 현재 10년물-3개월물 수익률 스프레드는 제로(0)를 훨씬 웃돌고 있다. 따라서 수익률 곡선으로 본 경기 침체 가능성 또한 요원하다.

소비 지출 관련 몇 가지 지표는 미국 경제의 견조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공항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는 승객 수와 주간 호텔 숙박률이 꾸준히 상승 중이고, 영화관 주간 티켓 매출은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전 수준을 웃돌고 있다. 제품에 대한 소비 지출이 줄면서 상당수 소비자가 팬데믹 기간 포기했던 서비스를 다시 소비하고 있다. 이는 경기 침체 신호와는 거리가 멀다.

이처럼 겉으로 드러난 지표들에 따르면,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진 것도, 경기 침체가 임박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태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경기 침체를 일으키는 원인이라 할 만한 일들이 현재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에 경기 침체 공포가 확산하면서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중단하거나 투자 지출을 감축 또는 중단할 수 있다. 휘발유 가격 급등에 타격받은 소비자들은 다른 품목에 대한 지출을 대폭 줄일 수 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같은 다른 위험 요인이 여전히 남아 있어, 경기 침체가 곧 발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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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구매관리자지수로 본 세계 경제 

시장조사 업체 IHS마킷이 집계하는 구매관리자지수(PMI) 6월 수치를 뜯어보면 세계 경제가 급격히 악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직 경기 침체 신호가 나온 것은 아니다. 미국, 유로존, 중국의 제조업 및 서비스 부문 PMI는 모두 확장세를 가리켰다. 하지만 세부 내용을 살펴보니 우려할 만한 경기 둔화 양상이 드러났다.

PMI는 민간 제조업과 서비스 부문의 전반적 경기 흐름을 나타내는 선행 지표로, 민간 기업의 구매관리자(purchasing manager)를 대상으로 실시한 서베이에 기반해 집계한다. 지수는 50을 기점으로 경기 확장과 위축으로 나뉜다. 지수가 50선을 넘어 높아질수록 경기 확장세가 가팔라지고, 50 밑으로 내려가 낮아질수록 경기 위축세가 심화한다는 뜻이다.

우선 6월 글로벌 제조업 PMI(확정치)는 52.2로 22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생산지수는 강화됐으나, 신규 주문과 수출 주문이 감소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국의 제조업 경기 확장세가 모두 눈에 띄게 둔화하면서 글로벌 수치를 끌어내렸다. 

IHS마킷이 집계한 29개국 중 6월에 제조업 위축세를 기록한 국가는 대만, 미얀마, 체코공화국, 튀르키예(옛 터키), 폴란드 등 5개국뿐이다. 주요국 제조업 경기가 둔화한 것은 공급망 관련 역풍이 지속되는 가운데 수요가 약화한 탓이다.

국가별로 미국 6월 제조업 PMI(확정치)는 52.7로 5월의 57.0에서 급락하며, 2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수 자체는 여전히 경기 확장세를 유지한다고 볼 수 있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세부 내용을 살펴보니 우려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IHS마킷은 “기업 신뢰도, 신규 주문, 수주 잔고, 투입 비용 등을 가리키는 하위 지수들이 모두 악화해 미국 제조업 경기 침체 위험이 심화하고 있음을 나타냈다”고 진단했다. 이어 에너지 위기 때문에 소비 수요가 약화됨과 동시에 금융시장 여건이 타이트해지면서 기업 투자도 위축되고 있다며 “전망이 암울하다”고 덧붙였다.

미국 6월 서비스업 PMI(잠정치) 또한 51.6으로 5월의 53.4에서 하락하며, 겨우 확장세를 유지했다. 하위 항목 중 생산지수는 확장세를 나타냈으나, 신규 주문은 감소했다. 투입 비용과 출하 가격 모두 상승세가 둔화했고, 수주 잔고도 감소했으며, 고용 증가세도 둔화했다. 

IHS마킷은 6월 미국 PMI가 심각한 경제 활동 약화를 나타냈으나, 경기 하락을 시사한 것은 아니라고 총평했다. 그러면서 “제조업 부문이 이미 경기 하강 단계에 진입했고 서비스업 경기 확장세도 급격히 둔화해 6월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연율 1%를 밑돌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로존도 미국과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6월 유로존 제조업 PMI(확정치)는 52.1로 5월의 54.6에서 하락하며 2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서비스업 PMI(잠정치)도 52.8로 5월의 56.1에서 떨어졌다. 특히 제조업 PMI 하위 지수인 생산지수가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시작 이후 처음으로 위축세를 가리켰고 신규 주문이 또 감소했다. 

IHS마킷은 수요 약화를 원흉으로 꼽으며 “생산량과 판매량이 각각 예상을 밑돌면서 원자재와 미판매 재고가 쌓이고 있다”며 “향후 수개월간 제조 업체들이 재고 해소에 나서면 제조업 경기가 전체적으로 한층 악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수요 약화가 일부 공급망 차질을 해소하는 효과를 가져와 산업재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소 완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경제활동이 둔화하니 인플레이션 억제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한편 중국 6월 제조업 PMI(확정치)는 51.7로 개선되며 4개월 만에 처음으로 확장을 시사하는 구간으로 진입했다. 게다가 생산과 신규 수주도 확장세로 전환했다. 중국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봉쇄 조치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공급망 상황이 개선되며 제조업 운영이 서서히 정상화하고 있다. IHS마킷은 수요보다 공급이 훨씬 가파르게 반등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