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7월 21일(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통화정책회의를 마친 뒤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겠다는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7월 21일(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통화정책회의를 마친 뒤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겠다는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모험은 성공할 것인가. 7월 21일(이하 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통화정책회의에서 ECB가 이례적으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이른바 ‘빅 스텝(big step)’을 단행한 뒤 전 세계 금융권의 관심은 일제히 라가르드 총재의 결단에 쏠렸다. 그동안 금리 완화를 고수해 왔던 ECB가 기준금리를 올린 것은 2011년 7월 이후 11년 만에 처음이기 때문이다. ECB는 2016년 3월부터 7년째 기준금리를 제로(0) 수준으로 유지해 왔다.

회의 직전까지만 해도 ECB가 빅 스텝을 단행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은 드물었다. 7월 회의에 앞서 로이터가 경제 전문가 63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1명을 제외한 나머지 전원은 0.25%포인트를 인상하는 ‘베이비 스텝(baby step)’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같은 시기 블룸버그 설문 조사에서도 0.5%포인트 인상을 예상한 경제 전문가는 53명 중 4명밖에 없었다. 라가르드 총재 본인조차 금리 인상 한 달 전인 6월 9일까지도 “7월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방침”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해 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전 세계 언론은 라가르드 총재가 세간의 예상을 깨고 빅 스텝을 단행한 이유로 두 가지를 꼽고 있다. 첫째, 거침없이 치솟는 물가다. 지난 6월 유로존(유럽연합에서 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 회원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8.6%를 기록해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특히 러시아산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라트비아·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따른 여파로 물가가 20% 가까이 폭등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 인상에 소극적인 ECB의 정책 기조에 불만 섞인 목소리가 많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네덜란드 은행 ING의 수석 거시경제 이코노미스트 카스텐 버젠스키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작년 연말부터 이어져 온 ECB의 점진적이고 신중한 금리 인상 정책은 (현 상황에 비춰볼 때) 너무 굼뜨고, 늦은 감이 있다”면서, “금리 정책은 항생제나 마찬가지다. 아픈 건 지금인데 9월에 맞아봤자 아무런 효과가 없다. 적절한 타이밍에 실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둘째, 약세를 이어 가는 유로화 가치 역시 금리 인상 폭을 넓히는 요인으로 꼽힌다. 미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유럽 에너지 위기 등이 맞물리면서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7월 14일 국제 외환 시장에서 유로화 가치는 한때 1유로당 0.9952달러까지 하락했다. 1999년 유로화가 출범한 이래 2000년대 초반을 제외하고 1유로가 1달러를 밑돈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쇼크를 받은 유럽에선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와 달리 금리 인상에 미온적인 ECB가 유로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불거졌다. 연준은 6월 15일, 7월 27일에 각각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75%포인트나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을 잇따라 단행한 바 있다.

라가르드 총재의 긴축은 이 같은 두 가지 위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지만 현재로선 ECB의 금리 인상을 낙관적으로 보는 견해는 드물다. 기준금리 인상이 국가 부채가 많은 남유럽 국가들의 경기 침체와 재정 건전성 악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당장 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등 부채 비율이 높은 국가의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탈리아는 작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151%로, 2010~2012년 재정 위기 당시(122%)를 크게 웃돌고 있다. 그리스는 국가부채가 국가 경제 규모의 두 배(193%)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FT는 물가 상승을 억제하면서도 유럽 경제를 침체시키지 않아야 하는 두 가지 모순적 상황에 직면한 라가르드를 가리켜 “불가능한 상황과 씨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에서 상무부, 농업부, 재무부 등 3개 부처 장관을 역임했으며, 미국 로펌 베이커 맥킨지 최초의 여성 회장, 국제통화기금(IMF) 최초의 여성 총재, ECB 최초 여성 총재 기록을 보유한 라가르드가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는 지적이다. 

한편 연준에 이어 ECB까지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향후 각국이 금리 인상 도미노를 겪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7월 17일 FT 보도에 따르면, 이미 세계 55개국 중앙은행은 지난 4~6월 3개월 동안 금리를 모두 62회에 걸쳐 최소한 0.5%포인트 이상 인상했다. 7월 중에도 벌써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0.5%포인트 이상 올린 횟수는 17회에 달했다. FT는 “세계 각국이 이렇게 큰 폭으로 금리를 계속 인상한 것은 지난 100년 사이 처음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한국은행 역시 7월 13일 사상 최초로 금리를 한꺼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 스텝을 단행한 바 있다.


Plus Point

홀로 마이너스 금리 고수하는 日 구로다, 악재 작용 우려도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이 앞다퉈 기준금리를 끌어올리는 ‘역(逆)환율 전쟁’에 돌입했지만, 일본은 계속 초저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7월 24일 현재 세계 주요국 중 기준금리가 마이너스인 곳은 일본(-0.1%)과 덴마크(-0.1%), 스위스(-0.25%) 등 3개국에 불과하다. 덴마크가 7월 21일, 스위스가 6월 16일 기준금리를 각각 0.5%포인트 올린 ‘빅 스텝’을 단행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 홀로 저금리 노선을 걷고 있는 국가는 일본이 거의 유일하다. 하지만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는 7월 21일 기자회견에서 “금리를 올릴 생각이 전혀 없다. 끈질기게 금융 완화를 계속할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일본의 이 같은 마이너스 금리 기조는 지속적인 엔저(円低) 정책을 통해 장기 침체에 빠진 내수와 수출 경기를 끌어 올리겠다는 의도지만, 일각에선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일본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올해 초 달러당 115엔 수준이었던 엔·달러 환율은 7월 14일엔 139엔까지 오르며 1998년 이후 24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 엔화 약세는 수입 물가를 끌어올리고 인플레이션을 고착화해 무역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이미 올 상반기 일본 무역 적자는 약 75조원 수준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雄) 히토츠바시대(一橋大) 명예교수는 경제 주간지 ‘도요게이자이(東洋經濟)’ 칼럼을 통해 “다른 화폐에 비해 엔화 하락이 너무 두드러진다”면서 “1달러당 엔화 가격이 140엔까지 치솟을 경우,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일본 1인당 GDP를 역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20년 자국 통화 기준의 1인당 GDP를 7월 중순의 환율에 대입하는 방식으로 현재의 한·일을 비교했을 때 한국은 1달러=1316.35원을 대입하면 1인당 GDP가 3만1902달러인 반면, 일본은 1달러=139엔으로 3만2010달러로 한국보다 다소 높은 수준인데, 1달러=140엔이 되는 순간 이것이 역전된다는 것이다. 2012년까지 일본의 1인당 GDP는 한국의 약 두 배에 달했다.

오윤희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