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홀 경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세계 경제 리더들. (사진 오른쪽부터)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라엘 브레이너드연준 부의장, 존 C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로이터연합
‘잭슨홀 경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세계 경제 리더들. (사진 오른쪽부터)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라엘 브레이너드연준 부의장, 존 C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사진 로이터연합


“경기 침체가 오더라도 기준금리 인상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이사벨 슈나벨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이사회 이사)

“중앙은행이 모든 경제적 허점(air pocket)을 해소해 주길 기대할 순 없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낮고 안정적인 상태로 유지하는 걸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아우구스틴 카스텐스 국제결제은행(BIS) 총재)

8월 25일(이하 현지시각)부터 3일간 미국 와이오밍주(州) 잭슨홀에서 열린 ‘잭슨홀 경제 심포지엄(Jackson Hole Economic Symposium)’은 긴축 재정을 부르짖는 매파(hawks)들의 변론장을 방불케 했다.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연은) 주최로 1982년부터 매년 8월에 열리는 연례행사인 이 심포지엄엔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이 대거 참석해 금융 정책을 논의한다. 만년설이 녹지 않는 티턴(Teton)산이 있는 조용한 휴양 도시에서 향후 세계 경제 흐름을 좌지우지할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회의에서 나온 결과는 ‘8월 티턴산의 계시’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세계 금융권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선포된 2020년 이후 열린 첫 대면 회의인 올해 잭슨홀 경제 심포지엄엔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외에도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앤드루 베일리 영란은행 총재,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 전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과 저명한 이코노미스트 150여 명이 참석했다.

회의의 주제는 단연 기준금리 인상이었다. 1982년 이후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직면한 미국이 지난 6월과 7월 잇따라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75%포인트씩 올리는 이른바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과 유로화 가치 하락이라는 이중 난제에 부딪힌 ECB 역시 지난 7월에 2016년 3월부터 7년간 제로(0) 수준으로 유지해 왔던 기준금리를 이례적으로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했다. 연준과 ECB가 단행한 강도 높은 금리 인상 정책은 전 세계에 금리 인상 도미노를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7월 17일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세계 55개국 중앙은행이 지난 4~6월 3개월 동안 금리를 모두 62회에 걸쳐 최소 0.5%포인트 이상 인상했다.

하지만 잭슨홀에 모인 경제 전문가들은 아직도 만족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데 대체로 의견이 일치했다. 특히 파월 연준 의장은 8분 50초 연설 동안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를 무려 45차례나 언급하며 금리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파월 의장은 “가계와 기업의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당분간 큰 폭의 금리 인상을 지속할 것”이라면서,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손에서 벗어날 경우 더 큰 고통이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월 의장은 1970년대 미국이 인플레이션 억제에 실패하는 바람에 1980년대 초 폴 볼커 당시 연준 의장이 초(超)고금리 정책(연 20% 이상 인상)을 단행해야 했던 과거까지 언급하면서 “우리의 목표는 지금 단호하게 행동함으로써 그런 결과를 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직은 (금리 인상을) 멈출 지점이 아니다”라는 말도 했다.

초미의 관심사인 9월 금리 인상 수준에 대해서는 비교적 말을 아꼈지만, “또 한 번 이례적으로 큰 폭의 금리 인상을 할 수 있다”는 지난 7월 기자회견의 발언을 반복하면서 3연속 자이언트 스텝 여지를 열어놨다.

8월 26일 고강도 긴축 정책을 강조하는 파월 의장의 메시지가 전해진 직후,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일제히 급락했다. 다우 지수는 전장 대비 3%, S&P 지수는 3.3%, 나스닥 지수는 3.9%씩 각각 떨어졌다. 특히 다우 지수는 1000포인트 넘게 하락해 지난 5월 이후 석 달 만에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다.

한편 8월 27일 블룸버그통신은 “파월의 연설 이후 하룻밤 사이에 전 세계 억만장자들 재산이 780억달러(약 105조3000억원) 넘게 증발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68억달러(약 9조2900억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55억달러(약 7조5100억원), 래리 페이지 구글 창업자는 50억달러(약 6조8300억원)의 재산 손실을 입었다. 또한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CEO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잃어버린 재산은 각각 27억달러(약 3조6900억원), 22억달러(약 3조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뉴스1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뉴스1

연결 포인트 1
글로벌 금리 인상 압박에 부딪힌 한국
“인플레이션 꺾일 때까지 금리 인상”

“한국은행(한은)이 (한국) 정부에서는 독립했지만 연준으로부터는 완전히 독립한 게 아니다.”

잭슨홀 경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8월 27일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향후 한은의 금리 인상 정책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이는 한은이 앞으로 추가 금리 인상을 할 수 있다는 의도로 읽힌다. 한은은 이미 7월 13일 사상 최초로 금리를 한꺼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 스텝(big step)을 단행한 바 있다.

이 총재는 8월 27일 블룸버그 TV 등 외신과 인터뷰에서도 “만약 물가 상승률이 5% 이상의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한은도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두고 통화 정책을 운용하겠다”고 밝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다시 한번 못 박았다. 그는 미국 정책 금리가 높아져 한·미 금리 격차가 크게 벌어질 경우, 원화 가치가 평가 절하돼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특히 우려했다. 현재 미국 정책 금리는 2.25~2.5% 수준으로, 금리 상단이 우리나라 기준금리(연 2.5%)와 같다. 연준이 올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0.5%포인트 이상 인상할 경우, 미국 금리가 한국 금리보다 높아지는 한·미 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의회에서 증언 중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사진 로이터연합
의회에서 증언 중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사진 로이터연합

연결 포인트 2
파월 저격한 전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연준이 미국 경제 침체에 빠뜨릴 것”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글로벌 경제·금융 전문가들 사이에서 힘을 얻고 있는 반면, 일각에선 무리한 금리 인상이 경제를 침체에 빠뜨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2020년 미 대선 민주당 경선 후보였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8월 28일 CNN과 인터뷰에서 “파월 의장이 미국 경제를 침체로 몰고 가는 것 같아 매우 걱정된다”고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했다. 워런 의원은 “최근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저금리보다 코로나19로 인한 세계 공급망 마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기업의 폭리 때문”이라면서 “금리 인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다. 또 “파월 의장의 정책은 미국 경제를 침체에 빠지게 할 뿐 아니라 대규모 실업을 야기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경기 침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는 사실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역시 지난 6월 CNN에 출연해 “인플레이션을 꺾으려면 연준이 금리 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지만, 이로 인해 내년 미국 경제 성장률은 0.7% 하락하고 실업률은 5%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오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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