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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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왼쪽)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과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렸던 폴 볼커 전 연준 의장. 블룸버그·셔터스톡
제롬 파월(왼쪽)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과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렸던 폴 볼커 전 연준 의장. 사진 블룸버그·셔터스톡
아이라 칼리시딜로이트 투쉬 토머츠리미티드 수석 글로벌이코노미스트 배서칼리지 경제학, 존스홉킨스대 국제경제학 박사
아이라 칼리시딜로이트 투쉬 토머츠리미티드 수석 글로벌이코노미스트 배서칼리지 경제학, 존스홉킨스대 국제경제학 박사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8월 26일 잭슨홀 심포지엄 연설에서 연준이 향후 수개월간 매파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 고강도 금리 인상으로 경기침체라는 대가를 치르게 한 ‘인플레이션 파이터’ 폴 볼커(Paul Volcker) 전 연준 의장의 행적을 성공이라 평가하며, 앞서 10년에 걸친 연준의 정책 실수를 볼커 전 의장이 바로잡았다고 강조했다. 파월 의장은 이번 긴축 사이클을 통해 연준이 빠르게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파월 의장은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금리를 인상할 것이고 높은 수준의 금리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긴축정책 때문에 경제성장률이 장기간 추세를 밑돌 수 있고 고용시장도 취약해질 수 있다면서도, “불행히도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또, “물가 안정을 회복하지 못하면 훨씬 큰 고통을 겪어야 할 것”이라며 “강력하고 신속한 조치로 수요를 끌어내려 공급과 균형을 이루도록 하고 기대인플레이션을 안착시킬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특히 그는 “지금처럼 가파른 물가 상승이 장기화하면 기대인플레이션이 고착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투자자들은 연준이 경기침체를 유발하지 않기 위해 신중한 통화정책을 구사할 것이라 믿었고, 이 덕분에 주가가 상승 흐름을 유지했다. 하지만 파월 의장이 매파 본색을 드러내자, 연준이 경기침체를 신중히 피하면서 인플레이션만을 조준할 것이라는 믿음이 깨졌다. 파월 의장은 “너무 이른 완화는 금물이라는 과거의 교훈”을 강조했다.

이로 인해 현재 금융시장 투자자들은 연준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방기금금리(FFR)를 0.75%포인트 인상하는 이른바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을 또 밟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연준의 통화정책이 거시지표 결과에 따를 것이라는 언급 외에는 금리 향방에 대한 단서를 주지 않았다. 그는 단지 “긴축 통화정책을 강화하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긴축 속도를 늦추는 것이 적절해질 수 있다”는 모호한 발언만을 남겼다. 결국 파월 의장 연설의 핵심은 “물가상승률을 2% 수준까지 되돌리기에 충분한 수준의 제약적 정책 기조를 의도적으로 유지할 것”이라는 발언으로 요약된다. 연준은 이를 위한 수단은 얼마든지 가지고 있다. 문제는 경기침체를 유발하지 않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느냐다. 과거 연준의 행적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 파월 의장의 연설에서 ‘인플레이션’이 총 45번이나 등장했으나, ‘경기침체’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파월 의장은 1년 전만 해도 인플레이션율 급등을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했다. 당시 그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에 따른 공급망 차질로 인해 인플레이션율이 급등했다며, 시간이 지나면 물가가 알아서 떨어질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파월 의장의 태도가 이처럼 급변한 것일까. 그사이 몇 가지 예상치 못했던 중대 사태가 발생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사태로 원유를 비롯해 국제 원자재 가격이 치솟았고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심화하자 기대인플레이션도 치솟았으며, 고용시장은 이례적으로 경색됐는데 우크라이나 사태와 중국의 제로 코로나 봉쇄정책 등으로 공급망 차질이 지속되자 공급이 도저히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쯤 되니 연준의 긴축 행보가 이미 한발 늦은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아마도 그러한 지적이 맞을 것이다. 어떤 사태가 한창 벌어질 당시에는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지만, 지나고 보면 진상이 분명해지는 법이다. 게다가 인플레이션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로존, 영국, 캐나다 등 주요국에서 인플레이션율이 뛰고 있고, 이들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예기치 못한 일련의 사태들에 뒤통수를 세차게 맞았다. 결국 지금의 인플레이션 사태는 팬데믹과 전쟁이라는 예기치 못한 충격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파월 의장이 매파 기조로 가득 찬 연설을 발표한 날 연준이 국내총생산(GDP)보다도 중시하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표가 발표됐다. 7월 PCE 지표가 에너지 가격 하락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 완화뿐 아니라 근원물가 상승세 둔화도 가리키자 드디어 물가가 잡히는 것 아니냐는 시장의 기대가 고조됐으나, 파월 의장은 지표 결과가 좋은 소식이라면서도 “단 한 차례 월간 지표 개선만으로는 인플레이션이 잡혔다고 절대 확신할 수 없다”며 이러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미국의 7월 PCE 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6.3 % 상승했다. 이는 6월 상승률 6.8%보다 낮아진 것이며, 1월 이후 최저치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정점을 찍고 하락세로 접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세부적으로 에너지 가격이 전달 대비 4.8% 급락하며 전체 지수를 끌어내렸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도 전년 대비 4.6% 오르는 데 그치며 6월보다 상승세가 둔화했고, 역시 1월 이후 최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런 결과는 에너지와 식품 가격 변동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고 수그러들고 있다는 관측에 무게를 싣는다. 식품 가격만 예외적으로 각각 전년 대비 11.9%, 전달 대비 1.3%의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재화 가격이 전달 대비 0.4% 급락하며, 1년 전과 비교해 추세가 완전히 역전됐다. 전달 대비 서비스 가격 상승률은 0.1%에 그쳤다.

PCE 물가지수는 미국 상무부가 매달 발표하는 소비지출 패턴 보고서의 일부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3분기에 접어들면서 소비지출이 완만한 속도로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기침체가 이미 시작된 것 아니냐는 우려를 일축하는 소식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7월 실질 가계 가처분소득은 전달 대비 0.3% 늘었다. 임금은 언제나 물가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오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실질 소득이 늘어난 것은 그만큼 고용 증가세가 강력하다는 방증이다.

한편 7월 실질 개인소비지출은 전달 대비 0.2% 증가했으며, 가계 저축률은 5% 수준을 유지했다. 이 가운데 실질 가처분소득은 전년 대비 3.7% 줄었음에도, 실질 소비지출이 2.2% 늘어난 점이 눈길을 끈다. 실질 소비지출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내구재 지출은 전달 대비 1.5% 증가한 반면, 비내구재 지출은 0.5% 줄었다. 서비스 지출은 0.2% 늘었다.

상무부의 이런 보고서에는 혼재된 신호가 섞여 있다. 인플레이션 수치가 점차 안정되면서도 소비지출이 다른 경제 부문에 비해 월등한 양상을 유지하고 있다. 소비지출이 강력하게 유지되는 일부 원인은 휘발유 가격이 하락하면서 다른 품목에 지출할 여력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미국 컨퍼런스보드의 8월 소비자신뢰지수가 개선된 이유가 바로 휘발유 가격 하락 덕분이다. 이러한 상황은 연준에 오히려 고민거리를 안겨줄 수 있다. 경제가 강력해질수록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의 연설과 미국 물가 지표가 발표된 8월 26일 당일에 금융시장은 주가 급락으로 반응했다. 또한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으나 단기물 국채 수익률이 훨씬 가파르게 올라 수익률곡선 역전 현상이 심화했다. 다시 말해 금융 시장의 반응은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졌다는 신호와 더불어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조만간 통제될 것이라는 기대를 함께 나타낸 것이다.

아이라 칼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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