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로이터연합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로이터연합

중국이 ‘제로 코로나’로 불렸던, 세상에서 가장 엄혹한 코로나19 봉쇄 조치를 대폭 완화하고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발발한 지 3년 만에 사실상 ‘위드 코로나(With Corona·단계적 일상 회복)’ 체제로 급선회했다. 

중국은 12월 7일 기존 방역 정책을 대폭 완화하는 ‘10가지 방역 추가 최적화 조치에 대한 통지’를 발표했다. PCR(유전자 증폭) 검사, 확진자 시설 격리, 주거지 장기 봉쇄, 지역 간 이동 금지 등 그간 중국인들이 불만을 품었던 주요 제한 조치 대부분이 해제됐다. 이를 토대로 중국은 위드 코로나 단계를 향해 급진전하게 될 전망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1년여 전부터 위드 코로나를 선포한 반면, 중국은 최근까지 감염자를 0명으로 유지하겠다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나 홀로 고수해 왔다. 올해 4월 무렵부터는 수도 베이징을 비롯해 인구 2600만 명 상하이, 광저우·쑤저우·푸양 등에 대한 봉쇄를 단행해 외국 기업과 공장들이 연쇄적으로 중국을 떠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고집스럽게 유지해 왔던 기존 방역 조치를 폐지한 것은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백지(白紙) 시위’ 탓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백지 시위’ 확산에 시진핑 출구전략 가동

11월 말부터 상하이와 베이징 등 대도시에선 수백 명의 시민이 백지를 들고 거리로 몰려나왔다. 정부를 비판하는 피켓을 들면 경찰(공안)이 곧바로 압수해 버리기 때문이다. 보는 이들이 저마다 백지에 적힌 문구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한마디 말보다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도 있다. 로이터 등에 따르면, 백지를 들고나온 군중은 처음엔 “강력한 방역 정책을 풀어달라” “PCR 검사 대신 자유를 달라”고 외쳤지만, 시간이 갈수록 경찰의 제압에도 불구하고 “국민에게 자유를 달라” “시진핑(習近平)은 퇴진하라”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온라인 역시 정부 비판의 장(場)이 된 지 오래다. 중국 네티즌들은 정부의 온라인 검열을 피하기 위해 검열 대상에 오른 단어와 발음은 비슷하지만, 뜻은 전혀 다른 어휘를 써서 독재를 비판하고 있다. 시진핑과 영어 이니셜(XJP)이 같은 중국어 단어 ‘바나나 껍질(香蕉皮)’이나 ‘하야’를 뜻하는 ‘샤타이(下台)’와 발음이 유사한 ‘새우 이끼(虾苔·샤타이)’를 써서 눈속임하는 식이다. 

11월 29일 국무원 합동방역통제기구는 기자 회견을 열어 “대중의 지적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풀 것은 다 풀어야 한다”고 한결 누그러진 입장을 보였다. 뒤이어 12월 2일엔 시진핑 주석이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상임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봉쇄 규정을 완화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 보도가 나온 지 닷새 뒤 중국 정부는 기존 방역 조치 완화를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백지 시위가 발발한 지 약 열흘 만이다. 결국 정부가 국민의 반발 앞에 한 발짝 물러선 것이다.


백지를 들고 나와 시위를 벌이는 중국인.시진핑 주석이 ‘제로 코로나’ 완화 조치에 나선 것은국민의 거센 반발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사진 로이터연합
백지를 들고 나와 시위를 벌이는 중국인.시진핑 주석이 ‘제로 코로나’ 완화 조치에 나선 것은국민의 거센 반발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사진 로이터연합

14억 중국에 최악의 코로나19 유행 올까

중국이 극단적 방역 조치를 포기했지만, 정말 큰 문제는 지금부터다. BBC는 “앞으로 진짜 큰 위험(pitfalls)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선 급증할 확진자에 대한 대처다. 취약한 의료시스템의 붕괴가 우려된다. 대부분 선진국이 높은 백신 접종률과 위드 코로나 정책으로 집단 면역력을 어느 정도 달성한 것과 달리, 중국은 14억 인구 대부분이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11월 중순 현재 80세 이상 고위험층 백신 2차 접종률도 65%에 불과하다. 핑즈젠 전 중국질병예방통제센터 부주임은 12월 6일 칭화대에서 열린 ‘오미크론에 대한 이성적인 대응’ 주제 보고회에 참석해 “방역 정책 조정으로 (14억 인구 중국의) 감염률이 60% 안팎에 이르고, 최종적으로 80~90%가 모두 감염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중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실제로 벌써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위챗 단톡방에는 제로 코로나가 풀린 뒤 주변 사람들이 코로나19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해열제와 기침약은 약국마다 품귀 현상을 보이는 실정이다. 관영 환구시보는 “한 약품 판매사이트에서 감기약, 소염제, 해열제 판매량이 최근 20배 가깝게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당국은 긴급하게 코로나19 백신 접종률 높이기에 나섰다. 홍콩 명보는 “지난 이틀간 중국 회사 네 곳이 자체 개발한 백신이 긴급 사용 승인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산 백신이 얼마나 예방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현재 중국은 서방 국가가 생산한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 사용을 승인하지 않고 자국 백신의 접종만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시노팜, 시노백 등 중국산 백신의 감염이나 중증 예방에 대한 효과는 충분히 검증되지 않아 전문가들 사이에서 효과가 거의 없는 ‘물백신’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시 주석, 경제 회복으로 리더십 회복할까

대규모 코로나19 확산 외에도 시 주석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또 하나 있다. 그가 사회주의 체제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내세운 봉쇄식 방역 정책인 제로 코로나가 국민의 반발로 폐기됨으로써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이다. 워싱턴포스트는 “그렇지 않아도 관례를 깨고 3연임을 밀어붙여 독재라는 비판을 듣는 시 주석에게 정책 실패는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을 안길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위상에 타격을 입은 시 주석이 이를 만회하기 위해 경제 성장에 박차를 가하고자 할 것이라 예측한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11월 중국의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8.7% 줄어 2020년 2월 이후 최악이고, 중국의 올해 1~3분기 경제성장률은 3%대에 그쳐 목표치(5.5%)에 크게 못 미친다. 중국인은 방역 조치 완화로 공장이 정상 가동되고 중국을 떠났던 외국 기업들이 돌아오면 이 같은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리서치업체 나틱시스의 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앨리샤 가르시아 에레로는 블룸버그에 “중국은 올해 정부가 목표로 한 성장률(5.5%)의 절반밖에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코노미스트 역시 “중국이 지금 당장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기하더라도 긍정적인 효과는 2024년에나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Plus Point

사망 이후 반사 이익 얻은 장쩌민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 장례식. 사진 CCTV 캡처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 장례식. 사진 CCTV 캡처

11월 30일 사망한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국민적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장 전 주석 사망 소식을 전한 중국중앙TV(CCTV) 소셜미디어 웨이보 계정엔 순식간에 100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고, 온라인에선 그를 희화화하면서 그리워하는 두꺼비 숭배(膜蛤) 놀이가 밈(meme·인터넷 유행 비유전적 문화 요소)처럼 유행하고 있다.

장 전 주석은 커다란 입과 두꺼운 뿔테 안경 때문에 ‘두꺼비’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데, 중국 네티즌들은 그가 공식 석상에서 난데없이 빗을 꺼내 들고 머리를 매만지는 모습이나 두꺼비 같은 자세로 수영을 즐기는 모습 등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소환해 온라인상에서 유포시키며 열광하고 있다. 이 같은 사후(死後) 인기는 시진핑 정권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각에선 장 전 주석의 사망이 백지 시위를 자극할 수도 있다고 평가한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 역시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 사망에 의해 촉발됐다. 뉴욕타임스(NYT)는 “현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는 시기에 장 전 주석의 죽음은 시 주석이 해결해야 할 또 다른 딜레마”라고 분석했다.

오윤희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