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 전쟁이 격화하고 있다. 미국이 네덜란드와 일본 등 연합 전선을 구축해 대중(對中) 반도체 포위망을 조이는 가운데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로 이에 맞서고 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미국 정부가 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에 협력을 요청했다고 12월 11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12월 9일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일본 경제산업상과 전화 회담에서 중국에 대한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에 동참할 것을 요청했다. 산케이신문은 “일본이 높은 기술력을 가진 반도체 제조 장비 등의 수출을 규제해 중국의 첨단 반도체 개발을 늦추려는 것이 (미국의) 의도”라고 전했다. 이어 블룸버그도 12월 12일 일본과 네덜란드가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 제한 조치에 동참하기로 했으며, 향후 몇 주 안에 관련 조치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일본과 네덜란드는 미국이 올해 10월 발표한 중국 반도체 수출 제한 조치 중 일부를 채택할 전망이다. 

특히 양국은 14㎚(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상 첨단 반도체 제품을 제조할 수 있는 장비 수출을 금지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며, 몇 주 이내에 관련 내용을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0월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14㎚ 이하(낸드는 128단 이상) 첨단 반도체 제조용 기술과 장비, 인력의 대중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14㎚ 기술은 대만 TSMC와 삼성전자가 이미 2015년 상용화한 기술이다. 

그러나 이 규제가 중국에 미칠 영향은 크다. 14㎚ 기술은 중국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SMIC(中芯國際·중신궈지)의 핵심 기술이기 때문이다. 미국, 네덜란드, 일본에는 세계 5대 반도체 장비 업체가 있다. 이들이 미국 제재에 동참해 중국에 관련 장비를 제공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미국, 일본, 네덜란드가 대중국 제재에 협력하면 중국이 첨단 반도체를 제조하는 데 필요한 장비를 구입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통로가 차단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美, 日·네덜란드와 반도체 동맹

미국 백악관은 12월 12일 일본, 네덜란드 등과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우리는 반도체 기술 문제에 깊은 이해(interest)가 있는 국가를 비롯해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우리의 맞춤형 제한 조치의 이유와 내용 등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중국 규제 공조 범위를 넓혀가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설리번 보좌관은 “일본, 네덜란드를 비롯해 다른 나라와도 그런 대화를 했다”며 “(중국에 관한) 우려를 공유하는 광범위한 국가들과 진행하고 있는 논의에 만족하고 있다. 이들 국가와 광범위한 (정책) 일치를 이루고 싶다”고 했다. 이번 미국, 일본, 네덜란드 간 반도체 동맹이 미국, 한국, 대만, 일본이 참여하는 식으로 추진되고 있는 칩 4 동맹과 어떻게 연계될지는 명확지 않다. 

중국은 WTO 제소 카드로 맞서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12월 12일 성명을 내고 WTO 분쟁 해결 절차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중국 상무부는 “WTO 제소는 합법적인 방식으로 중국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며, 우리의 합법적인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수단”이라며 “미국은 반도체의 정상적인 국제 무역을 저해해 세계 공급망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 전형적인 보호주의 수법”이라고 했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월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월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연결 포인트 1
美·中 고위급 협의, 북한·러·대만
문제 논의…“솔직·건설적”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이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양국은 고위급 회담을 했다. 11월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주요 20개국(G20)을 계기로 개최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첫 대면 정상회담 이후 약 한 달 만이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2월 12일 정례 브리핑에서 셰펑 외교부 부부장(차관)이 12월 11∼12일 허베이성 랑팡에서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로라 로젠버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중국·대만담당 선임국장과 만났다고 밝혔다. 

양측은 지난 11월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논의한 공동 인식의 이행 방안, 대만 등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와 관련한 처리 문제, 양측 간 고위급 교류 및 협력 방안, 공동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국제 및 지역 문제 등에 관해 논의했다고 왕 대변인은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회동이 솔직하고 깊이 있었고 건설적이었으며, 양측은 앞으로 소통을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고 부연했다.

같은 날 미 CNN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한 고위 당국자는 이번 회담에서 양측이 한반도 안보 관련 북한의 위협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며 “솔직하고 실질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그는 “양국이 개방적인 소통 라인을 유지하고 경쟁을 책임감 있게 관리하는 것과 경쟁이 갈등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박진(오른쪽) 외교부 장관이 12월 12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화상 외교 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 외교부
박진(오른쪽) 외교부 장관이 12월 12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화상 외교 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 외교부

연결 포인트 2
韓·中 외교 장관 화상 회담
왕이 “미국은 규칙 파괴자”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12월 12일 화상으로 외교 장관 회담을 열고, 북한 등 한반도 문제와 지속적인 소통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외교부에 따르면 박 장관과 왕 외교부장은 이날 오후 약 1시간 15분 동안 가진 화상 회담에서 한·중 관계와 한반도 문제, 지역 및 국제 정세 등을 폭넓게 논의했다. 두 장관은 지난 11월 G20 정상회의 당시 개최된 윤석열 대통령과 시 주석 간 정상회담이 상호존중·호혜·공동이익에 입각한 새로운 한·중 협력 시대를 여는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고 평가하며, 양 정상이 합의한 양국 관계 발전 방향에 따라 후속 조치를 원만하게 이행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이어 양 장관은 △고위급 교류 추진 △공급망 소통 확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투자 공식협상의 조속한 재개 △항공편 증편 △인적교류 확대 및 문화 콘텐츠 교류 활성화 등에 대해 논의했다. 

아울러 북한의 잇따른 탄도미사일 도발과 관련한 한반도 문제도 논의했다. 박 장관은 중국 측이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 로드맵 ‘담대한 구상’ 등 북한과 대화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에 왕 외교부장은 “앞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해 건설적인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왕 외교부장은 미국의 반도체 규제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과 관련해서는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미국은 국제 규칙 건설자가 아닌 파괴자임을 재차 입증했다”며 “각국이 응당 나서 세계화에 역행하는 낡은 사고와 일방적 패권 행태에 맞서 진정한 다자주의를 수호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이선목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