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低)출산과 ‘국경 없는 유럽’이 유럽의 인구 지도를 바꿔놓으면서 유럽 노동시장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지금 유럽이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저출산이다. 유럽 각국의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다. 이미 많은 유럽 국가들의 노령 인구가 젊은층 인구를 넘어섰다.

저출산이 심각한 것은 이로 인한 경제의 장기적 위축이 우려되기 때문.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현재와 같은 저출산 위기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2030년에 유럽의 노동인구가 2000만 명 부족할 것으로 예상한다.

실제로 동유럽 국가들 중에 체코, 슬로베니아, 라트비아, 폴란드의 출산율(가임 여성 1인당 자녀수)은 1.2명에 불과하다. 서유럽 국가들 중에도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이 10년간 1.3명 이하의 저출산에서 헤매고 있다. 체코의 경우 현재와 같은 저출산이 계속되면 앞으로 40년 내에 전체 인구가 1000만 명에서 800만 명으로 20%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동유럽 국가들은 과거 사회주의 시절, 자녀를 가진 젊은 부부에게 아파트를 우선 배정하는 등의 혜택을 주었다. 탁아소를 국가가 운영하면서 육아 부담도 덜어주었다. 하지만 구체제가 무너지면서 혜택도 사라졌다. 살기 힘들어진 젊은 부부들이 점점 아이를 덜 낳는 것이다.

유럽의 한 보고서는 “유럽의 저출산이 경제 통합과 사회 통합, 완전 고용 등 EU의 목표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유럽 각국은 저출산으로 인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등 적극적인 이민 정책을 펴고 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따르면, 스페인, 체코, 캐나다, 싱가포르 등이 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 감소를 보완하기 위해 이민 관련법을 손질하거나 신설하는 등 외국인 노동자를 적극 끌어들이는 정책을 펴고 있다.

유럽에서는 스페인이 대표적이다. 스페인은 인구 4400만 명에 여성 1명당 출산율이 1.3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민 인구가 적극적으로 유입된 덕에 총인구가 감소하지 않고 다소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스페인은 지난 10년간의 경제성장에 힘입어 유럽에서 가장 이민자가 많이 몰려드는 ‘이민 대국’이 됐다. 지난해 스페인에 들어온 이민자는 65만 명, 지난 6년간의 이민자 숫자는 290만 명에 달했다. 지난 5년간 EU(유럽연합) 전체에서 창출된 일자리의 절반이 스페인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이 일자리가 거대한 이민 인구를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됐다.

급증하는 이민 인구는 스페인 전체의 인구 지도도 바꿔놓았다. 스페인 인구에서 이민자 비중은 8.7%(약 370만 명). 남미 출신(120만 명), 북아프리카 모로코 출신(53만5000명), 영국 출신(27만4000명) 등 국적도 다양하다.

지난 10년간 스페인 경제를 이끌어온 주축 산업이 건설 및 관광인데, 외국 이민자를 빼놓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브라질, 에콰도르 같은 남미 국가나 북아프리카 모로코, 동유럽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은 건설 현장이나 호텔, 음식점, 옷가게 등의 서비스 업종에서 주로 일한다.

지난해 11월 이민 2세들의 소요 사태로 몸살을 겪은 프랑스도 이민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프랑스 통계청(INSEE)에 따르면 이민 인구는 490만 명으로, 프랑스 인구의 8.1%를 차지한다. 프랑스 이민 인구는 1990년에 420만 명, 1999년에 430만 명 수준을 유지했으나 최근 몇 년 새 급증, 500만 명에 육박하면서 유럽에서 이민 인구 비중이 높은 대표적인 나라가 됐다.

프랑스에 이민 온 사람의 35%는 EU 국가 출신이다. 그 다음으로는 알제리와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출신(31%), 아시아 및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29%) 순이다. 특히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에서 이민 오는 숫자가 1999년과 2004년 사이 급증했다. 프랑스 통계청은 “특히 전통적으로 프랑스에 이민을 많이 오던 영국이나 포르투갈 사람의 이민은 점점 줄어들고, 알제리나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에서 유입되는 인구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동유럽 젊은이 서유럽으로 ‘대이동’

영국도 이민 인구가 최근 급증했다. 특히 2004년 5월 EU 회원국이 15개국에서 25개국으로 확대되면서 가장 많은 동구권 이민자를 받아들였다. 영국 내무부는 2년 만에 60만 명에 달하는 동구권 이민자가 일자리를 찾아 영국으로 입국했다고 집계했다.

2004년 5월부터 올해 6월 말까지 영국에서의 취업을 신청한 동구권 이민자 숫자는 42만7085명. 여기에 따로 취업 등록을 하지 않은 자영업자 20만 명을 추가하면, 2년 동안 영국에 온 동구권 출신이 60만 명에 달하는 것이다. 특히 폴란드 사람들이 대거 영국으로 몰려왔다. 동구권 취업 신청자 42만7085명 가운데 폴란드 사람이 62%(약 26만4000명)를 차지한다. 리투아니아 출신(5만535명)이 그 뒤를 잇는다.

토니 맥널티 내무부 이민 담당 차관은 “이주 노동자들이 영국인들만으로 충당할 수 없는 기술과 노동력의 공백을 채워줘 영국 경제에 기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이민자를 받아들여 저출산 등으로 인한 노동력의 공백을 메워가는 서유럽 국가들과는 정반대로, 동유럽 국가들은 저출산과 이민 인구 유출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브뤼셀의 비영리단체 유럽시민행동서비스(ECAS)에 따르면, 폴란드는 EU 가입 2년 만에 전체 노동력의 5%에 달하는 110만 명을 서유럽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보냈다. 주로 25~34세의 폴란드 젊은이들이 독일과 영국 등지로 몰려갔다. 최근 폴란드의 한 여론조사에서는 18~24세 사이의 젊은이들 중에 절반가량이 “서유럽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파장이 있다. 지난 7월 폴란드 실업률이 5년 반 만에 최저치인 15.7%로 떨어졌는데, 이는 국내 호황으로 일자리가 많이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대규모 이민의 결과다.

폴란드의 임금은 서유럽의 20% 수준에 그친다. 임금 격차 때문에 서유럽에 이주한 폴란드 근로자들은 자신의 학력에 못 미치는 일자리도 쉽게 받아들이고,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하지만 일부 인구학자들은 이민 인구 유입이 유럽의 인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건 사회 통합이다. 지난해 11월 프랑스에서 벌어진 이슬람 및 아프리카 이민 2세들의 소요 사태가 단적인 예. 스페인은 언어와 문화적 공통점을 가진 라틴아메리카 출신 이민자에게는 문을 활짝 열면서도 최근 아프리카 대륙에서 건너오는 불법 이민은 철저하게 막고 있다.

이민자들이 유럽 국가의 저임금 근로자층을 형성하면서 경제적으로는 도움 되지만 범죄나 주택 문제 등이 심각해지는 등 사회적 비용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체코, 이탈리아, 불가리아 등은 이민을 적극 받아들이는 정책에 대해 내부 반발이 심하다. 체코의 경우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이 심해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정책이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동안 동유럽 출신을 적극 받아들인 영국도 서서히 제한 조치를 취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동구권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영국의 복지제도와 노동조건이 악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터져 나오기 때문. 이 때문에 내년에 EU에 가입하는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 대해서는 영국 내 취업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강경희 조선일보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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