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의 러시아 진출이 본격화하고 있다.   

LG전자가 지난 9월5일 국내 전자업체 최초로 가전제품 생산 공장을 준공한 데 이어 오는 12월 에는 롯데백화점이 모스크바 시내 한복판인 아르바트가(街)에 들어설 예정이다.

지난해 9월 한국 기업으로서 처음으로 한국야쿠르트가 모스크바 인근 교외 라멘스코에지역에 도시락라면 생산 공장을 완공한 뒤 지난 8월 오리온 초코파이 생산 공장 완공에 이어 지난 1년 새 3개의 국내 기업이 직접 투자한 공장이 가동됐다.

그동안 우리 기업의 러시아 진출이 실행된 건 없이 소문만 무성했던 것과 비교하면 발 빠른 진척이다. 러시아 투자는 우리 기업뿐만 아니라 다국적기업 등에도 위험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러시아 투자=마피아 투자 식(式)으로 인식돼 왔던 게 사실이었다. 이 때문에 러시아에 진출한 기업들은 그야말로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위험한 투자를 강행해 왔다. 더구나 2000년대 전후까지 러시아 투자는 한마디로 고위험을 감안한 고수익 장출 모델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최근 수 년 동안 국제적으로 고유가(高油價) 체제가 계속되면서 러시아가 국내 경제 안정을 이뤄내자 국제 투자가들의 인식이 달라졌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로 대변되는 전자제품과 중소기업의 다양한 제품들, 그리고 식품까지 다양한 한국 상품들의 러시아 내 수요가 증가하면서 국내 업체 역시 물류비용과 관세 장벽을 피하기 위해 현지 투자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반전됐다.

LG 전자는 국내 대기업으로 가장 빠른 행보를 했다. 모스크바시 서쪽으로 72km 지점인 루자지역에 디지털TV, 오디오, 세탁기, 냉장고 등 4가지 제품을 생산하는 라인을 설치했다. 투자액수는 1억5000만달러. 15만 평에 제품생산동 2개, 부품생산동 2개를 갖춰 한국의 LG전자 창원 2공장 규모를 갖췄다. 철판을 생산하는 스타리온 등 6개 부품 제조업체도 공장단지에 함께 입주해 직접 부품 조달을 받고 있다. 지난해 4월 착공 후 1년 4개월 만에 완공된 것은 레드 테이프(불필요한 규제)와 까다로운 각종 인허가 과정을 거쳐야 하는 러시아 상황에서 이례적이며 기적과도 같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공장 설립은 러시아 전자업계를 양분하고 있는 삼성전자에게 상당한 부담을 줄 전망이다. 삼성전자 역시 러시아 내 공장 건설을 두고 고민 중이다. LG전자는 러시아 시장에서 TV, 오디오, 에어컨, 청소기, 전자레인지, 비디오, DVD, 광스토리지 등 8개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날 준공식에는 구본무 LG그룹 회장,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그룹 총수들이 총출동, 러시아 공장에 대한 기대를 반영했다. 이날 주목할 만한 것은 러시아 측의 반응이었다. 러시아 경제계 수장으로 통하는 게르만 그레프 경제개발통상부 장관이 현장에 모습을 보였고, 보리스 그로모프 모스크바 주지사도 자리에 참석해 LG전자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구 회장은 “LG 브랜드가 러시아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더욱 분발해 달라”고 당부했고,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은 "이번 공장 준공을 계기로 러시아 국민기업 LG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최측근으로 경제통인 그레프 장관은 “LG 공장 준공으로 러시아에 1000여 개의 일자리가 생겼다”며 “러시아의 정보기술(IT)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레프 장관이 이날 행사에 참가한 것은 푸틴 대통령의 의지로 볼 수 있다. 지난 2004년 러시아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푸틴 대통령은 한국 기업의 투자를 가장 강조했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한국 기업이 러시아에서 장사는 잘 하지만 투자를 않는다’고 꼬집었었다. 물론 한국에만 투자를 강조한 것은 아니었지만 푸틴 대통령은 선진 국가에 대해 끊임없이 투자외교를 하면서 대규모 투자행사에 자신이 참석하거나 경제 관료를 참석시키며 관심을 보였다.

대 러시아 직접투자 계속 늘어날 전망

LG전자는 올 상반기 급격한 매출 감소를 보여 온 러시아 시장에서 대반전 모색에 나섰다. 러시아 전자제품 시장은 올해 유례없는 불황을 맞고 있다. 지난 1998년 러시아 경제위기 이후 처음으로 매출이 감소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사상 최대의 위기로 표현하고 있다. 오일달러 유입으로 경제 활황 상태인 러시아에서 도무지 믿기지 않는 현상이 발생한 데 대해 모두 놀라움을 나타내고 있다. 러시아 전자제품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비상사태에 직면했다. 양사는 러시아 진출 이후 평균 45% 매출 성장을 달성해왔다. 지난 2002~2003년 사이에는 전년 대비 무려 70%에 이르는 매출신장세를 이끌며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전 세계 매출 규모에서도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었다. 하지만 올 상반기 양사 모두 지난해 비해 매출액이 약 10% 이상 추락하면서 위기의식에 휩싸여 있다. 물론 러시아에 진출한 외국 기업 모두가 마찬가지라지만 양사 모두 예상을 뒤엎는 매출로 충격과 고민에 빠진 것이 사실이다. LG전자가 이번 공장 완공을 반전의 계기로 삼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오리온 역시 초코파이를 내세워 한국 제과업계 대표로 극동에 진출한 지 13년 만에 공장을 완공, 러시아 공략에 나섰다. 오리온은 지난 8월24일 모스크바에서 170㎞ 떨어진 트베리시(市)에 현지 투자 공장(2만㎡)을 완공, 직접 생산에 나섰다. 행사에는 담철곤 회장과 주병식 해외담당 부사장 등 20여 명의 중역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 공장에서 초코파이와 스넥류를 연 7000만달러 이상 생산할 예정이다.

김정수 오리온 러시아법인장은 “현지 공장 가동은 맛의 현지화와 신선도 등 품질의 최적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며 “장기적으로 독립국가연합(CIS) 지역과 동유럽 진출을 위한 세계화 기지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리온의 해외공장은 중국에 이어 두 번째다. 현재 생산직 직원은 500명 수준이지만 내년 공장을 확장하면 1500명이 근무하게 된다. 현지 공장 설립은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이용한 물류비용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동안 초코파이 96개들이 1박스당 물류비용이 1달러나 지출돼 수익 창출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현지 공장 가동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오는 12월 완공 예정인 롯데센터도 한국의 대러시아 투자를 이끄는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점은 아시아 최초로 서양권에 진출하는 첫 경우로, 연면적 4만6000평 규모이며 1단계 공사로 완성되는 백화점은 지하 4층에서 지상 7층까지 식품, 잡화, 의류, 가전 매장이 들어서며, 8~21층은 오피스로 운용할 예정이다.  롯데 측은 오는 2008년 2단계 호텔 공사를 마무리할 때까지 총 4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앞으로도 국내 기업의 러시아 투자는 계속될 전망이다. 모스크바 중소기업협회(강대권 회장)에는 한국 기업으로부터 투자 여부를 묻는 문의전화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병화 주러시아 한국 대사관 경제공사는 “러시아의 국제적인 신뢰도가 높아지면서 해외 기업의 투자가 지속 유입되고 있다”며 “한국 기업의 경우, 투자 포화 상태인 중국의 대체지로 러시아가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공사는 한국 기업들의 투자 전망은 밝다고 말했다. 또 “WTO(세계무역기구) 가입 문제가 가시화하면서 러시아의 법적 제도적 환경이 정비되고 투명해질 것으로 전망돼 여건이 호전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LG전자와 국내 기업의 러시아 내 공장 완공은 경쟁사들에 한 발 앞선 대규모 현지 생산기지를 구축함으로써 시장 선점효과를 누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정병선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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