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욱 고은법률사무소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시험 43회,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허욱
고은법률사무소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시험 43회,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2021년 2월 2일 중국 공산당 중앙 사무처와 국무원 사무처는 ‘높은 수준의 시장 시스템 건설 행동 방안(建設高標準市場體系行動方案)’을 발표했다. 올해부터 시작되는 ‘제14차 국민 경제와 사회 발전 5개년 계획’ 기간 에 좀 더 개방되고, 질서 있고, 경쟁과 제도가 완비된, 높은 수준의 시장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 이 행동 방안의 주된 목표다.

계획경제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시장의 위상을 꾸준히 격상시켜 왔다. 1993년 11월 열린 중국 공산당 제14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서는 시장경제 체제 건립에 관한 결정을 통해 시장이 국가의 거시적인 조정하에서 자원 분배의 ‘기초적인 작용’ 기능을 담당하도록 했고, 2013년 11월에 개최된 제18기 3중전회에서는 개혁의 전면 심화에 관한 결정을 통해 현대 시장 시스템의 개선을 가속화하고, 시장이 자원 배치의 ‘결정적 작용’을 하도록 했다.

시장이 경제에서 결정적 작용을 하려면 생산 요소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돼야 한다. 중국은 2020년 3월 30일 ‘한층 개선된 요소 시장화 배치 체제 기제의 구축에 관한 의견(關于构建更加完善的要素市场化配置體制機制的意見)’을 통해 토지·자본·노동 등 전통적인 생산 3요소 외에 ‘데이터(数据)’를 새로운 생산 요소의 하나로 규정했다.

올 2월 초 공포된 행동 방안에서도 중국은 데이터 요소 시장을 더 신속하게 육성하고, 새로운 데이터 공유에 관한 책임 리스트를 내놓으며, 지역·부문 간 데이터 교환을 강화하도록 했다. 또 데이터 자원의 교환·유통과 역외 전송, 재산권 등에 대한 기초 제도와 표준 규범을 수립하고, 관련 영역에서 국제 규칙과 표준 제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했다. 향후 생산요소로서 데이터를 수집·이용·거래하는 분야는 중국에서 시장이 어떻게 경제 시스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중국이 이렇게 국내 시장의 체제 정비를 강조하는 것은 녹록지 않은 국내외 현실의 방증이기도 하다. 내부적으로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GDP(국내총생산) 성장이 지방정부의 가장 중요한 실적 지표가 돼 버린 상황에서 지방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생산요소 시장이 왜곡되고 있다는 문제 인식이 작용했다. 외부적으로는 미국에서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중국과 미국 관계가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내수 시장 주도 체제와 외부 경제 간 조화를 의미하는 ‘쌍순환(雙循環)’, 소비 수요와 투자 수요, ‘메이드 인 차이나’에 대한 외국의 수요 확대 등을 강조하는 ‘수요 측 개혁(需求側改革)’과 같은 최근 정책 흐름과 이번에 공포된 행동 방안은 같은 고민을 뿌리에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자 기업의 중국 시장 진입에 대한 네거티브 목록(금지나 투자 제한 대상)을 지속해서 축소하고 비즈니스 환경 개선을 강조하며 글로벌 표준의 시장 시스템을 건설하려는 중국의 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만 중국식 경제 시스템인 ‘사회주의 시장경제 질서하에서 공산당의 영도’라는 보이는 손의 역할과 ‘시장의 결정적 작용’이 서로 긴장과 조화를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이 답을 찾는 게 높은 수준의 시장 표준 시스템을 건설하려는 중국의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