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윈은 1995년 베이징에 가서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하며 ‘인터넷 전도사’ 역할을 자처했다. 당시 중국 관영 CCTV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동방시공’도 ‘서생 마윈’을 방영했다. 이 프로그램은 훗날 여러 차례 방송됐으며, 중국의 초기 인터넷 사업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사진 CCTV 캡처
마윈은 1995년 베이징에 가서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하며 ‘인터넷 전도사’ 역할을 자처했다. 당시 중국 관영 CCTV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동방시공’도 ‘서생 마윈’을 방영했다. 이 프로그램은 훗날 여러 차례 방송됐으며, 중국의 초기 인터넷 사업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사진 CCTV 캡처
김외현 플랫폼9¾ 이사 전 한겨레 기자·베이징특파원, 전 코인데스크코리아 편집장
김외현 플랫폼9¾ 이사
전 한겨레 기자·베이징특파원, 전 코인데스크코리아 편집장

중국 최대의 뉴스 메이커 중 하나였던 마윈이 ‘조용해진’ 지 어느덧 반년이 넘었다. 마윈은 지난해 10월 말 중국의 금융 정책을 공개 비판했고, 11월 초 일부 정부 기관에 불려가 면담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공개 행보를 중단했던 그는 5월 10일 직원 가족 초청 행사인 ‘알리바바의 날’에 다소 수척해진 모습으로 직접 참석한 것이 언론에 보도됐다. 지난 1월 어느 시상식에서의 화상 연설과 4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주재 화상회의 참석에 이어 세 번째 ‘조용한’ 노출이다.

사실 마윈의 이 같은 ‘로 키(Low Key·눈에 띄지 않는)’ 행보는 굉장히 낯설다. 그는 맨바닥에서 세계 최대의 기업을 일궈낸 신화적 기업인이며 중국 IT 산업의 역사다. 마윈의 과감한 연설과 쇼맨십 가득한 대중 노출은 수많은 중국인의 사랑을 받아왔고, 그의 어록을 만들어 떠받들며 숭배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마윈이 이처럼 낮은 자세를 취하는 것을 어떤 의미로 봐야 할까? 먼저, 그의 삶을 되돌아보자.


공부도 외모도 주목받지 못한 청년

마윈은 1964년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서 태어났다. 마윈의 할아버지는 국민당 정부 시기 지방의 관리였다. 이 때문에 마윈의 가정은 문화대혁명(1966~76년) 시기 ‘우파’로 찍혔고, 이웃들로부터 고초를 겪었다. 마윈의 아버지는 지역 연극협회에서 일했다. 그 덕에 마윈은 어릴 적부터 평탄을 비롯한 많은 전통연극을 접했다. 쑤저우에서 시작돼 저장성까지 퍼져 있던 평탄은 찻집에서 연기자(주로 2명)가 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와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능변가인 마윈은 어릴 적 이런 경험을 통해 상상력을 키웠다고 말했다.

마윈은 공부에 소질이 없었다. 자신은 머리가 작아서 공부를 못하는 거라고 여겼다. 다만, 중학교 때 지리 선생님이 외국인에게 항저우의 볼거리를 소개했다는 일화를 듣고 자극을 받아 영어 공부에 몰두했다. 마윈은 항저우의 유명 관광지 서호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가이드를 자청해 영어를 익혔다. 그러나 대학 입시에서는 두 번 연속 실패를 경험했다. 특히 수학이 문제였다. 첫 번째 대입 시험에서는 전국 최하 점수인 1점을 받았을 정도였다.

재수생 시절 서호 근처의 호텔에서 일하고 싶어 지원했으나, 함께 갔던 사촌 동생만 채용되고 마윈은 떨어졌다. 용모 때문이었다. 마윈은 훗날 “남자의 외모는 능력과 반비례한다”는 명언을 남겼지만, 이때는 좌절이 컸다. 마윈은 아버지 소개로 잡지사에서 잡부로 일했지만,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다시 입시에 도전했다가 또 떨어졌다. 한 차례 더 시험을 봐서 결국, 2년제 대학에 입학 가능한 점수를 얻었다. 다만, 미달 사태가 빚어지는 바람에, 영어 성적이 좋았던 마윈은 운 좋게도 4년제로 승급했다.

항저우사범대 시절 마윈은 학생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3학년 때는 총학생회장이 됐고, 항저우시 대학연합 회장에도 올랐다. 학업 성적도 좋았다. 1988년 졸업하면서 학과장과 총장의 추천을 받아 항저우 전자공업대에 영어 강사로 발령받았다. 인기 강사로 영어를 가르치던 중, 1991년 부업으로 퇴직 교사들을 데려다 번역 회사를 설립했다. 초기엔 사무실 임대료를 내지 못할 정도로 수익이 적었고, 마윈은 타 지역 도매점에서 소형 잡화와 완구, 의약품을 떼어와 팔면서 손실을 메웠다. 결국 이 회사는 본업인 번역에서 성공을 거뒀고, 항저우 최대의 전문 번역 집단이 됐다.


마윈은 알리바바 그룹의 성공과 함께 세계적인 기업인으로 부상했다. 2018년 알리바바의 투자를 위해 태국을 방문했을 때 모습.
마윈은 알리바바 그룹의 성공과 함께 세계적인 기업인으로 부상했다. 2018년 알리바바의 투자를 위해 태국을 방문했을 때 모습.

‘사기꾼’ 오해받으며 인터넷 회사 영업

1995년 ‘항저우에서 영어가 가장 유창한 사람’으로 알려졌던 마윈은 미국 방문 도중 인터넷을 처음 접했다. 번역 회사 홈페이지를 만들었더니 3시간 만에 거래 의뢰가 들어온 걸 보고 감탄한 그는 중국에서 인터넷 회사를 창업하기로 했다. 중국으로 돌아와 대학 강의를 그만두고, 1995년 ‘차이나페이지’라는 홈페이지 제작 대행 기업을 세웠다. 마윈은 인터넷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들을 상대로 힘겨운 영업을 해야 했다. 사기꾼이라고 비난받기 일쑤였다. 사실 마윈도 인터넷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1997년 마윈은 인민일보 홈페이지 제작을 수주했고, 뒤이어 경제무역부가 자체 홈페이지 및 중국 상품 교역시장 사이트의 제작을 맡기면서 아예 베이징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정부에서 일하면서 관련 웹사이트를 잇달아 제작했던 마윈은 1년여 만에 모든 공공기관 업무를 중단하고 항저우로 돌아가 1999년 알리바바를 만들었다. 창업 멤버 18명은 마윈의 집에 사무실을 꾸리고 하루 17시간씩 일한 결과,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었던 기업 간 거래(B2B)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개설했고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6분 만에 손정의 투자받아

마윈은 1999년 8월 골드만삭스로부터 500만달러(약 56억5000만원)를 투자받았다. 2000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에게 2000만달러(약 226억원)를 받았다. 손정의는 마윈을 만나 6분 만에 투자 결정을 내리고 3000만달러(약 339억원)를 제안했지만, 마윈은 그렇게 많이는 필요 없다며 금액을 낮췄다. 2001년 알리바바는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2003년 소비자 간 거래(C2C) 전자상거래 기업인 타오바오를, 2004년엔 즈푸바오(알리페이)를 선보였다.

이 무렵부터 국내외 언론은 ‘가장 중요한 경제 지도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올해의 기업인’ 등의 명단에 마윈의 이름을 올렸다. 2014년 알리바바가 뉴욕 증시에 상장돼 세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를 기록하면서 마윈은 중국 최대의 부호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이후 각종 방송과 영화에 출연해 인기를 얻었고, 해마다 11월 11일 광군제 때면 마윈이 어떤 ‘쇼’를 보일지에 다들 촉각을 세웠다. 그러던 중 2018년 은퇴를 선언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미운털’ 때문에 사라진 걸까

이렇듯 사랑받던 마윈이 갑자기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졌다면, 필시 공산당과 정부에 쓴소리를 했다가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세간에는 많다.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은 지난해 11월 예정됐던 알리바바의 금융계열사 앤트그룹(마이진푸) IPO가 무기한 연기된 것, 지난 4월 알리바바의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가 3조원이 넘는 벌금을 부과받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본다.

다만, 앤트그룹의 사업 행태는 실제 위태위태했다. 앤트그룹의 대출 서비스를 이용하면 앤트그룹은 1~5%를 부담할 뿐 나머지는 은행이 부담했다. 중국 정부가 마윈을 불러 면담했던 지난해 11월 중국 금융 당국은 모든 온라인 대출 사업자가 적어도 대출액 30%는 직접 부담하고, 자기 자본 5배까지만 대출하라는 규제를 내놨다. 책임 있는 금융 사업을 주문한 매우 합리적인 정책이다.

타오바오의 과징금도 이유가 분명했다. 중국 최대의 인터넷 쇼핑 업체이면서 판매자들에게 다른 경쟁 플랫폼에서 판매하지 못하도록 독점 공급을 요구하는 등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했기 때문이었다. 앞서 다른 기업도 타오바오와 같은 행위로 처벌받은 이력이 있다.

이렇게 보면, 마윈의 조용한 행보는 알리바바를 둘러싼 논란을 최소화하려는 의도일 가능성도 커 보인다. 우리는 마윈이 복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김외현 플랫폼9¾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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