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라인은 역사가 오래된 운송 수단이다. 오늘날은 IT 장비로 운용되지만 과거에는 수동식으로 작동됐다. 사진 위키피디아
파이프라인은 역사가 오래된 운송 수단이다. 오늘날은 IT 장비로 운용되지만 과거에는 수동식으로 작동됐다. 사진 위키피디아

5월 7일, 미국의 텍사스에서 뉴저지까지 하루에 250만 배럴의 유류를 공급해주는 8850㎞의 송유관이 해커들의 공격을 받고 멈추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산유량과는 직접 관련이 없으나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된 지역으로 공급되는 유류의 45%가 끊기면서 엄청난 혼란이 야기되었고 그 여파로 세계 경제가 출렁거렸다.

민간 기업인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이 운용하는 송유관이긴 하지만, 국가의 핵심 기간 시설이어서 미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응에 나섰다. FBI는 이번 해킹이 ‘다크사이드’라고 불리는 동유럽 범죄 조직의 소행이라고 구체적으로 지목했다. 이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이들을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는 러시아 정부에 책임을 묻겠다며 불만을 표했다.

하지만 이러한 강경한 대응과 업체의 피해 복구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500만달러(약 56억원)에 달하는 뒷돈을 암호화폐로 범죄 조직에 지급하고 난 후에야 해결될 수 있었다. 시스템이 랜섬웨어(컴퓨터 시스템을 감염시켜 접근을 제한하고 일종의 몸값을 요구하는 악성 소프트웨어의 한 종류)의 공격을 받고 망가져 버렸을 경우 현재까지는 완전히 새로 깔거나 복호 코드를 받아 복구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의 최고경영자(CEO)인 조지프 블런트는 범죄자의 협박에 굴복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송유관이 멈춰 버린 직후 곧바로 돈을 송금하고 복호 코드를 받았음에도 시스템을 완전히 복구하고 송유관을 재개통하는 데 일주일이 걸렸을 정도였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복구에 사용하기 위해 박물관에서 차출한 ISU-152 자주포와 이를 조종한 직원들. 사진 월드워투애프터월드워투
체르노빌 원전 사고 복구에 사용하기 위해 박물관에서 차출한 ISU-152 자주포와 이를 조종한 직원들. 사진 월드워투애프터월드워투

최신만 좇지 말자

이는 컴퓨터와 각종 통신망으로 얼기설기 연결된 현대 사회의 치명적인 급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현대인이 살아가는 데 정보 통신과 관련이 되지 않은 부분이 단 하나도 없을 정도다.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당장 사용 중인 인터넷이 끊긴다면 누구나 예외 없이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이번에 사고가 난 송유관도 디지털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방대한 송유관에 설치된 각종 센서에서 받은 최신 정보를 바탕으로 컴퓨터가 밸브, 펌프 등을 일사불란하게 조정해서 각종 석유 제품을 적정 온도로 유지하며 신속히 수송한다. 송유관 내부를 이동하며 이상 현상을 검사하는 최첨단 로봇 ‘스마트 피그(Smart Pig)’까지 갖추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1960년대에 해당 송유관이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이런 업무의 대부분을 사람이 직접 했다. 일부 고전적인 자동화 장치가 설치되었지만 아날로그 방식으로도 현재와 동일한 업무를 충분히 처리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동화되면서 편리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인력을 감축할 수 있게 되었으나 그 대가로 예전에는 없던 위험에 함께 노출된 것이다.

결과론이지만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이 만일을 대비해서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도 송유관을 가동할 수 있는 비상용 백업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면 어려움을 좀 더 쉽게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최신 기술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서 예전 방식을 동원하는 사례는 흔하다. 종종 의외로 어렵고 위험한 임무에 좋은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해킹으로 미국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의 가동이 중단된 여파로 차량들이 주유하기 위해 장사진을 치고 있다. 사진 AP연합
해킹으로 미국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의 가동이 중단된 여파로 차량들이 주유하기 위해 장사진을 치고 있다. 사진 AP연합

옛 기술의 귀환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당시에 과거의 유물 정도로 여기던 구닥다리 장비들이 종횡무진 활약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노심 용융을 늦추기 위한 작업을 하려면 현장까지 접근해야 하는데 전자 부품이 탑재된 장비들은 방사선에 속수무책으로 고장이 났다. 기술 수준이 높지 않았던 시절이었음에도 전자 부품의 역할이 그만큼 컸었다.

이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활약한 ISU-152 자주포가 동원되었다. 포탑이 없어 납 코팅을 하기 용이한 구조이기도 했지만 오로지 유압으로만 조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박물관에 보관 중이던 ISU-152가 긴급 수리를 받고 현장에 투입되었다.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해서 다른 임무를 수행했지만 구닥다리였기에 오염지에서 활약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게 좋은 성과가 나오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사용되다가 전시용 등으로 사용되던 많은 기갑 장비들이 긴급하게 개조되어 도로 개척용, 인력 운반용 등으로 투입되었다. 물론 조종사가 오랫동안 작업할 수 없어서 지속적으로 가동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나마 피폭 현장에서 무난하게 작동되는 몇 안 되는 수단들이었기에 매우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송유관 사건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건에서 본다면 최신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최신 기술 덕분에 편리함을 얻을 수 있고 효율성이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고 때로는 과거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기술이 오래되었다고 무조건 도태시킬 필요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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