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시험 43회,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허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시험 43회,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중국 베이징에서 살던 시절, 유명한 만두 프랜차이즈에 가서 중국인이 좋아하는 콩 음료인 ‘또우장(豆浆)’을 주문했다. 음료가 담긴 플라스틱 용기에 ‘당일(當日)’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짧게 ‘당일’이라고만 적어 놓으니 어제 만든 것도 당일, 내일이 돼도 당일, 언제나 유통 기한 내의 제품일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QR코드로 유통 기한을 추적하는 세상이 되고 보니 ‘당일’ 에피소드도 중국살이의 한 추억으로 남는다.

국민 먹거리 안전은 중국이 가장 강조하는 가치 중 하나다. 중국 식품안전법(食品安全法)은 식품 제조 과정에서 원재료 등의 입고와 완제품 출고에 관한 철저한 기록을 통해 유통을 관리하고 있다. 유통 기한(保質期)도 중요한 추적관리 대상 가운데 하나다.

중국 식품안전법에 따르면 식품 생산 기업은 원재료·첨가제 등에 대한 입고 검사 기록 제도를 수립하고, 이들의 명칭, 규격, 수량, 생산일(또는 생산 번호), 유통 기한, 입고일 그리고 판매자의 명칭·주소·연락법 등을 사실대로 기재하고, 관련 증빙을 보존해야 한다. 기록과 증빙의 보존 연한은 제품 유통 기한 만료 후 6개월 이상이어야 하며, 명확한 유통 기한이 없는 경우 보존 연한은 2년 이상이어야 한다(제50조).

또 식품 생산 기업은 식품의 출고 검사 기록 제도를 수립해 출고 식품의 검사 합격증과 안전 상황을 검사하고, 식품의 명칭, 규격, 수량, 생산일(또는 생산 번호), 유통 기한, 검사 합격증 번호, 판매일 그리고 구매자의 명칭·주소·연락법 등을 사실대로 기록하고, 관련 증빙을 보존해야 한다. 기록과 증빙의 보존 연한은 제50조와 동일하다(제51조).

최근 중국의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임기식품(臨期食品)을 구매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임기식품이란 유통 기한이 임박한 식품을 말한다. 

중국에서 임기식품 소비 대열에 뛰어든 건 1990년대 이후 출생한 90후(後), 대학생, 2~3선 도시에 사는 젊은 직장인 등이다. 젊은이들의 임기식품 구매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허리띠를 졸라매려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 임기식품이라고 해도 품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가성비 좋은 제품을 합리적으로 구매한다는 인식도 퍼졌을 것이다.

‘사람은 체면이 있어야 하고 나무는 껍질이 있어야 한다(人要臉, 樹要皮).’ 체면을 중시해온 중국인 사이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체면보다 철저한 실리주의가 주목받는다. 과거에는 시내 한복판에 번듯한 사무실을 소유하는 걸 성공의 상징으로 여겼으나, 이제는 도시 중심부에 있는 글로벌 브랜드의 공유 오피스에서 일하는 걸 더 멋있게 여긴다. 개혁·개방 시기에 혼수 1호 품목이던 자전거를 이제는 길에서 QR코드 스캔 후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하며 탄다. 유통 기한이 다 돼 가는 먹거리를 사는 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소비로 대접받는 세상이 됐다. 합리적이고 가치 지향적인 이른바 ‘힙한 소비’가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한다.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기업도 소비자의 역동적인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