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허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최근 상하이 중심 상업 지역에 있는 화려한 쇼핑몰에 입점한 모 글로벌 브랜드가 중국에서 논란이 됐다. 사건은 이렇다. 상하이에 사는 가모씨는 우리 돈으로 200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주고 이 브랜드의 오리털 파카를 샀다. 그런데 집에 와서 제품을 꼼꼼히 살펴보니 상표 자수도 정품과 다르고 이상한 냄새까지 나는 게 아닌가. 가씨는 즉시 이 매장에 환불을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환불 불가’였다.

점원은 교환약관 규정에 따라 법률에 별도의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중국 지역 매장에서 판매한 제품은 환불해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런 조항이 중국 전역에서 통용되는 조항이라고 끝까지 주장했다. 이 사건은 여론을 통해 공론화됐다. 이에 해당 브랜드는 한발 물러서 해결책을 모색해 보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중국에서는 이런 ‘환불 불가 조항’을 ‘패왕조항’이라고 한다. 패왕조항은 경영자가 일방적으로 법적 의무를 회피하거나 자신의 책임을 감면하려고 하는 계약상의 불공정한 약관 조항을 말한다. 불평등한 표준계약이나 통지, 성명, 점포 내 게시, 동종 업계 관례로 소비자 권리를 제한하고 공익을 심각하게 해치는 것들이 대표적인 패왕조항이다.

패왕조항은 약관에서 많이 나타난다. 중국 민법전에 따르면 약관이란 당사자가 반복해서 사용하기 위해 미리 정해 놓은 것으로, 계약 체결 시 상대방과 협상을 거치지 않은 조항을 말한다(민법전 제496조). 약관을 제공한 일방이 불합리하게 책임을 면제 또는 감경하거나, 상대방 책임을 가중하거나, 상대방의 주요 권리를 제한 또는 배제하는 경우에 그런 약관은 무효다(민법전 제497조).

만약 약관 해석에서 분쟁이 생기면 통상적인 이해에 따라 해석하고, 약관을 두고 두 가지가 넘는 해석이 가능하면 약관을 제공한 일방에 불리한 해석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민법전 제498조). 또 ‘중화인민공화국 소비자 권익 보호법(中華人民共和國消費者權益保護法)’은 사업자는 약관, 통지, 성명, 점포 내 고시 등 방식으로 소비자 권리를 배제 또는 제한하거나, 사업자 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하거나, 소비자 책임을 가중하는 등 소비자를 상대로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규정을 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내용이 포함된 경우엔 그 내용은 무효로 한다고도 함께 규정하고 있다(제26조).

그렇기 때문에 약관을 제공하는 당사자는 이를 상대방에게 제공하고 설명해야 한다. 약관을 제공하는 일방이 약관 제공과 설명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상대방이 그와 중대한 이해관계가 있는 조항을 주의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면 상대방은 이 조항이 계약 내용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

중국 최고인민법원이 하급법원에 대한 판결 지침으로 공포하는 지도적 안례 제64번은 ‘사업자가 약관에 상품이나 서비스에 관한 제한 조건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았거나, 계약 체결 시 해당 제한 조건을 명확하게 소비자에게 고지하고 동의를 구했음을 입증하지 못한 경우에 해당 제한 조건은 소비자에게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다.

인의를 무시하고 패도로 나라를 다스리는 자를 ‘패왕(覇王)’이라 한다. 한(漢)나라의 유방(劉邦)과 천하를 다투던 초패왕 항우(項羽)가 대표적이다. 그는 뛰어난 무술과 용맹을 겸비했지만 결국 유방에게 패하고 만다. 이제 중국도 권리 의식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브랜드에 당당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역사 속 패왕과 마찬가지로 계약에서 패왕조항도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간다.

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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