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2일째인3월 7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북동부 수미 지역에 파괴된 러시아군 탱크들이 방치돼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2일째인3월 7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북동부 수미 지역에 파괴된 러시아군 탱크들이 방치돼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2월 24일(이하 현지시각),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발발했다. 그동안 러시아가 수차례 전쟁을 일으켰지만 대부분 국지전 정도였고 제2차 체첸전쟁처럼 명분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차원이 달랐다. 두 국가의 문제를 떠나 공공연하게 제3차 세계대전까지 언급될 정도로 국제 정세가 얽히고설킨 것이 많기 때문이다.

파급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오히려 전쟁을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2021년 10월쯤 훈련을 명분으로 대규모 러시아군이 국경 일대에 집결하기 시작할 때도 무력 시위 정도로 생각했다. 올해 1월 말쯤 미국 정부가 전쟁은 확실하며 2월 16일에 러시아가 침공할 것이라고 날짜까지 특정할 때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예고한 날, 러시아 국방부가 훈련을 마친 부대를 원대 복귀한다며 사진까지 공개하자 모두가 당연한 수순으로 여겼고 각국 증시가 폭등했다. 미국은 단지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끝난 후로 작전을 연기해달라는 중국의 요청을 러시아가 받아들인 것뿐이라고 단정했다. 결국 전쟁은 시작됐고 전 세계는 미국의 정보력에 감탄했다.

당시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는 물론 전문가들 대부분은 전쟁이 곧 마무리될 것으로 봤다. 워낙 전력 격차가 컸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우크라이나는 동부 지역이 러시아계 주민의 득세로 인해 국론마저 분열된 상태였다. 그래서 2014년에 있었던 크름반도(크림반도) 강제 병합의 확장판 정도로 생각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우크라이나군의 강력한 저항에 막혀 러시아군이 고전하고 있다. 러시아가 공세의 주도권을 쥐고 우크라이나를 밀어붙이고는 있지만, 애초 목표했던 ‘속전속결’ 전쟁은 물거품이 됐다. 한 달이 지났어도 헤르손 정도를 제외하고 확실하게 점령한 대도시도 없다.

러시아가 전략 무기인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동원하고 공공연히 핵무기를 거론하며 위협을 가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들의 의도대로 전쟁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설령 러시아가 이겨도 내상이 클 수밖에 없다. 이처럼 예상을 벗어난 결과가 나타난 첫 번째 이유는 세계를 놀라게 만든 우크라이나의 놀라운 항전 의지 때문이다.

서방이 일치단결해서 러시아를 정치·경제적으로 고립시키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지만 월남 패망이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재집권에서 보듯이 아무리 도움을 많이 받아도 스스로 지키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백약이 무효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수많은 재외국민이 앞다퉈 귀국하고 부녀자들도 총을 들고 싸울 정도로 대단한 정신력을 가졌다.


3월 27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외곽에서 한 우크라이나 병사가 전투를 벌여 노획한 러시아군 탱크 위에 서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키이우 주변 지역에서 러시아군 일부를 35∼70㎞ 이상 몰아냈다고 밝혔다. 사진 로이터연합
3월 27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외곽에서 한 우크라이나 병사가 전투를 벌여 노획한 러시아군 탱크 위에 서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키이우 주변 지역에서 러시아군 일부를 35∼70㎞ 이상 몰아냈다고 밝혔다. 사진 로이터연합

그래도 이 정도로 러시아군이 고전할 것이라 예상한 이들은 없었다. 군사력 차이가 워낙 큰 데다 나름대로 실전 경험이 많은 군대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러시아군을 과잉 평가한 것이 아니었냐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을 정도로 부족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급 문제로 전차가 멈추고 병사들이 굶주린다는 것은 일시적인 판단 착오라고 치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려 20년이 지난 전투 식량이 공급되고 동계 전투용 피복이 부족해서 동상 환자가 속출했다는 사실은 전쟁을 먼저 시작한 군대의 모습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0년 러시아는 전 세계 군비 지출 순위가 미국·중국·인도에 이어 4위인 군사강국이다. 2020년 군비 지출 규모가 617억달러(약 77조1800억원)로 전 세계 군비 순위가 34위에 그친 우크라이나(59억달러)의 10배를 웃돈다. 비록 미국과 유럽이 군사 물자를 지원했다고 하지만 이런 군사력 격차를 가진 상황에서 러시아 군대는 어떻게 이런 수준을 보이게 됐을까. 

바로 교훈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은 옛 소련군의 대부분을 승계했기에 풍부한 경험을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작 이번에 드러난 러시아군은 1945년 베를린을 점령하고 환호하던 강군이 아니라 만용에 찌들어 핀란드를 침공했다가 혹독한 아픔을 겪었던 1939년 겨울전쟁 당시의 한심한 모습이었다.

더구나 기갑부대가 진흙에 빠져 오가지 못하는 장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에서 3월 말쯤 땅이 온통 진흙탕로 변하는 라스푸티차(ras-putitsa)는 당연한 계절적 현상이다. 러시아의 육상 장비라면 필수적으로 진흙 탈출용 통나무를 달고 다닐 정도로 대처 방법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많은 전차와 장갑차가 진흙에 묻혀 전투를 포기해야 했다.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군은 가장 한심했을 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한마디로 교훈을 망각하고 가장 나쁜 모습을 재방송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고전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 설령 이 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길지 몰라도 사자가 토끼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한다는 진리를 망각한 이상 두고두고 엄청난 고통을 겪을 것은 확실하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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