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은 단 한 번의 측정만으로 결론 짓기 어렵기 때문에 수시로 혈압을 재야 한다. 사진 셔터스톡
고혈압은 단 한 번의 측정만으로 결론 짓기 어렵기 때문에 수시로 혈압을 재야 한다. 사진 셔터스톡
김범택 아주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현 아주대병원 비만클리닉 소장, 현 대한골다공증 학회 부회장
김범택 아주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현 아주대병원 비만클리닉 소장, 현 대한골다공증 학회 부회장

고혈압만큼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고, 많은 오해가 있는 질병도 없을 것이다. 고혈압은 혈압이 지속해서 140/90㎜Hg 이상 올라 혈관에 손상을 줘서 협심증, 심근경색 같은 심장 질환이나 뇌경색, 뇌출혈 등의 뇌졸중 등 합병증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실명, 만성 신부전, 성기능 장애, 치매 등과 관련이 있어 꼭 치료가 필요한 병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혈압이 오를 때 약을 먹을 것이냐를 두고 이야기가 오간다. 

흔히들 혈압은 늘 일정하다고 오해하곤 한다. 그래서 한 번 혈압이 140/90㎜Hg 이상 나와도 고혈압이라고 생각하거나, 대체로 혈압이 높지만 140/90㎜Hg 이하일 때도 있으니 약을 먹을 필요가 없다는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혈압은 늘 변한다. 예를 들면 술을 마시거나 잠을 자지 못하면 올라간다. 대개 낮에는 높다가 밤에 잠을 잘 때는 떨어진다. 또 운동할 때는 높고 식사 후에는 떨어진다. 혈압은 계절에 따라 달라져 7, 8월에 평균 혈압이 가장 낮고 1, 2월에 가장 높다.

따라서 병원에서 혈압이 정상이라도 집에서 수시로 혈압을 재서 자신의 평균 혈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진료실에서 잰 혈압이 정상이라도 집에서 5분 이상 안정을 취한 후에도 측정한 혈압이 높다면, 이를 ‘가면고혈압(masked hypertension)’이라고 한다. 고혈압이 정상인 척 가면을 쓴 것이다. 

역학 연구에 따르면, 가정측정혈압을 기준으로 가면고혈압인 사람의 유병률은 21.2%다. 또 고혈압 약을 먹는 환자 일곱 명 중 한명(13.8%) 그리고 진료실 혈압이 정상인 환자 세 명 중 한 명(35.1%)은 실제로는 가면효과 때문에 혈압이 잘 조절된다고 착각하고 있다. 가면고혈압은 여성보다는 남성이나 고령층, 흡연자, 당뇨병 환자, 치료 약의 개수가 많은 환자에게 많이 발생한다.

반대로 평상시에는 혈압이 정상이지만, 병원에 가서 의사만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 혈압이 올라가는 사람이 있다. 진료실에서 고혈압 진단을 받은 환자 여섯 명 중 한 명(17.4%)이 ‘백의고혈압(white coat hypertension)’이라고 한다. 병원에서 의사의 흰 가운만 보면 긴장해 혈압이 올라간다는 뜻이다. 

백의고혈압은 여성이나 마른 체형의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난다. 진료실에서 혈압이 조절되지 않는 고혈압 환자 다섯 명 중 한 명(21.3%)은 실제로는 조절이 잘되는 백의고혈압 환자라고 한다. 백의고혈압은 5년 이내의 짧은 기간에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관찰해보면 결국 고혈압으로 진행하거나 심혈관 질환 발생이 증가하는 경우가 많아 백의고혈압 환자도 주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하고 경과를 관찰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고혈압은 가면을 써서 자신을 숨기기도 하고 흰 가운 입은 의사만 보면 급작스레 나타나기도 한다. 만약 의사에게서 고혈압이 있다고 들었다면, 적절한 혈압계를 구해 수시로 가정에서 혈압을 측정해 보고 자신의 혈압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중요하다. 가정에서 혈압을 잴 경우는 측정 30분 전 카페인 섭취나 운동, 흡연, 목욕, 음주를 삼가고, 아침에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1시간 이내에 용변을 본 후 식사하기 전, 혈압 약을 복용하기 전에 측정한다. 혈압은 앉은 상태에서 측정하며 1~2분간 안정을 취한 후 1~2분 간격으로 두 번씩 측정한다. 가능하면 맨팔에 커프를 감고 측정하는 것이 좋지만, 옷이 얇다면 옷 위로 측정해도 무방하다. 처음 고혈압을 진단할 때나 약을 복용할 때도 적어도 직전 일주일 동안 혈압을 측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병원에서는 백의고혈압을 막기 위해 환자 홀로 혈압 측정실에 들어가서 자동혈압계로 측정하도록 권고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질문을 하나 던져보겠다. 가면고혈압과 백의고혈압 중 무엇이 더 위험할까. 정답은 가면고혈압이다. 약물 치료 중인 고혈압 환자에게 가면고혈압이 있는 경우, 백의고혈압이 있는 경우보다 심근 손상이 심하다고 하니 평소에 혈압을 자주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