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재난 상황에 불안해하면서도 밑바탕에는 주인공 심리가 있다.
누구나 재난 상황에 불안해하면서도 밑바탕에는 주인공 심리가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여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가을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병원 정신과 입원 환자들도 힘들어한다. 반년 넘게 산책도 제한하고 외출도 금지하고 면회도 안 되고 있다. 회진 돌 때 환자분이 묻는다. “원장님, 코로나 언제 끝나요?” 내 바람을 담아 대답할 수밖에 없다. “가을엔 끝날 거예요.”

코로나19 재확산에 병원도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우선 입원 환자가 꽤 줄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위험성 때문에 입원을 제한해서 받고 또 외출 관리가 잘 안 되는 일부 개방 병동 환자를 퇴원시킬 수밖에 없다. 그뿐 아니다. 간호대 학생 실습도 전면 중단했다. 간호대 학생들이 정신병원 실습을 못 하게 되어 많이 아쉬워했다.

올해 들어 병원 회식을 한 번도 못 했다. 게다가 직원들에게 개인적인 외식, 피트니스클럽 등 개인 활동도 가능한 한 하지 않도록 권고했다. 정신병원 특성상 한 명이라도 확진자가 나오면 코호트(집단) 격리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농담 반 진담 반 이렇게 묻는다. “만약 내가 확진자가 되면 병원에서 잘리게 되는 건가요?”

직원들에게는 조심하라고 하지만 사실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 병원만은 코로나 19에 절대 걸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확신이 어디서 나오나? 아무 근거 없다. 그냥 ‘나는 아닐 것이다’라는 막연한 믿음이다. ‘나는 아니다’의 심리는 바로 ‘주인공’ 심리 때문이다. ‘나는 주인공’이기 때문에 죽지 않는다.

누구나 재난 상황에서 불안해하면서도 밑바탕에는 이런 주인공 심리를 갖고 있다. 태풍이 분다고 해도 나하고는 상관없고, 홍수가 난다고 해도 남 동네 일이며, 바이러스가 창궐한다고 해도 나는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사회적 거리 두기에도 아랑곳없이 클럽에 사람이 넘치고 헬스장에는 땀 흘리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주인공 심리는 일상생활에서는 자신감을 주니 좋지만 코로나 시대에는 방역의 적일 뿐이다.

그런 주인공 심리가 다행히 흔들리고 있다. ‘나는 아니다’라는 심리가 ‘혹시 모른다’로 바뀌고 있다. 전 지구적인 위기 상황인 데다가 늘 해오던 생활에 제약이 생기니 더 크게 체감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와 남의 안전을 위한 좋은 변화다.

개인은 주인공 의식이 조금 바뀌고 있지만 문제는 집단이다. 주인공 심리가 집단으로 확장하면 ‘선민의식’이 된다. 우리는 남들과 다르게 선택받은 집단이라는 믿음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괜찮다.’ 광화문 집회나 종교 집회, 유럽의 마스크 반대 시위가 이런 심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으로 있을 때는 두렵지만 집단으로 함께 있을 때는 겁 없는 믿음만 남는다.

똑똑한 바이러스가 인간의 이런 심리를 틈타 다시 득세하려고 한다. 주의해야 한다. 지금은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우리 집단, 너희 집단도 없다. 오직 하나의 우리만 있다. 한 민족, 한 인류만 있다. 나도, 우리도, 민족도, 인류도 위기에 처해있다. 명심하자. 진짜 멋진 주인공은 남을 살리는 사람이고 진정한 선민의식은 인류를 구하는 정신이라는 것을.


▒ 윤우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밝은마음병원 원장, ‘엄마 심리 수업’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