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비밀병기로 거론되기도 하는 Me 262는 실제로 문제점이 많았다. 그러나 전황이 나빠 서둘러 데뷔하면서 최초로 실전에 투입된 제트 전투기라는 영예를 얻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나치의 비밀병기로 거론되기도 하는 Me 262는 실제로 문제점이 많았다. 그러나 전황이 나빠 서둘러 데뷔하면서 최초로 실전에 투입된 제트 전투기라는 영예를 얻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은 흔히 ‘나치의 비밀병기’라고 회자되는 시대를 앞선 여러 무기를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V-2 로켓은 많은 이를 경악하게 만들었고 전후에 등장한 여러 후속 무기의 탄생에도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오늘날 우주 개발이나 군사용으로 사용되는 장거리 로켓은 모두 V-2의 후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처럼 대단한 V-2는 정작 투입 비용 대비해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상당히 나쁜 무기였다. 사실 오늘날도 핵탄두를 탑재하지 않는다면 장거리 로켓은 단지 값비싼 장거리 포탄에 불과하다. 따라서 만일 독일이 우세한 상황이었다면 전쟁 자원 배분 측면에서 비효율적인 V-2의 투입이 쉽게 이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을 제외한다면 V-2는 그래도 성공한 케이스지만, 앞서 언급처럼 독일의 비밀병기는 개발에 실패하거나 실망스러운 결과를 보여 폐기된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전쟁 말기라서 개발 여건이 나쁘기도 했지만, 독일의 기술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V-2도 미국의 로켓 과학자인 고다드의 연구 내용을 상당히 베껴서 개발했을 정도였다.

단지 패전의 위기에 몰리다 보니 충분한 시험도 거치지 못하고 마구 등장시킨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우후죽순처럼 낯선 무기들이 등장하니 독일이 시대를 앞서 나간 것처럼 착각하게 된 것이었다. 이처럼 상황이 먼저 역사에 등장하도록 만들기는 했으나, 이 때문에 성능과 별개로 역사에 커다란 흔적을 남긴 경우도 많았다.

Me 262 전투기가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수평 비행 속도 하나만 빼면 성능이 너무 미흡했지만, 단지 최초로 실전에 투입된 제트 전투기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Me 262는 항공 무기사에 영원히 기억되는 존재가 되었다. 반면, 거의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영국의 글로스터 미티어(Gloster Meteor MkⅠ·이하 미티어)는 그렇지 않다.

활약 시기가 달라 평면적 비교는 어렵지만, 초도 비행 당시를 기준으로 양측의 성능은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전쟁사에는 연합군이 Me 262에 경악했다고 쓰여 있지만, 이처럼 대항마가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미티어는 유럽 종전일인 1945년 5월까지 실전에 투입되지 않았다. 아직 해결해야 할 이런저런 문제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주 공군이 운용한 글로스터 미티어. Me 262보다 성능이 좋았지만, 정작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은 잊혀진 전투기가 되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호주 공군이 운용한 글로스터 미티어. Me 262보다 성능이 좋았지만, 정작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은 잊혀진 전투기가 되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급해서 등장했을 뿐인데 조명

사실 실전에서 활약 중이던 Me 262도 같은 문제로 골치가 아픈 상황이었다. 고속으로 선회하다가 실속할(비행기 양 날개의 양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정상적으로 조종할 수 없는) 가능성이 커서 공대공 전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폭격기 요격만 수행할 수 있었다. 영국제 제트엔진보다 성능이 미흡한 유모(Jumo)엔진도 커다란 고민이었다. 엄밀히 말해 Me 262도 기술적으로는 당시에 데뷔하지 말았어야 했던 전투기였다.

결론적으로 영국은 어차피 이긴 전쟁이었으므로 불안정한 전투기를 무턱대고 전선에 밀어 넣을 필요가 없었던 반면, 독일은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어쩔 수 없이 투입했던 것이다. 결국 Me 262는 종전과 동시에 생을 마감했지만, 시간적 여유를 두고 문제점을 해결한 미티어는 영국과 영연방 국가에서 1960년대까지 사용되었다.

그러나 Me 262는 ‘최초’라는 타이틀 덕분에 두고두고 회자되는 반면, 미티어는 현재 소수만 아는 그저 그런 전투기로 취급받는다. 만일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등장해서 한 번이라도 Me 262와 싸웠다면 Bf 109와 스핏파이어의 사례처럼 항공전사의 라이벌로 취급받으며 반드시 함께 거론되는 대상이 되었을지 모른다.


1943년 발사 실험 중인 A4 로켓. 이후 V-2라는 이름으로 배치되었고 전후 등장하는 모든 로켓의 탄생에 영향을 끼쳤다. 사진 위키피디아
1943년 발사 실험 중인 A4 로켓. 이후 V-2라는 이름으로 배치되었고 전후 등장하는 모든 로켓의 탄생에 영향을 끼쳤다. 사진 위키피디아

더 좋았지만 나중에 등장해 외면

그렇게 투입을 늦춘 대신 문제점을 해결한 미티어의 최초 실전은 한국전쟁에서 이뤄졌다. 이전까지 프로펠러 전투기인 P-51을 운용하던 호주 공군 제77전대가 한반도로 전개하면서 제트 전투기를 요청하자 미티어가 공급된 것이었다. 문제는 1950년 12월을 기점으로 하늘의 주인공이 제1세대 전투기의 대표 주자인 F-86과 MiG-15로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F-86보다 뒤진 미티어를 인도받자 제77전대 조종사들은 암담할 수밖에 없었다. 전투기의 성능 차이가 곧바로 승패로 연결되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결국 미티어는 공대공 전투가 아닌 지상 공격기로 용도를 바꿔 활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불과 5년이라는 세월은 미티어를 구닥다리로 만들어 버렸다.

Me 262와 같은 시기에 태어났지만, 첫 번째가 아니라는 이유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뒤늦게 전쟁터에 등장했지만, 구닥다리 취급을 받은 미티어를 보면 최초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알 것 같다. 무기의 세계에도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우스갯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아 흥미롭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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