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우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엄마 심리 수업’ 저자
윤우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엄마 심리 수업’ 저자

유명한 시사평론가 한 분이 자신이 이전에 한 말이 사실이 아니었음을 밝히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 사과문에 ‘확증편향’이라는 낯선 용어가 등장해서 눈길을 끌었다. 확증편향이란 정보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것만 인정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을 뜻한다. 당연히 한 쪽 편만 챙기니 오류가 생긴다.

나와 의대 동기라서 동창 모임에서 가끔 만나는 똑똑한 친구가 한 명 있다. 그 친구는 아직도 천안함 사건을 이스라엘 잠수함과의 충돌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이스라엘 잠수함이 페르시아 만과 바다 조건이 유사한 서해에서 비밀훈련 중에 천안함과 충돌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압력을 받은 정부가 북한의 소행으로 발표한 것이라면서 증거가 많지만, 이 진실은 영원히 묻힐 것이라고 말한다. 그 신념에 찬 친구의 얘기를 듣다 보면 나도 헷갈린다. 세월호 고의 침몰설도 수차례의 진상조사를 통해 근거 없는 가설이 됐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진실’로 남아 있다.

확증편향 오류의 시대다. 누가 옳은지, 무엇이 사실인지 상관없다. 무조건 내가 믿는 것이 진실이어야 한다. 내 편이면 잘못해도 좋은 사람이고, 상대편이면 뭘 해도 나쁜 놈이다. 재판의 결과가 내 심정에 맞으면 ‘정의가 살아있다’고 하고, 내 뜻과 다르면 ‘적폐’나 ‘좌파’가 된다. 그리고 그 재판관의 신상을 털어 자기주장에 맞는 내용만 뽑아내고 들이민다. ‘봐라! 내 말이 맞잖아!’ 정말 위험한 세상이다. 그런 확증편향이 상식이 되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이제 힘센 사람이 진실이 된다.


정보의 사실 여부를 떠나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것만 인정하는 확증편향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보의 사실 여부를 떠나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것만 인정하는 확증편향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믿는 것이 진실’이라는 주장은 정신과적으로 보면 ‘망상’이라고 할 수 있다. 망상의 정의는 ‘합리적인 이유와 객관적인 증거에도 변하지 않는 잘못된 믿음’이다. 지금 우리 시대는 합리적인 이유를 대도 가짜 뉴스라 하고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해도 조작이라고 한다. 개인의 망상이라면 치료라도 해보겠지만 집단의 망상은 신념이 되고 이념이 되니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사실 개인의 망상도 치료하기가 어렵다. 망상의 정의 자체가 ‘객관적인 증거를 아무리 제시해도 변하지 않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망상 치료의 핵심은 외부의 증거가 아니라 내면의 깨달음이다. 확증편향도 마찬가지다. 내가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기 쉽지 않다. 나를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신념을, 나의 가치를, 나의 자존심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심리적으로 내가 죽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너도 살고 나도 살고 진실이 살고 나라가 살고 민족이 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내 편, 네 편 상관없이 이번에 ‘확증편향’이라는 자기 고백적인 단어가 실린 사과문을 어찌 됐든 신선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또 하나의 확증편향에서 벗어나는 우리의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