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운용 중인 유일한 핵무기 운용 플랫폼인 뱅가드 전략핵잠수함. 미국에서 도입한 16발의 트라이던트 II SLBM을 탑재했다. 최고의 동맹 관계여서 핵무기 거래가 가능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영국이 운용 중인 유일한 핵무기 운용 플랫폼인 뱅가드 전략핵잠수함. 미국에서 도입한 16발의 트라이던트 II SLBM을 탑재했다. 최고의 동맹 관계여서 핵무기 거래가 가능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전시는 말할 것도 없지만 평소에도 국가는 적정한 군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를 위해 많은 재정이 투입되는데, 이는 국민의 부담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부분이다. 당연히 납세자는 혈세가 낭비되지 않고 효율적으로 집행되기를 바라나 국방은 무조건 경제적인 잣대를 들이밀어 다룰 수 없는 부분이 많다.

특히 무기 도입과 관련해서 그렇다. 저렴하게 획득하는 것이 좋지만, 갈수록 질이 양을 압도하면서 무기는 가격보다 성능이 우선시된다. 지난 2014년 제3차 FX 사업의 최종 승자로 F-35가 결정되었을 때 당국이 노골적으로 밀어준 티가 났음에도 후보 중 유일한 스텔스기였기에 대부분의 언론이나 시민 단체도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미국이나 러시아처럼 자국 내 수요가 풍부하고 시장을 선점해서 해외 진출도 쉬운 일부 국가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무기는 국내에서 개발하는 것이 외부에서 도입하는 것보다 대부분 비용이 많이 들고 개발에 따른 리스크도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나라가 여러 혜택을 줘가면서 자국의 방위 산업을 유지하는 이유는 자주국방을 위해서다.

이런 이유 등으로 말미암아 원론적으로 자국이 만든 무기로 나라를 지키는 것이 가장 좋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안보가 국가 생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무기 개발에 엄청난 비용이 투자되어야 하고 각종 최신 기술들이 접목되면서 갈수록 자력 개발이 힘들어지는 추세다.


다목적 임무 수행이 가능한 프랑스의 미스트랄급 강습상륙함. 러시아가 동종의 함을 주문했으나 엉뚱하게도 최종 행선지는 이집트였다. 사진 위키피디아
다목적 임무 수행이 가능한 프랑스의 미스트랄급 강습상륙함. 러시아가 동종의 함을 주문했으나 엉뚱하게도 최종 행선지는 이집트였다. 사진 위키피디아

돈보다 우선시되는 것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기술력이 있음에도 파급 효과를 크게 기대할 수 없는 경우라면 일부러 국내 생산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최첨단의 KF-21 전투기 개발을 진행 중인 우리나라가 특수부대용 기관단총, 저격용 총 등을 해외에서 도입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무기는 수요가 한정되고 공급자 또한 많지 않은 데다 거래에 정치·외교적인 요인이 많이 작용한다.

따라서 무기는 돈을 벌기 위해서 마구 팔 수도, 원한다고 쉽게 살 수도 없는 상품이다. 현재 영국이 운용하는 유일한 핵무기는 4척의 뱅가드급 SSBN에 탑재된 미국산 트라이던트 II SLBM이다. 영국이 자력으로 개발할 능력은 되지만 여러 이유로 미국으로부터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양국이 최고의 동맹 관계이기에 거래가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국가 간의 관계는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중도에 무기 거래가 틀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최근의 사례를 들자면 앞서 언급한 F-35는 미국이 처음부터 8개국의 참여를 받아서 개발했다. 터키는 최초 참여국 중 하나여서 우선 공급받을 대상이었으나 러시아의 S-400 방공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이유로 미국이 인도를 거부했다.


2014년 프랑스 생 나자르에 있는 아틀랑티크 조선소(당시 STX 유럽) 앞에서 선체를 러시아로 인도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시민 단체의 시위 모습. 이런 우여곡절 끝에 이집트에 판매가 이루어졌다. 사진 위키피디아
2014년 프랑스 생 나자르에 있는 아틀랑티크 조선소(당시 STX 유럽) 앞에서 선체를 러시아로 인도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시민 단체의 시위 모습. 이런 우여곡절 끝에 이집트에 판매가 이루어졌다. 사진 위키피디아

기체결 계약도 장담할 수 없어

2016년에 이집트가 프랑스에서 도입한 2척의 가말 압델 나세르급 강습상륙함은 냉전 종식과 신냉전 시작이라는 변혁의 시기에 무기의 운명이 극적으로 바뀐 상징과 같은 존재다. 현재 이집트 해군의 주요 전력으로 운용 중이지만 해당 함의 탄생은 엉뚱하게도 러시아와 관련이 있다.

2011년 러시아는 프랑스에 4척의 강습상륙함을 주문했다. 프랑스 해군이 2006년부터 운용 중이던 미스트랄급을 기반으로 하되 Ka-52 헬리콥터 운용을 위해 격납고 구조가 바뀌고 북극해에서의 작전을 염두에 두고 선수가 쇄빙선에 버금갈 만큼 강력하게 설계되었다. 민감한 전자·통신 장비와 무장은 러시아가 인도받은 후 자국산으로 장착할 예정이었다. 비록 전투함은 아니지만, 소련의 대부분을 승계한 러시아가 주요 군사용 함정을 해외에서 건조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많은 이의 주목을 받았다. 러시아가 1997년에 서방 선진국들의 모임인 G7(주요 7개국)에 8번째 참여국이 되었을 만큼 시대가 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 계약은 냉전이 완전히 종식되고 세계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상징처럼 여겨졌다.

4척 중 2척은 프랑스에서, 2척은 러시아 현지에서 면허 생산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14년에 러시아가 유로마이단 사태에 깊숙이 개입하고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하면서 서방과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압력으로 프랑스는 2015년 10억달러(약 1조1500억원)의 보상금을 지불하고 완공 단계였던 1, 2번 함의 인도를 거부했다.

그렇게 많은 관심 속에 건조 중이던 강습상륙함은 신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으로 바뀌었다.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2척의 함은 이집트가 구매 의사를 밝히자 러시아에 인도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저렴한 가격에 판매됐다. 프랑스는 최악의 사태를 모면했으나 그만큼 무기 거래에 세밀한 리스크 관리가 요구된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