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메이카 방위군이 훈련하는 모습. 벨기에의 FN FAL 자동소총을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약소국에서 개발된 소총이 역사에 남긴 흔적은 상당하다. 사진 위키피디아
자메이카 방위군이 훈련하는 모습. 벨기에의 FN FAL 자동소총을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약소국에서 개발된 소총이 역사에 남긴 흔적은 상당하다. 사진 위키피디아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렸다. 사람들은 평화가 찾아왔다고 생각했으나, 또 다른 위기를 마주했다. 추축국(樞軸國)을 상대로 한배를 탔던 나라들은 자신들이 신봉하는 이념에 따라 동서 진영으로 나뉘었다. 자본주의 체계를 따르는 서방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진영은 적대적 상태로 팽팽히 대립했다.

세계 각국은 결국 새로운 전쟁까지 염두에 두고 군사적 대비를 해야 했다. 그러한 일환으로 거대 군사동맹체인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와 WP(바르샤바 조약기구)가 탄생했다. 참혹했던 지난 전쟁을 경험하며 함께 싸우는 우군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깨달은 결과였다.

그런데 순식간에 소련제 무기로 통일한 WP와 달리 NATO의 상황은 상당히 복잡했다. 미국 이외 영국, 프랑스, 서독 등도 상당한 기술력을 보유한 국가들이어서 어느 한 나라의 무기로 통일하기가 어려웠다. 전시 보급 측면에서 보자면 심각한 문제였다. 이에 NATO는 각자 무기를 만들어도 소모품은 통일하는 대안을 채택했다. 스프링필드탄을 기반으로 하는 7.62×51㎜ NATO탄(이하 NATO탄)이 그렇게 탄생했다.

NATO가 총탄을 통일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NATO탄을 사용할 만한 자동소총은 많지 않았다. 미국의 M14, 독일의 G3 등은 1950년대 후반에나 제식화됐다. 영국의 EM-2도 이때까지는 NATO탄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지난 100여 년간 사용해 오던 볼트액션 소총의 시대가 저물고 본격적으로 자동소총의 시대가 열렸으나 정작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황당한 현실에 직면한 것이었다. 반면 WP는 지금까지도 최고의 소총으로 첫손에 꼽히는 AK-47로 급속히 재편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당연히 서방 진영은 초조했다.


미국의 주도로 탄생한 7.62×51㎜ NATO탄. 하지만 정작 1954년 표준으로 정해졌을 당시에 이를 사용하는 자동소총은 많지 않았다. 사진 위키피디아
미국의 주도로 탄생한 7.62×51㎜ NATO탄. 하지만 정작 1954년 표준으로 정해졌을 당시에 이를 사용하는 자동소총은 많지 않았다. 사진 위키피디아

개량 또 개량…이른 준비 나선 FN

이처럼 무주공산 상태에서 시장을 선점한 것은 놀랍게도 약소국인 벨기에 FN(Fabrique Nationale de Herstal)에서 개발한 FAL(Fusil Automatique Léger) 자동소총이었다. FAL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신데렐라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준비를 해온 결과물이었다. 1937년부터 반자동소총을 개발하던 FN의 엔지니어 디외도네 세이브(Dieudonné Saive)는 1940년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하자 영국으로 탈출한 후 현지에서 연구를 재개해 1942년 프로토타입을 완성했다. 하지만 가스압 조절 문제로 납품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고국으로 돌아와 개발을 재개했다. 자동소총이 대세가 되어가던 시점이었다. 미국도 최고의 반자동소총이라는 찬사를 받은 M1 개런드를 기반으로 하는 M14 자동소총을 개발하는 중이었다. 그는 개발 방향을 자동소총으로 선회해 1947년 7.92×33㎜ 쿠르츠(Kurz)탄을 이용하는 프로토타입을 개발했다.

하지만 침략자였던 독일의 총탄을 사용한다는 점 때문에 벨기에군은 거부감을 보였고 채택을 주저했다. 그러자 그는 영국의 .280 브리티시탄을 사용하도록 개조했다. 이렇게 완성된 자동소총은 1948년 벨기에군에 의해 FN M1949라는 이름으로 제식화됐다. 바로 그즈음 NATO탄이 제정될 움직임이 보이자 FN도 재차 개량에 나섰다.


벨기에의 FN FAL은 약소국에서 개발된 핸디캡이 있었음에도 미리 준비한 덕분에 시장 선점에 성공한 자동소총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벨기에의 FN FAL은 약소국에서 개발된 핸디캡이 있었음에도 미리 준비한 덕분에 시장 선점에 성공한 자동소총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FAL, 시대를 선도하다

오랫동안 상황 변화에 맞춰 개조를 거듭해 온 실력이 있었기에 개발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그렇게 1953년 완성된 자동소총이 FAL이다. 아직 경쟁작인 G3, M14가 완성되기 전이어서 FAL은 AK-47의 대항마로 급격히 부상했다. 특히 영국이 L1A1 SLR이란 이름으로 면허생산해 제식화하기로 결정하자 단번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약소국에서 개발됐다는 핸디캡을 넘어선 것이다.

무기를 자체 개발할 여력이 없는 국가는 유명세가 있거나 시장을 선점한 무기를 도입하는 경향이 많다. 덕분에 FAL은 개발사인 FN 외에도 14개국에서 총 700여만 정 이상 생산되어 무려 90개국에서 사용했거나 지금도 사용 중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1982년 벌어진 포클랜드 전쟁 당시에 영국, 아르헨티나 모두 면허 생산한 FAL로 교전을 치르기도 했다.

엄밀히 말해 FAL이 성공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성능보다는 ‘시대 상황’ 때문이었다. G3나 M14에 우위를 보일 정도는 아니었기에 만일 3~4년 정도 늦게 등장했다면 그 정도로 성공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든 오래전부터 좋은 총기를 만들어 왔지만 시장에서 영향력이 크지 않았던 FN은 시장 선점에 성공하면서 세계적인 총기 회사로 부상했다.

무기의 세계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여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FAL의 성공담은 일반 기업에도 교훈을 주기에 충분한 사례다. 변화에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고 기술을 연마한다면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시장 상황에 경쟁자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음은 확실하다. 준비된 이가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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