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치료에 있어서 때와 시간은 중요하다. 사진 셔터스톡
질병 치료에 있어서 때와 시간은 중요하다. 사진 셔터스톡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서울대 의학 학·석사,  KAIST 이학 박사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서울대 의학 학·석사, KAIST 이학 박사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 경제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 법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말이다. 이 말은 ‘경기 침체에 대한 정부 개입의 필요성’과 ‘의사 결정에 있어서 적절한 시간 지평(time horizon)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다. 경기 침체가 자연스럽게 회복될 수 있다 하더라도 너무 긴 시간이 걸린다면 이미 우리가 죽은 다음일 테니 그 회복이 우리 삶에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의미다. 

그런데 시간 지평은 꼭 경제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건강과 질병에 관련된 의사 결정에서도 시간 지평은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다. 예를 들어 노화해 여러 질병을 앓고 있거나, 신체적으로도 노화가 축적됐을 경우를 생각해보자. 기대 여명이 5년 이하인 사람에게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10년 걸리는 치료법을 적용한다면, 잠재적으로 건강상 이익보다 부작용이나 비용이 더 클 수 있다. 더욱이 치료 기간을 따질 때, 젊은이나 하나의 병만 앓고 있는 환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같은 치료법을 노년 환자에게 적용할 경우 부작용 발생 가능성이 더 클 수 있다. 

이 때문에 여러 질병을 앓고 있고 노쇠한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를 추가할 때는 잠재적 이익은 적고, 위험은 커질 수 있으며, 이익의 시간 지평은 짧아질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경영에 비유한다면 재무 및 영업 레버리지 비율이 높은 성숙기 기업에서의 의사 결정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전문화가 심해진 현재의 의료 환경에서는 이와 같은 특성을 총체적으로 고려할 주치의가 없는 경우가 많다. 여러 질환을 앓고 있거나 노쇠한 노년 환자들에게도 개별 질병을 위주로, 기계적인 검사와 치료가 진행되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으로는 나이가 많거나 치매를 앓고 있다는 이유로, 또는 다른 질병이 있다는 이유로 ‘필수적인 돌봄’이 제공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의료진이 개별 질병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영양이나 수분을 잘 공급하지 않거나 환자의 수면, 통증, 정서, 신체 기능 등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요소를 간과할 때다. 이 경우 환자가 병이 다 나아 퇴원할 수 있게 됐는데도 신체 기능이 떨어져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게 돼버린다. 긴 시간 지평 관점으로 보자면,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중대한 병을 성공적으로 치료했지만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다른 요소를 놓친 것이다. 

거시적인 라이프사이클의 관점에서도 때와 시간은 중요하다. 젊은이들에게 권장하는 만성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생활습관 방법들은 질병과 노쇠가 진행된 다음에는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복용하는 약이 많고 몸도 이전 같지 않아 식욕이 많이 떨어진 연로한 부모에게 건강에 좋다는 채식과 저염식, 견과류 등을 권유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하지만 노화와 질병, 복용 중인 약제로 식욕과 소화력이 모두 떨어져 있기 쉬운 노년 환자에게는 이것이 독이 될 수도 있다. 식이 요법으로 고혈압이나 대사질환을 예방하는 것보다는 잘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어떻게든 근육이 빠지고 신체 기능이 나빠지는 것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몸에 좋다는 방법’을 권하는 게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미래의 자산 형성에 도움이 되는 저축과 투자를 이미 은퇴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사람들에게 권유하는 것과 비슷한 격이다. 이렇게 사람의 몸은 노화를 중심으로 역동적으로 변화해 가기에 건강과 관련된 의사 결정에서 크고 작은 시간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