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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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우상  밝은마음병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엄마 심리 수업’ 저자
윤우상 밝은마음병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엄마 심리 수업’ 저자

조카가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다. 군대 간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곧 상병을 단다고 한다. 농담으로 한마디 했다. “넌 고참 되면 애들 괴롭히지 마라.” 조카도 농담으로 답한다. “에이~ 내 밑의 애들 이제 나한테 죽었어요. 두들겨 패서 정신 나게 해야죠.” 가볍게 얘기했지만, 농담만은 아니다. 시대가 바뀌어 군대 문화도 많이 좋아졌다지만 선임이 후임 괴롭히는 일은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후임 때 이유 없이 괴롭힘을 당하면서 ‘내가 선임이 되면 더 괴롭혀야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대개는 ‘난 안 괴롭히고 잘해줄 거야’ 하고 다짐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후임 괴롭히는 선임이 돼 있다.

폭력은 대물림된다. 고생했던 후임이 갑질 하는 선임이 되고 학교 폭력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시집살이로 고생했던 며느리가 독한 시어머니가 된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공격자와 동일시’라고 한다. 자신을 공격했던 사람을 닮아가는 것이다. 의식적으로는 닮지 않겠다고 하면서 무의식적으로는 공격자를 닮고 싶은 것이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날까? 

이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내면의 ‘분노’ 때문이다. 억울하게 당했으니 화가 쌓인다. 하지만 나를 괴롭히는 강자에게 풀 수가 없다. 쌓인 분노가 어디 가겠는가? 나중에 기회가 오면 그 화를 밑의 사람에게 푸는 것이다. 

둘째는 힘을 증명하고 싶기 때문이다. 약한 상태에서 당하고 있을 때 ‘내가 저 사람 보다 힘이 세다면 이길 수 있을 텐데⋯’ 하는 힘에 대한 욕망이 생긴다. 나중에 그 힘을 얻게 되면 무의식 속에 있던 힘에 대한 욕망이 현실로 표출된다. 정신분석적으로 보면 힘을 사용하면서 과거의 망가진 자존심을 보상하고 힘센 나로 다시 탄생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 늘 반복된다. 그런 폭력에 여러 이유를 들어 합리화한다. 너 잘되라고, 정신 차리라고, 때로는 정의를 위해서. 하지만 상대를 억울하게 만들고 상처 입고 병들게 하는 건 그저 폭력일 뿐이다. 건강한 인격의 성장,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이런 폭력의 대물림을 끊어야 한다.

폭력의 대물림을 내 손에서 끊을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힘을 쓰고 싶은 욕망을 성찰해야 하고 나의 힘을 건강하게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힘을 과시하지 않고도 권위를 세울 수 있어야 하고 공격적이지 않아도 사람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능력을 갖추는 게 쉽지 않다. 잘못하면 밑의 사람들에게 우습게 보일 수 있고, 가진 힘도 제대로 못 쓴다고 바보 소리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시대에 끊어야 한다. 내가 받은 폭력을 내 밑의 사람에게 쓰지 않으려는 자기 성찰과 자기 절제야말로 진정한 힘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 보복과 정의 회복이라는 두 논리가 충돌해왔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권력이 자기도 모르게 과거의 공격자와 동일시해서 폭력을 대물림하는 건 아닌지 성찰하고 성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