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우상 밝은마음병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엄마 심리 수업’ 저자
윤우상
밝은마음병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엄마 심리 수업’ 저자

40대 초반의 남성이 불면증과 불안 때문에 상담실을 찾았다. 상담 중에 한숨을 푹푹 쉰다. “밥도 못 먹겠고 잠도 안 오고 직장에만 가면 불안하고 가슴이 답답해요.” 원인은 직급이 올라서 새로운 부서의 팀장을 맡게 되어서다. 낯선 직원들과 낯선 일을 하면서 책임감과 부담감에 힘들었다. 한 달째 견디고는 있지만 일이 더 어렵게 느껴지고 못 할 것만 같아 휴직을 고민 중이란다.

통과 의례라는 용어가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거치게 되는 탄생·성년·결혼·죽음 등에 수반되는 의례를 의미한다. 아프리카 원주민 부족 중에서 아이가 성인이 될 때 계곡으로 번지점프를 시키는 등의 성년식 같은 것이다. 이 용어가 ‘새로운 환경에 들어갈 때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고통’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힘들어 죽겠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에게 “통과 의례니까 잘 견뎌. 시간 지나면 다 해결돼”라고 조언을 한다.

통과 의례는 세 단계로 나뉜다. 격리·고난·통합이다. 격리는 기존 환경에서 새로운 환경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고난은 새로운 규칙과 인간관계에 적응하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이 고난을 겪고 나면 비로소 새로운 조직에 통합되어 한 단계 성숙한다. 

반드시 치러야 하는 통과 의례지만 누구나 통과하는 것은 아니다. 견뎌야 할 어려움이 한계에 도달하는 경우가 있다. 이 고통의 과정이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두려움, 잘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 나 혼자라는 고립감, 나만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이런 정도가 되면 이 환경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도망가기도 쉽지 않다. 자존감이 걸리고 주변의 시선도 두렵다. 또 그만두면 어쩔 것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불안과 불면증으로 상담을 받는 사람이 늘고 있다.
불안과 불면증으로 상담을 받는 사람이 늘고 있다.

통과 의례에 걸려 심하게 힘들어하는 상태를 정신과적 진단명으로 ‘적응 장애’라고 한다. 새로운 환경에 제대로 적응을 못 해서 불안·우울·불면·무기력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적응 장애는 과도한 불안과 긴장을 줄여주는 약물치료와 심리적 안정을 주는 상담치료가 도움 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치료법은 이미 그 과정을 겪은 좋은 멘토의 도움이다. 옆에서 잘 알려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고비를 넘길 수 있다.

상담 오신 분은 자존심도 있고 혼자 일을 해결하려는 스타일이라 남에게 도움 청하는 것을 꺼리는 분이었다. 그분께 지금은 위기 상황이니 미안함을 무릅쓰고 좋은 멘토를 찾아서 도움을 청하라고 권유했다. 그리고 한 달만 더 버텨보고 정 안 되면 휴직도 고민해보자고 했다. 맡고 있는 직분이 인연이 아니면 휴직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퇴로를 열어두었다.

지금 이분은 통과 의례를 넘어 적응 장애로 힘들어하지만 이 과정을 잘 통과할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좋은 멘토가 될 것이다. 자기가 힘들게 겪어봤으니 후배들 고통을 그냥 넘기진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