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초반의 남성이 불면증과 불안 때문에 상담실을 찾았다. 상담 중에 한숨을 푹푹 쉰다. “밥도 못 먹겠고 잠도 안 오고 직장에만 가면 불안하고 가슴이 답답해요.” 원인은 직급이 올라서 새로운 부서의 팀장을 맡게 되어서다. 낯선 직원들과 낯선 일을 하면서 책임감과 부담감에 힘들었다. 한 달째 견디고는 있지만 일이 더 어렵게 느껴지고 못 할 것만 같아 휴직을 고민 중이란다.
통과 의례라는 용어가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거치게 되는 탄생·성년·결혼·죽음 등에 수반되는 의례를 의미한다. 아프리카 원주민 부족 중에서 아이가 성인이 될 때 계곡으로 번지점프를 시키는 등의 성년식 같은 것이다. 이 용어가 ‘새로운 환경에 들어갈 때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고통’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힘들어 죽겠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에게 “통과 의례니까 잘 견뎌. 시간 지나면 다 해결돼”라고 조언을 한다.
통과 의례는 세 단계로 나뉜다. 격리·고난·통합이다. 격리는 기존 환경에서 새로운 환경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고난은 새로운 규칙과 인간관계에 적응하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이 고난을 겪고 나면 비로소 새로운 조직에 통합되어 한 단계 성숙한다.
반드시 치러야 하는 통과 의례지만 누구나 통과하는 것은 아니다. 견뎌야 할 어려움이 한계에 도달하는 경우가 있다. 이 고통의 과정이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두려움, 잘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 나 혼자라는 고립감, 나만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이런 정도가 되면 이 환경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도망가기도 쉽지 않다. 자존감이 걸리고 주변의 시선도 두렵다. 또 그만두면 어쩔 것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통과 의례에 걸려 심하게 힘들어하는 상태를 정신과적 진단명으로 ‘적응 장애’라고 한다. 새로운 환경에 제대로 적응을 못 해서 불안·우울·불면·무기력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적응 장애는 과도한 불안과 긴장을 줄여주는 약물치료와 심리적 안정을 주는 상담치료가 도움 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치료법은 이미 그 과정을 겪은 좋은 멘토의 도움이다. 옆에서 잘 알려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고비를 넘길 수 있다.
상담 오신 분은 자존심도 있고 혼자 일을 해결하려는 스타일이라 남에게 도움 청하는 것을 꺼리는 분이었다. 그분께 지금은 위기 상황이니 미안함을 무릅쓰고 좋은 멘토를 찾아서 도움을 청하라고 권유했다. 그리고 한 달만 더 버텨보고 정 안 되면 휴직도 고민해보자고 했다. 맡고 있는 직분이 인연이 아니면 휴직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퇴로를 열어두었다.
지금 이분은 통과 의례를 넘어 적응 장애로 힘들어하지만 이 과정을 잘 통과할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좋은 멘토가 될 것이다. 자기가 힘들게 겪어봤으니 후배들 고통을 그냥 넘기진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