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시험 43회,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허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시험 43회,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중국에 살 때 큰 즐거움 중 하나가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에 안마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안마가 끝나고 계산대로 가면 “앞으로 자주 올 거면 카드를 하나 만드는 게 어떠냐”는 말을 듣곤 했다. 3000위안(약 54만원)짜리 카드를 사면 2000위안(약 36만원)어치의 서비스를 추가해 총 5000위안(약 90만원)만큼을 쓸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솔깃한 제안이었다.

예불카드(預付卡)는 미리 돈을 내는 카드, 즉 선불카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간혹 고객이 예불카드를 만들었는데 해당 업소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폐점해 버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중국 베이징시 상무국 등 관련 당국은 일찍이 ‘선불식 소비 시장의 관리에 관한 의견(의견수렴안)(關於加強預付式消費市場管理的意見(征求意見稿)’을 반포했다. 선불식 소비(預付式消費)는 사업자가 일정 금액이 충전된 예불카드를 판매하거나 선불금을 받는 방식으로 소비자로부터 보증금, 회원비, 시간당 수업료 등을 선납받고, 그가 속한 그룹 내지 동일한 브랜드의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상품을 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걸 말한다.

이 의견은 사업자가 폐업, 휴업, 영업 장소 이전 등의 이유로 제품·서비스 제공에 차질이 발생한 경우에는 30일 전에 이러한 상황을 공시하고, 기명 카드를 소지한 소비자에게는 전화·문자·이메일 등의 방식으로 개별 통보하도록 했다(제22조). 소비자는 사업자에게 자신의 카드에 대한 잔액 조회나 거래 기록 등의 정보 제공을 요구할 수 있다(제24조). 또 소비자는 정관 또는 계약에 따라 사업자에게 지속적인 서비스의 이행을 청구하거나 예불카드의 잔액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제25조).

당국은 선불제 소비 시장을 규제하기 위해 이 의견에 ‘실신금입제도(失信禁入制度)’ 즉, ‘신용상실 시장 진입 금지 제도’라는 강력한 조치도 도입했다. 사업자가 △폐업, 휴업, 영업 장소 이전 등의 상황에 환불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거나 연락처를 남기지 않는 경우 △1년 안에 두 번 이상의 행정 처분을 받은 경우 △선불식 서비스 방식을 범죄 활동에 이용해 형사 처벌을 받은 경우 △그 밖에 소비자의 재산상 권익을 심각하게 해하는 행위를 저지를 경우 ‘심각한 신용상실 주체 리스트(嚴重失信主體名單)’에 등재하고 관련자 정보를 베이징시 공공신용정보 서비스 플랫폼을 통해 공개하도록 했다(제30조). 같은 영업장에서 개업과 폐업을 반복하거나 회사 대표자를 자주 바꾸는 방법, 아이디나 회사 이름을 바꿔가며 인터넷 상점을 여는 것도 집중 단속 대상이 된다.

중국에 사는 외국인에게 예불카드는 ‘중국에서의 나의 시간’과 관련된 문제다. 중국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는다고 하여 ‘만만디(慢慢的)’로 불린다. 그러나 자기와 이해관계가 없는 일에는 만만디, 나와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일에는 한국인보다 더 ‘빨리빨리’를 외치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 현지에서 내게 주어지는 시간도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렇듯 중국에서 허락된 나의 시간에 대해 이원적인 중국인의 태도를 잘 고려해 선불을 택할지 혜택은 못 받아도 후불을 택할지를 판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