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K씨는 요즘 잠드는 게 두렵다. 처음엔 가벼운 잠꼬대로 시작했다. 잘 자다가 갑자기 웅얼웅얼대서 같이 자던 부인이 놀란 정도였다. 그런데 점점 증세가 심해져 몇 달 전엔 잠자던 중에 부인에게 발길질을 해 다치게 했다. 결국 문간방에서 혼자 잠을 자게 됐다. 그러다 며칠 전 K씨는 침대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쳤다. 앞으로 더 심한 일이 생길까 두려운 마음에 병원을 찾았다. 그는 병원에서 렘수면 행동장애와 치매 위험 판정을 받아 충격을 받았다.

잠꼬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냥 가벼운 잠버릇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횟수가 잦거나 욕을 하고, 주먹질을 하는 등 증세가 심하다면 문제가 다르다고 본다. 보통 일주일에 한 번쯤 심한 잠꼬대를 한다면 수면장애를 의심해 봐야 한다. 특히 수면장애와 연관된 잠꼬대는 노인성 치매와 파킨슨병의 전조 증상일 수 있어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몸 뒤척이는 건 뇌간 기능 이상 신호

사람들은 보통 잠들기 시작하면 1시간 30여분간 4단계의 비렘수면(non-REM sleep, 1·2단계는 얕은 잠, 3·4단계는 깊은 잠)을 거치고, 이어서 렘수면 상태에 돌입한다. 잠꼬대는 비렘수면 상태에서도 나타날 수 있지만의료계에선 렘수면 상태에서 나타나는 잠꼬대를 특히 위험한 수면장애로 진단한다.

렘수면 상태에서 뇌는 활발히 움직이며 꿈을 꾼다. 뇌가 활동하지만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뇌의 가장 저층에 있는 ‘뇌간’이 몸의 운동 근육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뇌간은 신경다발을 이용해 대뇌와 척수, 소뇌와 대뇌, 소뇌와 척수 사이의 정보 소통을 중재하는 ‘교통신호등’ 같은 존재다. 이 신호에 따라 신체가 움직이고 반사 기능이 나타난다. 렘수면 상태에서 뇌간은 몸의 움직임을 중단시키는 신호를 내보낸다.

몸을 뒤척이며 잠꼬대를 한다는 것은 뇌간의 신호 기능에 문제가 생겼다는 증거다. 렘수면 상태에서 한창 꿈을 꾸고 있는데 뇌간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면 근육의 움직임 제어에 문제가 생기고 꿈의 내용에 따라 움직이고 말하는 일이 벌어진다.

렘수면 상태에서 잠꼬대를 특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치매와 파킨슨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치매, 파킨슨병이 의심되는 환자는 잠잘 때 잠버릇이 나쁘거나 잠꼬대를 많이 한다. 실제 렘수면 행동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은 치매나 파킨슨병에 걸릴 위험이 훨씬 높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이 12년간 수면행동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전체의 50% 이상이 치매나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신경질환으로 발전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파킨슨병 환자는 렘수면 동안 뇌간의 정상적인 운동조절 스위치 기능에 장애가 생겨 잠꼬대를 하게 된다.

평소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증이 심한 사람은 렘수면 행동장애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뇌에 산소가 부족해져 의사 결정과 판단에 관여하는 대뇌백질이 더 많이 손상되기 때문에, 치료하지 않을 경우 치매나 파킨슨병으로 발전할 위험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잠꼬대는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가 가능하다. 노인분들의 경우 잠꼬대가 심하면 파킨슨병 전조 증세로 이해하고 병원을 방문해 빠른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 한진규
고려대 의대, 한국수면학회 이사, 고려대 의대 외래교수